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제

(펌)진보의 세대교체

녹색세상 2007. 7. 30. 16:49
 

  ‘짝퉁 진보’. 2년 전 한나라당이 노무현 정부에 대해 한창 색깔론을 제기하고 있을 때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이 내뱉은 논평이다. 노 의원의 표현대로 노무현 정부와 범여권은 자유주의적인 개혁세력으로 진보라고 보기 어렵다. 그리고 한국정치의 진정한 진보세력은 범여권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이다.

 

  ▲골치 아프긴 하지만 민주노동당이 하는 것은 ‘그래도 괜찮은 것 아니냐’고 말하는 고마운 벗들.


   민주노동당의 열띤 대선후보 경쟁


  대통령선거를 채 다섯 달도 남겨 놓지 않은 현재 한나라당은 이명박ㆍ박근혜 후보 중 누가 덜 썩었는가 하는 부패경쟁을 벌이고 있고 범여권은 감동 없는 통합논쟁으로 날을 새우고 있다. 그런 가운데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지 않지만 민주노동당은 보수정치권에 당내경선이란 이런 것이야 한다는 모범을 보여주듯이 다양한 정책을 놓고 뜨거운 정책 대결을 벌이고 있다.


  사실 진보세력이 대중적 결정에 의해 독자 후보를 낸 것은 1997년, 2002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이다. 그러나 1997년과 2002년 대선의 경우 민주노총의 초대 위원장이었고 민주노동당의 간판이었던 권영길 의원이 각각 국민승리 21과 민주노동당 후보로 단독 출마해 내부 경선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 대선은 다르다. 권 의원 이외에도 ‘판갈이’ 발언과 같은 촌철살인의 탁월한 대중과의 소통 기술로 장안의 화제를 몰고 다니는 노회찬 의원, 그리고 부드러운 카리스마에 뛰어난 정책적 콘텐츠로 정치부 기자들과 전문가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는 심상정 의원이 참여해 뜨거운 경선을 벌이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진성 당원제에 이어 정책대결로서의 당내 경선이라는 모범을 한국정치에 선사해주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입장에서도 당내 경선이라는 새로운 전통의 도입과 차세대 지도자의 육성이라는 중요한 자산을 얻게 됐다. 그러나 아쉬운 것이 있다. 그것은 경선의 열기가 본격적으로 뜨거워지고 있는 시점에서 당내 최대 정파인 자주파가 권 의원 지지를 선언한 것이다. ‘실체를 밝히고 당당히 정파 선언을 하라’는 당내의 수많은 요구에 그들은 ‘모르쇠’로 일관하며 입을 닫아 버리는 치사함을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특정 지역의 지역위원회 당직 선거가 있으면 거주지나 직장이 수도권임에도 지방으로 당적을 옮기는 ‘올인 전술’을 구사하는 치사함도 마다하지 않아 많은 눈총을 받고 있다. 물론 특정 정파가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자유이나 그 방식은 성원들의 의사를 물어 민주적인 방식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구성원들의 총회나 논의를 그쳐 결정한 것이 아니라 예전의 동창회에 일부 골목대장들이 모여 쑥덕거려 80년대 비합법 투쟁하듯 일방적으로 지침을 내린 것이 문제다.

 

  그러나 여론조사가 보여주듯이 그간의 거품이 꺼지면서 당의 지지도가 하락해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대중적 흥행을 통해 당의 부활을 도모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인 당내 경선을 최대 정파가 특정 후보를 지지해 김을 빼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처사이다. 특히 그 동안 민주노동당이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자위권 발언 등을 통해 지지층이 되어야 할 노동자와 서민들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친북적이라는 비판을 듣고 있는 자주파가 권 후보를 지지하고 나선 것이 당의 득표와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아가 권 후보는 경선에서 승리하더라도 ‘자주파의 후보’라는 멍에를 지고 다니게 됐다.


  자주파의 지지문제와는 별개로 아쉬운 것은 권영길 의원이 과감하게 이선으로 물러나 진보정당의 세대교체를 주도하지 못한 것이다. 권 의원이 민주노총의 출범으로부터 민주노동당의 발전에 이르기까지 그 동안 진보진영의 발전에 기여한 것은 일일이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이번 대선과 내년 총선에서 몰락하지 않으려면 식상한 ‘또 그 얼굴’이 아니라 새로운 얼굴과 새로운 논리와 새로운 어법이 필요하다.

 

  ▲이제 여성도 ‘정치를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냐’고 힘주어 말하는 친구에게 골목대장들의 결정과 일방적인 지침 하달을 뭐라고 말해야 할지.....


    필요한 건 패기와 젊은 이미지


  그 뿐만이 아니다. 흔히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연령을 중요하지 않다고들 할지 모르나 진보의 경우 그런 것만은 아니다. 대학교수 정년이 65세고, 성직자라 부르는 목사ㆍ신부도 70세면 은퇴하는 것은 고령이 가져올 수밖에 없는 이러저러한 한계가 분명히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지 진보답게 곰곰이 곱씹어 봐야 할 것이다. 권 의원이 민주노동당의 후보가 될 경우 이명박을 제외한 박근혜ㆍ손학규ㆍ정동영 등 범여권과 한나라당의 후보가 누가 되든 오는 대선에서 진보후보가 가장 나이가 많은 노령후보가 되고 만다.


  보수 세력과 대결하기 위해 진보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선거판이 아니라 젊은 패기와 변화의 이미지이다. 지금이라도 권 의원이 “나 아니면 안 된다”는 3김식의 욕심을 버리고 당의 발전과 후진 양성을 위해 과감하게 2선으로 물러나기를 바라는 것은 정치의 논리를 모르는 순진한 먹물의 기대일까? (손호철/서강대 정외과 교수 글에서 일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