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예술

사생활ㆍ인권 침해, 위험수위 넘었다

녹색세상 2007. 9. 13. 18:47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그동안의 해명과 달리 허위학력 파문의 신정아 씨와 가까운 사이로 밝혀지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또 두 사람의 관계가 신 씨의 동국대 교수임용, 가짜학위 의혹 무마, 전시회 기업 후원 등에 대한 영향을 미쳤는지, 불법적인 행위가 없었는지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방송보도도 10, 11일 이틀 연속 변양균 씨 관련 보도를 톱뉴스로 배치하고 6-9꼭지 정도를 할애해 비중 있게 전했다. 이 보도 중에서 지나치게 흥미위주로 변양균 씨와 신정아 씨의 사적인 관계를 들춰내는 데만 초점을 맞춘 보도가 있어 선정주의적인 사생활 침해가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사진, 인터넷 한겨레신문 기사에서 인용


  가장 먼저 MBC는 10일부터 둘의 관계가 ‘동거수준’이라고 단정적으로 표현했다. MBC는 두 번째 꼭지로 내보낸 <100여통의 연서>라는 제목의 보도에서 “100여통의 그간 오간 메일을 보면 두 사람의 관계는 거의 동거 수준이라고 검찰 관계자는 전했다”고 앵커멘트를 내보냈다. 이 보도에서는 검찰이 공식적으로 연애편지냐는 질문에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전하고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변양균 실장과 신정아 씨의 관계는 거의 동거수준이며 압수물을 보면 둘이 어떤 사이인지 금방 알 수 있다고 말했다”며 사생활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어 보도는 “둘이 주고받은 이메일은 100통이 넘고 노골적인 연애편지인 것으로 알려졌다”며 두 사람의 부적절한 관계를 부각했다. 이날 KBS와 SBS는 변 씨와 신 씨의 관계에 대해 청와대와 검찰에서 공식적으로 밝힌 ‘가까운 사이’라고만 표현했다.


  그러나 11일에는 방송 3사 모두 신 씨와 변 씨의 사생활 들추기에 노골적으로 나섰다. 특히 MBC는 이런 보도가 2건이나 됐다. MBC는 11일에도 ‘길 건너 살았다’에서 “변양균 전 실장과 신정아 씨와의 부적절한 관계는 5년 전부터였다. 둘 사이에 은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증거와 정황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며 두 사람의 사적인 관계를 들춰내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 보도를 내보냈다.


  이 보도는 검찰관계자의 말이라며 “변양균, 신정아 씨의 부적절한 관계를 알 수 있는 결정적 물증은 고가의 선물”이라고 전하는가 하면, “두 사람이 부적절한 교제를 시작한 건 지난 2002년 무렵으로 알려졌다”며 두 사람이 5년간 연애를 해왔다는 몇 가지 정황을 보도했다. 이어 “두 사람은 집도 한 동네에 구했다”며 변 씨와 신 씨가 살았던 건물에서 상대방의 건물을 찍어서 내보내며 얼마나 가까웠는지를 화면과 시간, 설명을 통해 보여주기도 했다.


  또 MBC는 <어디서 뭐하나?>(11일)라는 보도에서 변양균 실장의 과천 자택 전경을 상세히 보여주고, 최근 변 씨가 머물렀던 종로에 있는 주거형 호텔에 찾아가 야외가든, 실외수영장, 1000만원에 가까운 한 달 숙박비 등을 보여주며 얼마나 호화로운 곳인지를 강조하고 변양균 실장이 18일째 모습을 감췄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 보도는 말미에 “검찰이 변 씨와 연락이 닿고 있다”고 보도해 굳이 집까지 상세히 보여주며 변양균 실장이 종적을 감춘 것처럼 보도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KBS는 11일 <걸어서 5분 거리>에서는 “연애편지를 주고받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던 변 씨와 신 씨는 사는 곳도 걸어서 5분 거리의 지척이었다”며 두 사람이 살던 오피스텔에서 서로의 건물을 찍어 보여주며 두 사람이 얼마나 가까운 곳에 살았는지를 부각했다. 또 변 씨가 이번 사건이 불거지기 직전까지 오피스텔에 머물렀다며 호텔 직원에게 이를 확인하기도 했다. 이어 “KBS 취재결과 신 씨가 아이디 아트비즈(artbis)에게 ‘러브레터’라는 제목의 메일을 보냈다”며 어떻게 구했는지 모를 웹페이지를 보여주고, “변 전 실장은 신문 인터뷰에서 자신의 아이디가 ‘아트비즈’(artbis)라고 밝힌 바 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는 두 사람의 부적절한 관계를 증명하는 데 보도 전체를 할애했다.


  SBS도 <집도 가까운 사이>에서 “변 씨와 신 씨가 차로 불과 2분 정도 걸리는 매우 가까운 곳에 살았다”며 두 사람이 살던 건물을 찍어 내보내며 얼마나 가까운 곳이었는지를 보여주었다. 이어 “신정아 씨는 2천만 원에 월세가 2백만 원이 넘는 오피스텔로 올해 초 이사했다”며 “변 전 실장이 신 씨를 가까이서 도와주려고 이곳으로 이사시킨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일고 있다”고 전했다. 또 “신씨가 이곳에 살며 외제차도 끌고 다니며 3천만 원에 달하는 호텔 헬스클럽 회원권을 구입해 이용했다”며 신 씨의 이런 생활이 변 전실장의 도움이 있었다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 보도는 두 사람의 “은밀한 관계”에만 초점을 맞췄다.


  방송 3사 모두 두 사람이 동거를 한 사이인지, 연애편지를 주고받은 사이인지, 집이 얼마나 가까웠는지, 변 씨가 신 씨에게 생활비를 줬는지 등 수사와 관련 없는 사적인 문제까지 들춰내 흥미위주의 보도를 내보낸 것이다. 변 씨가 애초 신 씨와의 개인적 친분이 없다고 한 발언이 사실인가 아닌가는 이번 사건에서 매우 중요하다. 두 사람의 관계는 신 씨의 불법행위와 신 씨에 대한 변 씨의 비호행위를 설명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청와대와 검찰이 밝힌 ‘가까운 사이’, ‘친밀한 관계’에 관해 언론이 관심을 갖고 이를 지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방송이 사안과 관련 없는 두 사람의 사적인 관계를 과도하게 들춰내 두 사람이 ‘은밀한 관계’, ‘동거수준’, ‘부적절한 관계’임을 고발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은 올바른 접근이라 할 수 없다. 선정주의적인 사생활 침해에 다름 아니다.


  또한 이처럼 사건의 맥락을 넘어서서 개인의 사생활을 과도하게 들춰내는 것은 심각한 인격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 공인이 범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사건과 관계없는 사생활은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이런 선정적 보도가 방송사에게는 시청자들의 눈길을 잡기 위한 편리한 방편에 불과한 것일 수 있지만, 관련자와 가족에게는 불필요한 치명적 재앙일 수 있다. 앞으로 방송이 보도를 내보낼 때 관련자들의 사생활이나 인권 침해가 생기지 않도록 신중에 신중을 기해주기 바란다.


  이번 사건에 대한 방송의 지나친 선정적 태도는 이 사건이 워낙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안인데다가, 남녀의 부적절한 관계라는 대중적 흥밋거리까지 결부되어 빚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사건 내용과 관련 없는 선정적 보도와 그로 인한 프라이버시 및 인격권 침해의 위험에 대해 진지한 논의와 성찰이 있길 바란다. 이번 일이 언론으로 인한 인권침해를 최대한 방지할 수 있는 합리적인 기준과 실질적 가이드라인 마련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2007년 9월 12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