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전쟁에 종교의 이름을 빙자해 적극 가담한 베르니히 신부
1970~80년대 아르헨티나의 군사독재정권 시절 ‘더러운 전쟁’에 가담한 가톨릭 신부에게 종신형이 선고됐다. 아르헨티나의 군사독재가 기승을 부린 1976~83년, 반체제 인사 살인 7건과 고문 31건, 납치 42건의 공범인 전 경찰 군종신부 크리스티안 폰 베르니히(69·사진) 신부에게 9일 라플라타 법원이 종신형을 선고했다고 에이피(AP) 통신 등이 보도했다. 군사독재 시절의 범죄와 관련해 가톨릭 사제가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베르니히는 그동안 소추를 피하기 위해 칠레로 이주해 이름을 바꾸고 신부로 일해 왔지만, 더러운 전쟁에 연루된 모든 군인을 사면한다는 내용의 ‘사면법’이 2003년 위헌 판결을 받은 뒤 아르헨티나로 송환됐다.
▲ 환호하는 인권 운동가들 / ‘더러운 전쟁’에 연루된 크리스티안 폰 베르니히에게 9일 종신형이 선고된 뒤, 인권운동가들이 납치 사실을 증언한 훌리오 로페즈의 얼굴이 그려진 수건을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AP 연합
법원이 종신형을 선고하자 법정 안팎을 가득 채운 실종자 가족들과 인권운동가들은 축하 불꽃을 쏘아 올리며 환호했다. 실종자가족모임 ‘5월 광장 어머니회’의 타티 알메이다는 “살아서 이런 날을 맞게 될 줄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정의가 실현됐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재판 기간 내내 침묵을 지켜왔던 아르헨티나 가톨릭 교단은 판결 뒤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가톨릭 사제가 매우 심각한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게 돼 고통스럽게 여긴다”며 “과거사 청산을 통해 화해의 길로 나아갈 수 있게 되리라 믿는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교단은 군정 시절 인권보호에 실패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비비시(BBC) 방송은 이번 판결로 더러운 전쟁 당시 가톨릭 교단이 수행한 역할에 대해 문제 제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겨레/이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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