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민중

지도부 체포 포기하고 법 개정 나서라

녹색세상 2007. 7. 9. 22:30

이랜드 사태와 노 정권이 해야할 일

 

  한 치도 다르지 않았다. 노동자들의 시위와 점거농성이 있자 비로소 언론은 눈길을 돌렸다. 여전히 노사관계를 사건 기사의 틀로 본다는 증거다. 하지만 ‘이랜드 사건’은 돌발사건이 결코 아니다. 오래 전에 예정된 게 결국 일어났을 뿐이다. 더구나 점거농성을 몇 차례나 예고했고 마지막 경고까지 보낸 터다. 점거농성이 벌어지자 이랜드 경영진은 새삼 놀란 듯이 텔레비전을 통해 '인질극' 운운하며 나섰다. 이른바 ‘공권력’도 이미 균형추를 잃었다. 점거농성 이전부터 이랜드 노조 지도부 6명에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아직까지 이랜드 경영진은 “물리적 공권력 투입은 가급적 자제해야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가급적’이라는 말에도 묻어나지만 '물리적 공권력 투입'의 여론전을 펴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길이 없다. 이랜드 경영진은 '불법 점거'로 천문학적 손실을 입었다며 ‘수순 밟기’ 선전전을 펴고 있다. 소비자들의 불편까지 들먹인다. 명토 박아 묻는다. 그 책임을 왜 노동자만 져야 하는가. 노사관계를 파탄으로 몬 경영진에게 일차적 책임이 있지 않은가.


  ▲ 8일 오후 이랜드 그룹 계열사인 서울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몰에서 점거농성 중인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민주노동당 문성현 대표와 지도부


공권력은 중립을 지켜야할 의무 있어


  그럼에도 이랜드는 입주업주들을 대상으로 ‘공권력을 투입해 달라’는 내용의 탄원서에 서명을 강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이 경찰의 진압을 요청하고 있는 곳은 어린 자녀를 둔 어머니들이 대다수인 농성장이다. 사태의 발단과 현재까지의 과정은 과거와 한 치도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이 순간 이후는 달라야 마땅하다. 무엇보다 이랜드 사태에서 공권력은 중립을 지켜야할 의무가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량 해고되고 대량 생존권 투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찬찬히 돌아보라. 노무현 정권은 ‘비정규직 법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때 무엇이라 강변했는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물론, 전문가들이 ‘보호법’이 아니라 '해고 법'이라고 비판했을 때, 모르쇠로 일관했다. 심지어 정규직 노동자들이 이기주의적 발상으로 법 통과를 가리 틀고 있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서슴지 않았다. 현실은 어떤가. 이랜드가 살아있는 보기다. 비정규직법 시행을 계기로 할인매장의 비정규직 계산원 750여명을 해고하거나 용역업체로 넘기겠다는 경영진을 보라. 이미 홈에버에선 2년이 안 된 계약직 사원 400여명이 기간만료를 이유로 해고됐다. 뉴코아에선 외주화를 거부한 계약직 사원들을 잘랐다.


  그래서다. 적어도 노 정권이 논리적 일관성을 지니려면, 지금 할 일은 결코  ‘공권력 투입’이 아니다. 스스로 강변한 ‘입법 정신’이 진정이었다면, 최소한 중립을 지키는 게 의무다. 아니 최소한의 예의다. 따라서 노조 지도부를 체포하겠다거나 여성 농성자들을 폭력으로 진압하고 연행하는 야만은 않겠다고 분명한 의지를 밝혀야 옳다. 그런 ‘의지 천명’이 점거 사태를 노사자율로 빠르게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아울러 법의 구체적 조항이 입법정신을 따라가지 못한 게 드러난 참에 마땅히 법을 바꿔야 옳다. 이 또한 ‘쇠귀에 경 읽기’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쓴다. 뒤늦게라도 법의 맹점을 깨달았다면, 법을 개정하는 데 청와대가 앞장서기 바란다.


  비단 이랜드만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도 850만 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곳곳에서 차별받고,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다. 한 낮에 찌는 더위에서 단식하며 외롭게 기나긴 투쟁을 벌이고 있는 KTX 승무원들을 보라. 행여 이제 ‘여당’이 지리멸렬 되었다거나, 대통령에게 무소불위의 ‘힘’이 없다고 언구럭 부리지 말라. 한미FTA 체결을 강행하는 ‘막강한 권력’과 ‘가공할 추진력’의 단 10%만이라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데 써 보라. 그것은 다름 아닌 ‘대통령 후보’ 노무현의 선거 공약이 아니었던가. (손석춘/오마이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