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위조 사건을 개인의 윤리성, 검증시스템 확충 등의 관점으로 풀려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 이 사건은 학력, 학벌 차별로 인해 발생한 사건이다. 차별의 구조를 푸는 것이 우선이지, 거짓말의 처벌 수위를 논하거나, 검증시스템을 고민하는 것이 논의의 중심이 되선 안 된다. 학벌 없이, 거짓말 없이도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를 소개하는데 역량을 집중하는 언론의 태도도 문제를 해결하는데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차별의 사회에서 예외적인 사례를 아무리 많이 소개한들 한국사회가 학벌사회라는 명명백백한 사실을 덮을 수 없다. 이런 방식은 마치 우리 사회가 학벌 차별의 사회가 아닌 능력사회인 듯한 착시현상을 일으켜 오히려 기존의 모순을 유지시킬 것이다.
유명 대중예술인들이 학력·학벌 부풀리기를 하거나 위조하는 것을 대학은 그동안 적극 방조해왔다. 언론과 포털은 그것을 받아쓰며 사태를 확대재생산해왔다. 이제 와서 몇몇 유명인의 윤리성을 문제 삼는 것은 그들을 희생양으로 모두의 잘못을 덮자는 의도로밖에는 해석되지 않는다. 학벌거짓말의 죄를 물을 것이 아니라 ‘왜 그들이 학벌거짓말을 했어야만 했는가’를 물어야 한다. 거짓말을 양산한 학벌사회를 그대로 두고 거짓말만을 치죄할 경우 최소한 거짓말은 없앨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학벌사회의 모순은 그대로 유지된다.
거짓말을 단죄하고, 검증시스템을 확충하는 방식은 학벌간판의 가치를 더욱 높여, 학벌간판을 향한 국민의 열망을 더욱 키울 것이다. 그에 따라 모든 국민이 학벌간판을 따기 위해 달려드는 비생산적인 무한경쟁의 구도도 확대재생산될 것이다. 학벌사회를 없애는 것만이 이런 사태의 재연을 막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거짓말을 추궁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학벌사회는 대학서열체제와 일류학벌 권력독점으로부터 자라난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를 깨면 학벌사회는 사라진다.
이제는 대학평준화를 논의할 때다. 대학서열체제는 평준화 이외에는 깰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대학이 평준화된다면 아무도 학벌간판을 무리한 방법까지 써가며 열망하지 않을 것이다. 일류학벌 권력독점을 없애기 위해선 인재할당제를 실시해야 한다. 특정 대학 출신자들이 고위공직을 독점하는 것을 금지해야 하며, 지방대 출신도 고위공직에 들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공공부문을 비롯한 사회 각계에 만연한 차별을 없애기 위해 학력-학벌 차별 금지법 제정을 고민할 시점이다. 학벌사회는 입시경쟁에서 시작된다. 정부는 입시경쟁을 완화할 강력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대학 진학자 플랜카드를 교문에 거는 등 학교 교육의 성과를 학벌취득과 연동시키는 관행부터 금지시켜야 한다. 또 입시경쟁을 중학생들에게까지 강제하는 특목고, 자립형사립고 등을 폐지해야 한다. 정부와 언론은 개인의 윤리성으로부터 어서 관점을 돌려야 한다. 이번 학력위조 사건은 몇몇 유명인의 개인적 품성 때문에 발생한 일회적 해프닝이 결코 아니며, 우리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모순으로 인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다. 학벌사회를 없애지 않으면 이 모순은 어떤 식으로든 끊임없이 폐해를 낳게 된다. 교육단체들은 앞으로 학벌사회철폐를 위해 지속적으로 움직여갈 것이다. 국민의 동참을 호소한다.
2007.8.27
학벌없는사회와 교육단체 공동기자회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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