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예술

누가 ‘평준화’를 두려워 하나

녹색세상 2007. 9. 18. 22:19
 

운동권도 꺼려…"이 불온한 용어 버리면 패배"

 

  독재를 타도했지만 우리에게 허락된 건 ‘평’자가 빠진 민주주의였을 뿐이다. 기득권 세력은 1인1표 직선제만을 허용하면서 1인1표가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었던 평등의 실질은 내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우리의 민주화는 평등 없이 자유만 폭주하는 기이한 몰골이 됐다. 차라리 자유조차 없던 시절보다 서민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커졌다. 기득권 세력은 국민의 뇌리 속에서 ‘평’자를 지우는데 전력을 다했다. 그들의 공세는 성공적이었다. 이제 우리 국민들은 ‘평’자만 나와도 나라가 망하는 줄 안다.


  임금 차등, 각자가 누리는 지위의 차등, 교육에서의 차등 등 모든 부분에서 격차가 벌어졌다. 이름하여 양극화다. 모두가 이 양극화를 한탄한다. 차등을 줄이려면 평등의 원리가 필요하다. 그런데 모두가 평등을 두려워한다. 결국 모두가 합심해 양극화 해소를 막고 있는 꼴이다. 우리의 민주주의를 기괴한 몰골로 만든 자유의 폭주와 평등의 거세를 바로 잡아야 한다. 자유는 규제되어야 하고 평등에겐 시민권이 부여되어야 한다.


   추방당한 ‘평’자


  교육은 사람을 재생산한다. 또 교육은 생각을 재생산한다. 그리하여 교육은 체제를 재생산한다. 기득권 세력은 교육을 통해 지금의 양극화 구조를 확대재생산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인다. 그 방법이 바로 교육에서 ‘평’자를 추방하는 것이다. 교원평가를 통한 성과급 차등 지급, 각종 자율학교 확대를 통한 자유의 폭주 강화 등 집요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 중에서도 핵심 중의 핵심은 평준화 전선이다. 평준화 전선은 바로 이곳에서 나라 교육의 성격이 규정되고, 그에 따라 나라 자체의 성격이 규정되는 가장 중요한 대립지점이다.


  지금은 압도적으로 기득권 세력의 힘이 강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압도적인 힘을 동원해 평준화란 말 자체를 금기시하는 데 성공했다. 1990년대 이후 민주화 교육개혁의 역사는 평준화 ‘보완’의 역사였다. 보완이란 것은 이미 평준화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전제한 말이다. 물론 여기서 평준화란 고교평준화를 의미한다. 그것에 문제가 있으니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민주화 역사는 고교평준화 해체사가 됐다. 독재 시절보다도 더한 파탄이 예정된 길을 걸어온 것이다. 기득권 세력의 공작으로 고교평준화마저도 보완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2007년 대한민국에서 대학평준화를 말하는 건 상식을 뒤엎는 미친 짓이다. 한국사회의 일반적인 상식으론 대학평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대학이 평준화되면 학벌사회가 사라진다


  한국사회는 학벌사회다. 한국사회의 상식에 반한다는 건, 학벌사회의 상식에 비추어 몰상식이 된다는 뜻이다. 그 얘긴 그만큼 학벌사회와 대학평준화는 서로 정반대인, 양립 불가능한 가치라는 소리다. 당연하다. 학벌사회에선 대학이 평준화될 수 없고, 대학이 평준화되면 학벌사회가 사라지니까. 학벌사회는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몰상식한 체제 중 하나다. 부모의 재산으로 사는 십대 때 국영수 성적으로 사람의 신분을 가르는 ‘미친’ 체제다. 이런 체제의 상식에 받아들여지는 말들은 모두 조금씩 ‘미친’ 말들이다. 그러므로 이 체제의 상식에 도저히 부합될 수 없는 대학평준화야말로 이 미친 체제를 부숴버릴 주문이 될 것이다.


  대학평준화라는 말을 쓰기를 운동권마저도 두려워하고 있다. 자발적 표현통제가 횡행하는 자유파쇼의 살풍경이다. 가장 효과적이며 가장 핵심적인 말을 버리고 어떤 언어를 쓴단 말인가? 학벌사회의 상식에 비추어 합당한 말들? 현 체제를 위협하지 않는 안전한 말?


  ‘평’자와 ‘평준화’란 말이 금기시 된 상태에서는 아무리 대립해도 백전백패다. 이 말들을 두고 전장에 나서는 것은 마치 칼과 방패를 두고 전장에 나서는 것과 같다. 교육에서 핵심 전선은 평준화 전선인데, 엉뚱한 말로 엉뚱한 전선에서 아무리 승리해도 대세는 변하지 않는다.


  ‘평준화’에 시민권을


  핵심을 쳐야 한다. 그것은 바로 ‘평’ 자를 복권시키고 ‘평준화’에 시민권을 발부하는 일이다. 평준화에 시민권이 발부될 때 우리 국민들에게도 진정한 공화국의 시민권이 발부될 것이다. 국민 다수를 노예로 만드는 대학 비평준화 체제에서 국민들은 영원히 시민일 수 없으니까.


  ‘평’자만이 자유라는 괴물의 폭주를 막을 수 있다. 자유 파쇼 시대에 자유의 허락을 받은 언어들은 모두 자유가 지배하는 세상을 위협하지 못하는 것들이다. 자유가 불온시하는 말을 써야 한다. 자유가 지배하는 세상이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며 아예 봉인해버리는 말, 그런 말을 써야 한다.


  평등과 평준화만이 우리가 당한 반쪽짜리 민주화를 제 궤도에 올려놓을 주문이다. 운동권마저 이 말 쓰기를 두려워하면 정상적인 민주주의를 봉인하려는, 87년 이후 그들의 책략을 영원히 부술 수 없다. 신자들이 나무아미타불, 아멘을 외우듯이 평준화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한다. 그럴 때 그 말의 힘으로 민주주의의 봉인이 풀릴 것이다. (하재근/레디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