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민중

"사람이 아닌 노예였던 563일, 법정 나오면서 펑펑 울었다"

녹색세상 2007. 8. 8. 18:55
 

"진실은 승리한다. 이랜드 노조도 우리처럼 이길 것이다."

 

  ▲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민주노총 집회에서 이옥순 르네상스호텔노조 위원장이 이랜드-뉴코아 비정규노동자 해고철회와 비정규악법 전면재개정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일오후, 수화기 너머로 이옥순(53) 르네상스호텔노조 위원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위원장에게 "승소 판결문을 받았느냐"고 묻자 "받았다, 기가 막히게 기분이 좋다"는 말이 돌아왔다. 그와의 사연은 지난달 24일로 돌아간다. 이날 저녁 6시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이랜드 노조 문화제'에서 이 위원장을 만났다. 지난 6월 11일 인터뷰 때 "좋은 일이 있기를 바란다"는 끝인사를 나눈 후 50여일 만에 다시 만난 자리였다.


  인사말은 현실이 되어 있었다. 일터에서 쫓겨나 길거리에서 농성한 지 563일째를 맞던 지난달 19일, 법원은 그들에게 '정규직으로의 원직복직' 판결을 내린 것이다. 소송 제기 후 2년 8개월 만에 나온 1심 판결이었다. 8월 1일 판결문이 공개돼 노조원들은 다시 한번 승리를 확인했다.


  노동계는 "이번 판결이 그들만의 승리가 아니다"고 평가했다. '이랜드 사태'로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른 요즘, 그들의 승리는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희망'이 되었다.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 위원장에게 "(판결은) 가뭄에 단비다, 큰일 했다"고 말했다.

"법정을 나오며 펑펑 울었다"


"울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도 진한 눈물이었다."

 

  르네상스호텔 노조 조합원인 배길자(56)씨가 '지난달 19일의 법정'을 떠올리며 말했다. 이어 "판사의 판결을 적으려 했지만 믿을 수가 없어 한 글자도 적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법정을 나오면서 말도 못하고 펑펑 울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 역시 "새벽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며 그때의 감정을 상기된 어조로 전했다. 이 위원장과 노조원 10명이 르네상스 호텔을 상대로 '체불임금 지급 및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을 낸 것은 지난 2004년 11월이었다.


  소송을 낸 사연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르네상스 호텔 객실관리부 정규직이었던 그들은 2002년부터 '르네상스서비스팀(RST)'이라는 용역업체로 소속이 바뀌었다. 이 위원장은 "그땐 용역이 무엇인지 몰랐다"고 밝혔다. 용역전환으로 그들의 임금은 1/3로 깎였고 고용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그들은 이내 노조를 만들었다. 강남노동사무소에 불법파견 진정을 내 2004년 5월 '불법파견이다'는 판정을 받았다. 이에 힘을 얻어 소송을 냈다.


  하지만 소송은 너무 길었고, 그들에게 안 좋은 일들이 닥쳤다. 2005년 11월 검찰은 불법파견과 관련 호텔에 대해 무혐의 처리했다. 그리고 한달 후 이 위원장을 비롯한 노조원 20여명은 그해 12월 31일 계약해지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일터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법원, '정규직으로 원직복귀' 판결


  배씨는 소송과정을 "사람이 아닌 노예였던 시기였다"고 기억했다. "진실이 돈 앞에 묻힌 것"이라고도 말했다. 1심 판결을 앞두고 노조원들에겐 기대보다 걱정이 앞섰다. 지난달 19일, 서울중앙지법 민사41부는 르네상스 호텔 노조원 11명에게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RST는 르네상스호텔로부터 직접 지휘를 받아왔다"며 "불법파견이다"고 판결했다. 이어 "근로자파견법에 따라 고용 후 2년이 경과했으므로 원고에게는 르네상스호텔 종업원의 지위가 있음을 확인한다"고 밝혔다. 이는 곧 '정규직으로의 원직복귀'를 의미하는 것이다.


  재판부에 따르면 호텔은 노조원들에게 향후 복직 시까지 매월 113만3천원을 지급해야 한다. 여기엔 계약이 해지된 2006년 1월 1일부터 지금까지 밀린 임금도 포함된다. 또한 소송비용의 경우 1/5을 제외한 나머지를 호텔에서 부담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노조 쪽 소송 대리인인 이치선 변호사는 "재판부에서 전향적인 판결을 내렸다"며 "복직 때까지 임금을 지급하라는 건 최초인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이어 "고등법원에 가서도 법리적인 부분이 뒤바뀌지 않을 것이다"며 2심 판결에 대해서도 기대감을 나타냈다.


  르네상스호텔노조가 소속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의 이성종 교육선전국장 역시 "사법부의 판결을 환영한다"며 "호텔은 대법원까지 끌고 가지 말고 직접고용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전했다. 누구보다 르네상스호텔노조 노동자들이 판결의 의미를 가장 잘 알고 있다. 배길자씨가 말했다. "우리는 십 수 년 정규직으로 일하고 아웃소싱(용역)되어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해고됐다. 우리의 사례는 이 시대 대한민국의 부당한 기업경영의 대표적인 케이스다. 우리가 이겨야 다른 곳에서도 경영자들이 노동자들을 함부로 못한다."


 

  ▲ 지난 6월 11일에 만난 이옥순 르네상스노조 위원장은 "먹고 살겠다는 사람의 일자리를 어떻게 뺏을 수 있느냐"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호텔 쪽 "1심 효력 없다, 항소할 것"


  반면 호텔 쪽은 "1심 판결이기에 법적 효력은 없다"며 "항소를 할 것이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양문선 르네상스호텔 인사부 이사는 "판결을 내린 민사41부는 비정규직 문제가 불거지자 시류에 영합한 판결을 내린 것이다, 부당하다"고 말했다. 또한 "법조계에서 민사41, 42부는 주류와 배치된 판결을 내리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고 주장했다. 양 이사는 이어 "불법 파견은 보통 광의적으로 해석한다"며 "고등법원에서는 불법파견이라 하더라도 '고용의제'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고용의제란 '고용된 것으로 간주한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이치선 변호사는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양 이사는 또한 "현재 특급호텔의 99%가 객실 청소 등의 업무를 용역화 하고 있고, 검찰에서 무혐의 판정이 난 일이다"며 "사법부 판결에 곧 질서가 잡힐 것이다"고 말했다. 양 이사는 마지막으로 이번 판결이 노조원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법원에서 지더라도 113만3천원의 임금으로 정규직화하면 된다"며 "사실상 노조원들의 기대에는 못 미치는 판결이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랜드 노조는 기필코 승리할 것"


  사실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 시작이다. 이 위원장은 2일 "호텔 쪽으로부터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관련 민형사 고발 건 때문에 경찰서에 다녀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위원장은 "판결문을 보여주고 왔다"며 밝은 목소리를 말했다. 이 위원장은 "요즘 호텔 앞 농성장을 자주 비운다"고 말했다. 이랜드 노조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원직복귀 판결을 이끌어낸 이 위원장은 이랜드 노동자에겐 '희망'이다. 이 위원장은 이랜드 노동자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잘못된 법 때문에 여성노동자들이 제대로 대접을 못 받고 너무 힘들어한다. 노동자를 악랄하게 대하는 악독한 기업에 대해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싸워 이겨주길 바란다. 옳은 일이기 때문에 기필코 승리하리라 믿는다."

 (오마이뉴스 퍼옴)

  ▲ 지난 7월 20일 오전 서울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몰매장에 경찰들이 진입해 점거 농성을 펼친 이랜드 노조원들을 연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