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예술

"신정아 사건이 아니다. 신정아 보도 사건이다."

녹색세상 2007. 9. 18. 21:04
 

  지난 13일 문화일보의 신정아 씨 누드 사진 게재를 비롯해, 학력위조 의혹을 받는 신정아 씨를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가 도를 넘었다는 비난이 '폭주'하고 있다. 18일 한국언론재단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신정아 사건과 언론보도'를 주제로 긴급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기자, 변호사, 언론학자 등 토론자들은 한목소리로 "<문화일보>의 보도는 법적으로는 명백한 소송감이며 사회적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언론의 인권침해"라며 "다른 언론들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고 비난했다.

 

 

  "처음부터 '섹스스캔들'로 치닫고 싶었던 것 아닌가"

 

  이날 발제를 맡은 한국언론재단 유선영 연구위원은 "신정아 사건의 본질은, 단순화해서 말해 신정아 자신이 책임져야 할 사건의 진실은 '가짜 학위' 문제뿐이라고 할 수 있다"며 "그러나 <문화일보>의 누드 사진 공개와 함께 가짜학위, 허위학력 사건은 언론에 의해 '섹스스캔들'로 전환했다"고 말했다. 유선영 위원은 "<문화일보> 편집국장은 '누드 사진이 사건의 본질을 잘 드러내 준다고 판단해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보도를 결정했다'고 해명한다"며 "이 말은 신 씨의 허위학력 사건이 (그들이 생각했을 때) 처음부터 '섹스스캔들'이란 본질의 표면이었을 뿐 진실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언론은 신정아 개인에게 학력위조에 대한 책임만 지우면 될 일이었다"며 "그 외 비판의 여력은 그를 감싸기 위해 직권을 남용하고 국가예산을 오용한 공직자, 정치인, 지도급 인사의 비리와 부정, 은밀한 거래, 추한 권력 남용에 쏟아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제3자의 처지에서 볼 때 언론은 시종일관 '신정아'에 몰두했고 나머지 비호세력인 남자들을 주변에 두는 보도 프레임을 견지했다"며 "이는 엄연히 선후가 뒤바뀐 것"이라고 밝혔다.

 

  유 위원은 "이 같은 언론의 프레임은 신정아 씨를 부지불식간에 공공의 적으로 만들었고 급기야 누드 사진을 공개해도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는 이로 착각하게 만들었다"며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는 연쇄살인범도 보호받아야 할 사생활이 있고, 그것이 존중되는 사회"라고 지적했다.

 

 "문화일보는 '핑크 저널리즘'를 창조하고 있다"


이날 토론자로 나온 김학웅 변호사는 "익명의 취재원을 밝히지 않다가 구속된 미국 기자의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국민들이 알고 싶지 않은 정보까지 '카더라' 통신을 남용해 보도한 신정아 씨 사건은 현재 한국 언론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대구가톨릭대 최경진 교수는 "<문화일보>의 행태는 섹슈얼리즘과 센세이셔널리즘을 결합한 '핑크 저널리즘'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여도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니지 않나"라며 "선정적 보도로 '황색 저널리즘(yellow journalism)'이란 말을 낳았던 미국 언론의 예처럼 <문화일보>는 신문지 색깔과 더불어 '핑크 저널리즘'을 만들어냈다"라고 지적했다.

 

  언론중재위원회 양재규 상담교육팀장은 " <문화일보>가 보도한 누드 사진은 진위도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변양균 전 실장, 신정아 씨의 관계와 아무런 논리적 연관성이 없는 것 같다"며 "소송을 한다면 <문화일보>가 백전백패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이번 사건은 '신정아 사건'이 아닌 '신정아 보도 사건'이라 규정해야 한다"며 "<문화일보>의 보도는 통념상 음란하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고, 미술교사 김인규 씨에 유죄를 선고한 판례에서 보듯 법원은 이 같은 경우 처벌해야 마땅할 것"이라고 밝혔다.

 

  권력형 비호 의혹 이후 '자극 경쟁' 몰입한 언론

 

  또 <문화일보>의 '누드 사진 게재 사건'은 갑작스럽게 불거졌지만 그간 언론의 보도행태를 보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민주언론시민연합 김언경 모니터부장은 유명인사들의 학력위조를 다룬 보도가 줄줄이 나왔던 지난 8월 16일부터 9월 17일까지 신문 보도를 분석한 자료를 통해 "8월 25일 이후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신씨를 비호하고 있다는 의혹 위주로 관련 내용이 증폭돼 보도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8월 25일 이후 신 씨의 사건을 보도한 기사의 제목은 '외제차 몰던 에르메스의 여인이 신용불량자, 신정아 도대체 누구 돈으로…'(조선일보), '신씨 고위공무원과 교제 자랑, BMW 외 벤츠도 타고 다녔다'(서울신문), '변양균-신정아 거처 10분 거리', '입에 담지 못할 물증 뭐길래'(문화일보), '또 다른 오빠들은'(한국일보), '키다리 아저씨 변양균-신데렐라 신정아 상식 밖 행적들'(동아일보) 등 지나치게 자극적이거나 당사자에게 악의적이었다.

 

  또 <문화일보>가 누드사진을 게재한 지난 13일도 '신 씨, 진짜애인 따로 있다?'(서울신문), '여자라서 출세하기 훨씬 쉽다'(중앙일보), '신정아와 같은 단지 오피스텔 홍기삼 전 동국대총장 입주'(국민일보), '멀쩡한 집 놔두고 왜?'(경향신문) 등 다른 매체도 크게 다르지 않은 보도 행태를 보였다고 분석했다.

 

  "국민이 알고 싶은 건 권력을 남용한 이들의 진실"

 

  김언경 부장은 "위에서 지적한 대부분의 보도는 거의 모든 취재원이 '익명'이었다"며 "스스로도 자신의 실명을 밝히기 싫지만 신정아 씨 사생활에 대해 할 말이 많은 사람들의 '카더라'식 이야기를 마구잡이로 모아 만들어 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신정아 씨가 학력을 속이고 부정한 방법으로 직위와 재산을 획득한 것에 대한 조사와 그에 상응하는 처벌은 있어야겠지만, 사법부가 아닌 언론 때문에 마녀사냥을 당하고, 철저하게 유린당하는 것은 더는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유선영 위원은 "누드 사진 보도 후 국민의 관심과 반응도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며 "신정아를 위로하는 카페가 인터넷에 등장하는가 하면, 호기심 삼아 열심히 언론의 가십거리를 소비하던 독자도 누드사진을 '이건 아니다'라는 일종의 경고로 받아들이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이 알고 싶은 정보는 '신정아의 남자들'이 아닌, 세금을 받아서 권력을 남용한 '변양균과 그의 남자들'"이라며 언론의 반성과 개선을 촉구했다. (강이현/프레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