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누드 사진까지 등장했다. 우리 단체는 9월 13일 석간신문 문화일보를 보며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어쩌다가 한국 언론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가?
1면에 당당히 ‘신정아 누드사진 발견’이란 제목을 큼지막하게 달고 한 장만 넘기면 실제 누드사진 두 장이 한 눈에 들어오게끔 만든 뒤, 그 위에 천연덕스럽게 “‘성로비’도 처벌 가능한가”라고 묻고 있는 문화일보를 보며 정작 우리가 묻고 싶다. 한 사람의 인생을 파탄내고, 인권을 무참히 짓밟은 ‘문화일보가 정녕 언론이 맞는가’라고 되묻고 싶다.
우리 단체는 문화일보가 신정아 씨와 관련해 제기한 ‘성로비 의혹’이 ‘한 건 터트리고 보자’는 식의 무책임하고 파렴치한 작태로서 스스로 언론이기를 포기한 것과 같다고 규정한다. 문화일보는 그 근거로 신정아 씨의 ‘누드사진’을 제시했으나 이는 본말이 전도된 주장이다. 우리 단체의 판단으로는 신정아 씨의 ‘누드사진’을 입수한 문화일보가 ‘특종’으로 터트리기 위해 애써 ‘성로비 의혹’을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고 본다.
문화일보의 기사에서 ‘누드사진’을 ‘성로비 의혹’과 연결 지을 수 있는 부분은 익명의 미술계의 한 인사가 “신씨가 영향력 행사가 가능한 각계의 원로급 또는 고위급 인사들에게 성로비를 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물증”이라고 말한 것밖에 없다.
문화일보는 이 한 사람의 ‘추측’으로부터 <‘성로비’도 처벌 가능한가>라는 기사로까지 나아갔다. 핵심은 ‘설혹 성로비가 있었다 하더라도 처벌하기 어렵다’, ‘부적절한 관계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불륜에 가깝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화일보는 “이른바 ‘성로비’도 처벌 대상이 되는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며 자기들이 처음 문제제기하면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는 자가당착적인 보도로 의혹 부풀리기에 나섰다.
기사 자체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 ‘문화계 유력인사의 집에서 누드 사진이 여러장 발견됐다’고 하면서 ‘왜 그 유력인사가 누드 사진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단 한 줄의 언급이 없다. 유력인사로부터 사진을 입수하면서 그 사람 집에 왜 사진이 있었는지, 그 사진이 어떤 경로로 촬영됐는지 문화일보는 묻지도 않은 것인가? 아니면 사진의 출처나 배경이 ‘성로비 의혹’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서 그냥 묻어둔 것인가?
‘누드사진’을 보여주기 위해 ‘성로비 의혹’을 만들어 내다보니 문화일보의 기사는 자폐적이기도 하다. “신씨가 ‘성로비’로 사립대 교수직이나 비엔날레 감독직을 얻었다고 해도 뇌물죄로 보기는 어렵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신씨가 문화계 인사들과의 부적절한 관계 후 이익을 얻었다고 해도 ‘성로비’를 받은 쪽은 배임죄 등이 문제될 수 있지만 신씨에 대해선 처벌이 곤란하다”며 ‘성로비 의혹’을 ‘가정’해놓고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단정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신정아 씨는 ‘죄’를 짓지 않았을 뿐더러 신정아 씨가 ‘성로비’를 했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만약 신정아 씨가 ‘성로비’를 했고, 그것이 범죄행위가 되며, 심지어 성관계를 담은 사진이 있다 하더라도, ‘물증’이랍시고 그 사진을 공개하는 것조차 우리는 용납할 수 없다. 하물며 ‘성로비’의 어떠한 증거도 되지 않는 ‘누드사진’을 싣는 문화일보의 행위를 우리는 결코 정상적인 언론활동으로 인정할 수 없다.
문화일보의 의도는 오로지 한 가지 일 것이다. “신씨가 맨몸으로 다소 쑥스러운 표정, 또는 무표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담겨있는” 사진에, “몸에 내의 자국이 전혀 없는 것으로 미루어 내의를 벗은 지 한참 후에 찍은 사진”이라는 설명을 덧붙여 보여주기 위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독자들의 관음증과 호기심을 최대한 자극해 이목과 관심을 집중시키려는 것이다.
결국 문화일보의 천박한 저질 상업주의 때문에 한 사람의 사생활과 인권은 무참히 짓밟히고 말았다. 신정아 씨는 13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언론이 이렇게 뒤집어 놨는데 내가 앞으로 무슨 사회활동을 할 수 있겠느나”며 “막말로 몇 사람 죽이고 도망 왔다고 해도 이건 아니다. 죽고 싶은 생각뿐이다”고 심경을 토로한 바 있다. 신정아 씨가 아무리 학력을 위조했고, 권력을 배경으로 부당한 이익을 취했다 하더라도 정말 이건 아니다. 문화일보는 자신들이 ‘흥밋거리’로 제기한 의혹과 사진이 한 사람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는 이번 문화일보의 보도는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본다. 법적 책임이든, 사회적·도덕적 책임이든, 독자들의 자발적이고 광범위한 구독중단이든 행위에 걸 맞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신문법 제4조는 ‘정기간행물 등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민주적 기본질서를 존중하여야 한다”,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권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신문법에는 제4조의 위반에 대한 처벌 규정은 없다. 하지만 제21조에서는 “음란한 내용의 정기간행물 등을 발행하여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현저하게 침해한 때”에 ‘6월 이하의 발행정지’나 ‘정기간행물 등의 등록취소 심판 청구’를 할 수 있다. 이번 문화일보의 보도는 신문법 제4조를 당연히 어겼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해석할 경우 제21조에도 해당된다고 본다. 국민의 알권리와는 무관하게 단지 흥밋거리로 ‘누드’ 를 보여줌으로써 사회윤리를 침해했기 때문이다.
이미 문화일보는 연재소설 ‘강안남자’의 지나친 음란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지난 해 우리 단체 또한 문화일보에 대해 “누구나 볼 수 있는 종합일간지에 <강안남자>와 같이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보여주기 힘들 정도의 음란물이 실려도 되는 것인지, 이런 음란물이 종합일간지에 실렸을 때 이를 규제할 합리적 제도는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누드사진’ 게재를 포함해 우리 단체는 문화일보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을 검토할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다른 언론들이 문화일보의 이번 보도를 지금까지의 보도태도를 되돌아보는 ‘경종’의 계기로 삼아 줄 것을 요구한다.
사실 신정아 씨의 학력위조 의혹과 관련해 온통 ‘학력검증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떼거리 저널리즘과 냄비 저널리즘의 진면목을 보였던 한국 언론들이 마침내 신정아 씨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부적절한 관계’에 이르러 갈 때까지 간 황색 저널리즘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밝혀야 될 진실이 뭔지, 굳이 밝힐 필요도 없고 드러내서도 안 되는 사적 보호영역이 뭔지, 아무 것도 분간하지 못한 채 오로지 ‘한건주의’와 ‘낙종에 대한 우려’에만 사로잡힌 한국 언론들을 보며 우리 단체는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문화일보 외에 다른 언론이 이 같은 사진을 입수했다면 십중팔구 문화일보와 비슷한 보도태도를 보였을 가능성이 크다. 이미 문화일보의 ‘누드사진’ 보도는 나오자마자 각종 매체를 통해 인터넷 최고의 관심사가 되었다. 마치 경쟁하듯 신정아 씨의 오피스텔과 변양균 전 정책실장의 숙소를 보여주고 그 거리를 알려주는 것은 물론, ‘분홍빛 e-메일’에 담긴 ‘사연’을 얻어내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는 우리 언론들의 경쟁이 결국 문화일보의 ‘누드사진 게재’라는 ‘괴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언론들은 부디 자중하고, 또 자중하라.
2007년 9월 13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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