진보 정책

미국식 의료 시스템 도입? 대재앙될 것

녹색세상 2007. 10. 27. 20:15
 

한국 보건의료체계의 위기 : 이중 부담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가 위기를 맞고 있다. 이른바 ‘이중 부담(double burden)’ 때문이다. 전체 진료비의 60%정도 밖에 보장해주지 못해 큰 병이 나면 가정이 파탄나는 불완전한 의료보장제도, 보험료 체납 등의 이유로 의료사각지대에 있는 300만명의 차상위계층,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도 낭비를 조장하는 행위별 수가제, 대형병원 중심의 왜곡된 의료체계, 부실한 관리방식때문에 추가 재원을 투입하지도 못하는 나라. 이런 ‘체계모순’이 바로 한국 보건의료체계의 현주소이자 오래된 짐이다.   


  이런 어려운 여건 속에서 ‘인류역사상 어느 나라도 경험해 보지 않은’ 빠른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빠른 노령화’는 ‘빠른 진료비 증가’와 동의어나 다름없다. 게다가 참여정부가 생뚱맞게 들고 나온 이른바 ‘의료서비스 산업화’ 정책과 한미 FTA 협상은 의료비 상승과 양극화를 가속화함으로써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에 감당하기 어려운 또 하나의 큰 짐을 지우려하고 있다.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가야할 길은 어디일까? 최근 수많은 정치가, 학자들이 소리 높여 “미국으로(go to America)!"를 외치고 있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영리병원추진, 채권발행에 이은 주식상장, 민간보험의 과도한 활성화, 유인알선행위와 의료광고의 과도한 허용 등과 같은 각종 산업화정책들은 모두 ‘미국식’을 모델로 삼고 있다. 여기에 한미 FTA까지 체결을 완료할 경우,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는 ‘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것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미국의 의료제도는 실패작이다. 수많은 미국의 학자들조차 미국의료제도가 실패했으며, 결코 따라 해서는 안 되는 제도임을 역설한다. 하버드대학의 이치로 가와치 교수의 경고는 더욱 단호하다. “미국을 따라하려는 그 어떤 (보건)시스템도 반드시 미국과 같은 대재앙을 만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고는 이미 ‘미국식’이 검토와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신앙’ 그 자체가 되어버린 이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나라 보건의료 위기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 미국의료체계의 모순을 고발하고 있는 영화 존 큐(John Q)와 식코(Sicko)


미국의료체계의 모순을 고발하고 있는 영화 존 큐 와 식코


  실패한 의료제도로 인해 미국 국민들 대다수가 겪고 있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잘 볼 수 있는 두 편의 영화가 있다. 영화 <존 큐(John  Q)>에서 주인공은 비록 부자는 아니지만 성실하게 살아가는 한 가정의 아버지다. 하지만 심장병에 걸려 수술을 받아야 하는 아들이 보험혜택은 물론 정부지원금도 기대할 수 없게 되자 병원을 점거한 채 목숨을 걸고 공권력과 대치한다. 그가 목숨을 걸고 요구하는 것은 자기 아들을 수술대기자 명단에 올려달라는 것이 전부였다. 그의 모습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치며 인질극을 벌였던 그 누구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다.


  마이클 무어(Michael Moor)의 영화 ‘식코(Sicko)’는 더욱 구체적으로 미국의 의료체계를 고발한다. 영화는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해 찢어진 상처를 자신이 직접 꿰매는 아담이라는 남자, 일하다 손가락이 잘리는 순간, 자신의 손가락보다 병원비를 먼저 걱정하고, 수술비 때문에 잘린 두 손가락 중 한 손가락의 수술을 포기해야 했던 릭이란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하지만 이러한 고통을 받는 것은 비싼 보험료 때문에 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약 5천 만 명의 빈곤층만이 아니다. 그의 고발은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했어도 심장병 치료비를 감당 못해 집을 팔고 딸의 집에 얹혀살아야 하는 중년 부부의 눈물, 각종 복잡하고 전문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교묘하게 보험지급을 거부하는 민간보험회사 때문에 고통 받는 수많은 미국 국민의 이야기로 가득 차있다.


  영화는 수백만 달러의 로비자금을 제공한 대형제약회사와 민간보험회사 관계자들에 둘러싸여 관련 정책에 서명하는 부시 대통령의 모습과 정책을 추진했던 핵심 정치가가 결국 그 정책의 최대 수혜자인 대형제약회사로 직장을 옮기는 모습도 보여준다. 또한, 전국민의료보험의 시행을 막기 위해 얼마나 많은 매카시즘적 공격이 자행되었는지도 고발한다. 문제는 현재 진행하고 있는 정부의 의료산업화 정책을 전면적으로 중단시키지 않을 경우, 그리 머지않아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모습을 손쉽게 목격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 정도의 경제력도 없고 미국같은 사회안전망도 갖추지 못한 우리 사회는 영화  식코(Sicko)’가 보여주는 재앙 그 이상의 재앙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 최근 시민사회단체들이 다양한 정책안을 내놓고 있다. 최근 <의료연대>에서 발표한 보건의료부문 50대 정책.



대안은 무엇인가?


  영리중심, 시장중심 미국식 의료체계가 우리의 대안이 아니라면 다른 대안은 무엇일까?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런 보건의료체계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변화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필요로 한다. ‘모든 이들이 건강하며 필요에 따라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사회’의 구현은 적어도 다음 세 가지 새로운 패러다임에 기초하여야 한다.  


첫째, 영리중심의 보건의료체계를 존엄성과 건강권을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건강은 그것이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추구되는 것이 아니다. 아마티아 센의 말처럼 건강은 한 인간이라는 존재와 자유 실현의 기본적 조건이며 인간 존엄의 기본인 까닭에 그 자체로서 존중되고 보호되어야 한다. 따라서 건강을 수호하는 모든 노력은 ‘영리’라는 논리가 아니라 ‘존엄성’이라는 기초위에 세워져야 한다.


둘째, 연대의 정신에 기반하여야 한다. 한 개인은 홀로 건강할 수 없다. 우리의 존재는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며 건강 또한 그렇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건강’이라는 정의 속에는 ‘연대’의 정신이 들어있다. 만약 내 주위 사람들이 전염성이 매우 강한 호흡기질환에 걸렸다면 내가 완벽하게 병에 걸리지 않는 방법은 ‘숨을 쉬지 않는’ 방법밖에 없다.


  그럴 수 없다면 우리는 힘을 합쳐 전염병을 예방하고 주위의 아픈 이들을 돌봐야 한다. 내 옆에 있는 이들은 ‘나’라는 존재를 구성하는 일부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서로 돕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건강할 수 없다.' 더욱이 그 연대의 정신은 한 나라 안에서 치료비를 서로 나누는 정신에 그치지 않고 국경을 넘어야 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연대는 자연과의 연대(공존)로 까지 이어져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만들려는 ‘건강한 사회’는 이러한 연대의 기반 위에 세워져야 한다.


셋째, 건강한 사회정책(healthy public policy)으로 전환해야 한다. 보건의료정책은 진공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건강한 몸을 위해서는 건강한 사회가 필요하다'는 정신에 기초한 정책적 대안은 사회전체의 총체적 변화 속에서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 말해, 모든 이들의 건강은 개인적 노력이나 첨단의료기술로만 이루어낼 수 없으며, 사회전체의 건강함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은 1960년 쿠바에서 행한 체 게바라의 역사적인 연설 속에 잘 요약되어 있다.


  “질병과 싸우는 원칙은 강인한 육체를 만드는 것에 기초하여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병약한 개체를 의사들의 기술로 강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총체적 작업을 통해서, 다시 말해 전체 사회의 총체성(the entire social collectivity)을 통해서 강인한 몸을 만들어 내는 것이어야 한다.”

 

  모든 이들이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지금 당장 우리사회에 필요한 것은 최근 진행하고 있는 영리 지향적 각종 보건정책을 중단하는 것이다. 둘째, 기존 의료기술중심, 보건복지부 중심 정책을 건강과 관련한 정부의 모든 부서, 그리고 다양한 국민들이 참여하는 사회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셋째, 낭비형 지불제도와 대형병원 중심으로 왜곡된 의료서비스 제공체계를 획기적으로 재편하여야 한다. 또한, 관료와 대자본, 전문가가 중심이 되는 지배구조를 국민이 중심이 되는 거버넌스로 전환하여야 한다. 그래서 국민이 진정으로 아끼고 자부심을 갖는 보건의료체계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국민 주치의제도, 총액예산제, 진료비 상한제, 보호자 없는 병원, 상병수당도입, 건강한 마을과 일터 만들기 정책, 건강영향평가제 도입, 건강형평정책 등 수많은 개혁적 정책들을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정책은 하나하나 모두 매우 중요한 정책들이다. 하지만 어떤 정책도 그 정책 자체가 우리가 바라는 바람직한 보건의료체계를 담보해주는 ‘마법의 탄환(magic bullet)’은 아니라는 사실 또한 잊어서는 안된다. 그간 우리는 진보적 목적으로 출발했던 정책들이 얼마나 쉽게 왜곡되고 오히려 기존의 모순을 강화하는 정책으로 변질할 수 있는지를 목격해 왔다. 그렇기에 보건정책의 건강함을 유지하는 것은 앞서 언급한 세 가지 패러다임의 견고한 토대 위에서 작동하게 하는 국민들의 힘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영리형 미국식ㆍ건강권중심 유럽식을 넘어서


  최근 시민사회단체들이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최근 <의료연대>에서 발표한 보건의료부문 50대 정책. 요약하면, 한국 사회가 꿈꿔야할 보건의료체계의 미래는 국민의 건강을 사고파는 미국이 아니다. 우리가 꿈 꿔야하는 미래는 ‘모든 이들이 건강할 수 있는 건강한 사회’이다. 굳이 현실 세계에서 그런 사회의 원형을 찾는다면 건강권 중심의 유럽식 보건의료체계, 생태 친화적 쿠바, 서로 돕고 사는 인도의 케럴라 등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우리 사회는 그러한 제도가 가지는 한계를 또한 넘어서야 한다.


  2005년 비교의료제도론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하버드대학의 샤오교수가 한국에 왔다. “한국의 건강보장체계가 어디로 가야하는가?”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다. 많은 이들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그의 대답은 간명했다. “Where do you want go(당신은 어디로 가기를 원하는가)?” 2005년 하버드대학 샤오(Hsiao)교수의 한국방문 강연에서 “한국 건강보장체계가 어디로 가야하는가?”에 대한 대답에 “Where do you want go(당신은 어디로 가기를 원하는가)?”로 답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샤오 교수의 ‘처방’에 만족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대답이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말이 맞다. 한국의 보건의료체계가 어디로 가야하는지는 우리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에 달렸다. 그래서 시인 김정환은 최근 그의 시집 <레닌의 노래>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오마이뉴스)


“내일은 오늘 부르는 노래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