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민중

이랜드 여성노동자들이 싸움에 나선 이유

녹색세상 2007. 8. 8. 20:56
 

‘보조’로 가치절하 되는 여성노동의 문제 해결돼야


삼성SDI 사내하청업체 하이비트 노동자 300여 명

울산과학대 청소용역 노동자 27명

광주시청 청소용역 노동자 24명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자살 시도

KTX-새마을호 승무원 450여 명

뉴코아-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 700여 명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들은 대부분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며 만든 비정규법이 시행되기 직전이나 직후 해고 위기에 놓였거나 놓여있는, 아니 이미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그리고 힘든 싸움에 나선 노동자들이다. 싸움 끝에 몇 몇은 복직이 되기도 하고, 몇 몇은 해고가 된 상태에서 싸우고 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대부분 여성노동자들이라는 것이다. 알몸시위까지 벌이며 해고에 맞서 싸운 청소용역 노동자들도, 일 년이 넘게 싸우고 있는 KTX 승무원들도, 자살까지 시도하며 비정규법의 문제점을 알렸던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끝이 보이지 않는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는 뉴코아-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대부분 여성이다. 그렇다면 왜 여성노동자들이 싸움에 나서고 있는 것일까?

 

  ▲ 20년 전, 구로에서 동맹파업을 벌였던 여성들 [구로동맹파업 20주년 기념사업회]



20년 전 그들과 20년 후의 그들


  여성노동자들은 이미 한국에서 노동운동이 시작되는 시점부터 싸우고 있었다. 그녀들은 오빠의 학비를 위해,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대거 공장으로 들어갔다. 85년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구로동맹파업에 참여했던 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재작년 구로동맹파업 20주년을 맞이해 열렸던 증언대회에 나선 당시 대우어패럴노조 조합원 권영자 씨는 이렇게 말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붙었지만 오빠의 등록금을 대기 위해서는 내가 포기해야 했어요. 그래서 직업학교를 갔고, 졸업식을 마치지 마자 커다란 관광버스가 와서 우리를 싣고 구로로 왔어요”


  이렇게 그들은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오빠의 등록금’을 대기 위해 공장으로 들어선 거였다. 당시 그녀들은 가족을 책임진다는 명분을 가지고 있었지만, 속내는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오빠’의 등록금을 대는 ‘보조’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조’ 역할로 취급당했던 그들의 임금은 남성노동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 20년 후 다시 창문에 선 그녀들/참세상 자료사진


20년이 지난 지금 뉴코아-이랜드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은?


  호혜경 이랜드일반노조 조합원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가 4명 있어요. 아이들이 많아서 그런지 남편 혼자 버는 돈으로는 생활이 안돼요. 그래서 집 가까운 홈에버에 취직을 했어요. 얼마 되지 않는 돈이지만 생활비로 쓸 수 있잖아요. 근데 하루아침에 해고되고 실업자가 돼버렸어요”


  그녀는 “남편 혼자 버는 돈으로는 생활이 안 되는” 세상에서 먹고 살기 위해 홈에버에 취직했다. 그러나 그녀의 노동은 “남편 혼자 버는 돈으로” 생활해야 하는 사회에서 반찬값 정도 버는 ‘보조’적인 것으로 취급당했다. 그녀는 하루 10시간 꼬박 앉지도 못하고 일해도 겨우 최저임금을 받았다.


가족 안에서의 여성의 노동, 가족 밖에서의 여성의 노동


  시대는 바뀌고 바뀌어서 여성들이 담당했던 제조업은 사양산업이 되고 여성들은 대거 서비스업으로 진입했다. 돈을 계산하고, 청소하고, 아이들을 돌보고, 웃으며 고객의 안위를 돌보는 일이 여성들에게 맡겨졌다. 이런 서비스업 부분을 정부는 새로운 사업이라 칭하며 여성들의 일자리를 대거 확대하는 계기로 삼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비정규직이라는 불안정한 일자리와 남성들의 절반도 안 되는 저임금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런 노동을 ‘돌봄 노동’이라고 칭한다. 돌봄 노동의 역할은 흔히 가족 안에서 여성이 담당하고 있던 부분이다.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 가계부를 쓰고, 청소를 하고, 아이들을 돌보고, 밥을 하는 등 그녀들이 하고 있던 노동은 가족 안에서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했으며, 그녀들은 집에서 아무 일도 안하고 놀고 있는 것으로 취급당했다. 이렇게 핵심 노동이 아니라 ‘비핵심’으로, 남성을 ‘보조’하는 노동으로 취급되었던 여성들의 노동은 가족 밖에서도 생계를 책임지는 노동이 아니라 생계를 ‘보조’하는 노동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여성의 노동은 비정규직으로, 저임금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랜드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대량해고 사태는 이런 맥락에서 시작되었다. 이미 비정규직에, 저임금으로 몰려 있던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을 이랜드 사측은 핵심적인 업무로 생각하지 않고, 외주화로 더 낮은 임금의 여성노동자를 고용하면 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고정갑희 한신대 교수는 본 지 논설을 통해 “보호와 처벌의 주체인 정부와 법은 비정규직 중에서도 여성을 계속 사회적 약자로 내몰고 있다”라며 “KTX 여승무원노조와 이랜드 여성노동자들이 오늘 비정규직 투쟁의 최전선에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라고 지적하고, “비정규직을 확산하는 자본은 애초에 가부장적이었고 지금도 가부장적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남성의 노동만을 핵심으로 인식하는 ‘남성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여성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저임금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뉴코아-이랜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싸움은 20여 년 전 동맹파업을 벌였던 구로의 여성노동자들의 싸움이며, 울산에서 광주에서 서울에서 전국 곳곳에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청소용역, 학교비정규직, 승무원들의 싸움인 것이다. (참세상 퍼옴)

 

  ▲ 남성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는 여성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저임금 노동자로 몰아가고 있다./참세상 자료사진


“여성을 둘러싼 사회구조 자체가 변해야”


  이에 대해 김혜진 사회진보연대 여성부장은 “여성들의 노동은 여전히 뿌리 깊은 ‘가족임금 이데올로기’로 인해 항상 ‘부수적’인 것, 즉 남성 생계부양자의 노동에 대한 ‘보충물’로 간주되었다”라며 “자본은 남성에 비해 순종적이며, 노조를 조직할 경향이 더 낮고, 더 열악한 작업환경을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는 대상인 여성을 선호하게 되었는데, 이런 면에서 여성의 고용이 확대된다는 말은 곧 저임금 서비스 부문과 비공식 부문으로의 고용 증대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뉴코아-이랜드 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해 최근 대부분의 비정규직 투쟁과 마찬가지로 단지 ‘여성 노동자들이 많은 사업장의 투쟁’ 이상의 것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라며 “여성 노동자의 노동권 쟁취가 단지 고용 안정만으로 달성될 수 없다는 점에서 여성을 둘러싼 지배적인 관념과 이데올로기, 노동 조건, 사회구조 전반을 변화시키는 요구를 포함시켜낼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여성의 노동을 둘러싼 사회 전반의 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제2, 제3의 이랜드 사태는 또 다시 벌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