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미국 거주 한인 1.5세 시드니 손 변호사
‘사과나 사죄’ 옳지 않고 한미관계 우려 어이없어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참사로 미국사회가 큰 충격에 빠졌다. 더군다나 최악의 총기참사의 범인이 한국국적의 이민자인 재미동포 조승희임이 밝혀진 뒤 미국 내 한국동포와 유학생들은 또 한 번의 충격과 대 혼돈에 빠졌다. 한국의 언론은 자국인이 최악의 총기참사의 범인으로 드러나자 대대적인 보도를 하고 있고, 미국의 매체들도 ‘범인은 한국인’이라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미국에 이민 가서 변호사로 활동하는 한 1.5세 한국인이 기고를 보내왔다. 16살에 이민을 가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미국에서 졸업한 33살의 시드니 손 변호사는 이 기고에서 “이번 일은 한국인으로서 저지른 일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인이 죄책감을 느껴야 할 일이 아니다”라며 “조씨에게 심어주지 못한 정체성, 주체성과 소속감에 미안해 하고 또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드니 손 변호사가 보내온 기고를 소개한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버지니아공대 학생들이 17일 블랙스버그 레인 경기장에서 열린 총격사건 희생자 추모식에서 부시 대통령의 추모사를 듣고 있다. 블랙스버그/AP 연합
가해자의 국적 이슈화 없어…민감한 언론이 더 슬퍼
미국에 살고 있는 1.5세 한국인으로서 언론과 각종 매체에 올라 있는 기사 및 댓글을 보고 이 글을 씁니다. 우선 이번 사건은 안타깝고 슬픈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해 너무 민감해진 언론과 몇몇 여론은 저를 더욱 슬프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선 미국에선 언론 이외에는 가해자가 한국인이었다는 것에 대해 이슈화가 되고 있지 않습니다. 미국시민들과 거주인들은 이 일이 한국정부에 또는 한국인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 일이 일어난 후 소수의 몰지각한 사람들이 아시안계와 한국인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을 수도 있으나 그런 일로 한국인들이 창피하거나 수치심을 느낄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우린 세계 어느 곳에서도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고 있는 데 이런 일이 우리가 어깨를 다시 움츠리고 또 한국인임을 감춰야 하는 이유가 된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우리가 아직도 마치 주인집에 얹혀사는 객에 지나지 않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한국인은 마치 화장실도 안가고 화도 안내고 또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로만 인식이 되길 바라는 태도는 우리에 관한 인식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민족의 우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막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한민국과 한국인은 모든 문화권에 사회와 사람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다면성과 인간으로서 느끼는 감정과 다채로운 인격의 집합체임을 세계가 인정할 때 우린 비로소 객이 아닌 한 주인으로서의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수학에 능하고 또 고분고분한 아시아인들 중 의 하나인 나라가 아닌 뛰어난 예술가와 운동선수뿐만 아닌 우리와 같은 보통사람들도 존재하는 나라로 인식될 때 우린 비로소 세계와 동등한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버지니아공대의 사관후보생들이 17일 블랙스버그 카셀 대경기장에서 열린 총격사건 희생자 추모집회에서 경례를 하고 있다. 블랙스버그/AP 연합
주인집에 얹혀사는 객이라는 생각에서 비롯
또한 이 일로 인해 한국 사람들과 한국 정부가 미안해 할 일도 사죄할 일도 없고 또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태어난 나라가 한국이라고 해서 또 영주권자라 해서 그가 저지른 행동이 우리에게 죄책감을 느끼도록 하는 계기가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은 우리가 마치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주체적으로 관할한다는 착각에 빠진 생각입니다. 그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에 대해 집착하고 있는 것은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아닌 바로 우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번 사건은 한국정부도 또 한국인도 주동한 일이 아니라 단순히 개인이 개인적인 이유로 저지른 일입니다. 그는 누구와도 의논하거나 동조하지 않았으며 또 한국정부와 한국인을 대표해서 이 일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우린 이 일에 관해 정부적인 차원에서 사과를 해야 한다느니 또 국민 개개인이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느니 하는 말들이 버젓이 언론에 옳은 말인 양 유포되고 있습니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이 일로 한미관계 와 FTA체결에 문제가 될 수 있지 않느냐는 소위 전문인들의 의견들입니다. 나라간의 일이 무슨 아이들의 소꿉장난인 것처럼 비유되고 비화되는 말들을 들으며 저는 큰 실망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일이 반대로 우리에게 일어났을 경우 정부에서 보복적인 차원에서 나라 일을 결정할 수도 있음을 가정하는 것 같아 우리의 언론에서 모시고 있는 이런 소위 전문가 분들의 자질과 인성이 의심스럽습니다.
미 장갑차 사건과 달라……미군이 공무 중 일으킨 사고
이 일을 또 미군 장갑차 사건과 비유해 사죄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두 가지 일은 아주 다른 상황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미군장갑차 사건은 우리나라에 주둔한 미국을 대표하는 미군이 공무집행 중 일으킨 사고입니다. 개인적으로 일으킨 사고가 아니라 미국의 공무집행 중 부주의로 일어난 일이므로 당연히 미국정부와 미군은 정식으로 한국에 사과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조씨가 저지른 일들은 그의 개인으로서 삶과 결정에 의해 일어난 일입니다. 우리가 슬퍼하고 안타까워해야 하는 이유는 정작 그가 한국인이었다는 것에 대한 수치심과 미안함이 아니라 그가 이런 결정에까지 이르게 한 사회적인 고립과 주체성에 대한 상실에 있어야 합니다.
외톨이로 선천적 정신분열증 취급
저는 16살 때 가족의 결정으로 미국에 이민 와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하고 이젠 Korean-American 변호사로 살아가고 있는 33세 남성입니다. 그래서 전 조씨의 소식을 듣고 제 주변에 있는 많은 친구들과 동생들을 떠 올렸습니다. 미국과 한국 언론에서는 외톨이, 왕따라는 표현을 써가며 조씨가 혼자 고립된 생활을 즐기고 선천적 정신분열증이 있는 사람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 조씨가 저를 포함해 어린나이에 미국에 온 제 친구, 동생들과 비슷한 환경 속에서 비슷한 경험을 하며 살아왔음을 알기에 더욱 가슴 아프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미국인들 텃세나 차별 탓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이질감
제 주변에도 조씨와 같이 어린 나이에 미국에 와 주체성과 소속감의 결핍으로 고뇌하고 방황하는 한국인들이 많습니다. 사람은 대체적으로 자기가 주체적이면서도 사회에 소속되어 있길 바랍니다. 특히 어린 나이에는 그것에 대한 확신이 없을 경우 방황하고 또 고민하게 됩니다. 저 또한 한국인으로서 여기가 어색하고 또 소외감을 느끼며 지낸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꼭 미국인들의 텃세나 차별 탓이 아니라, 내가 완전한 한국인도, 또 미국인도 아니라는 자신에 대한 이질감에서 오는 번뇌입니다. 하지만 저는 주변사람들과 가족의 사랑과 관심으로 큰 방황 없이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한국 언론에서는 그가 한인모임에 나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도하며 마치 한인모임에 참석하지 않았기에 그토록 고립된 생활을 즐기는 비정상 적인 사람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다릅니다. 대학에 존재하는 한인모임들은 한국에서 온 한국 유학생들이 주도하는 모임이거나, 혹은 2세들이 주동해 만든 모임들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정체성과 주체성이 결핍된 1.5세들은 이런 모임에서도 어색하게 느끼며 또 관심 밖의 인물로 취급받기 쉽습니다. 그러니 조씨도 이런 모임에 참여하는 것 차체가 어색하고 불편했을 겁니다. 미국인들은 그를 한국인으로, 또 한국인들은 그를 미국인으로 보는 눈 때문에 자기 자신에 대한 이질감으로 혼자 있게 되고, 또 그러면서도 누군가에 관심을 바랬을 겁니다. 그러다 관심을 보이는 한 사람에게 집착하게 되고 또 그로 인해 배신감을 느꼈을 때 세상에 대한 분노와 상실감에 빠졌을 겁니다.
혼자이다 관심 보이는 사람에 집착……배신감 느끼면 세상에 분노
또 미국에 일찍 이민 오신 대부분의 가족이 그렇듯 부모님들은 생계에 전념하시느라 어린아이들에게 특별히 교감과 정체성에 대한 토론을 나눌 기회가 없는 게 사실입니다. 또 어린 아이들과 그런 대화를 나누는 방법이 막막하신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일정한 나이가 되면 대부분 영어만을 사용하게 되는데, 이것이 더더욱 이런 대화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대화를 어렵게 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고립되길 즐기는 것이 아니라 어색함 때문에 다른 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고립되는 것입니다. 조씨가 행한 일은 정말 끔직하고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조씨에게 손가락질하고 수치스러워 하기 전에 우리가 조씨에게 심어주지 못한 정체성, 주체성과 소속감에 미안해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한국인은 긍지와 자주성, 민족성이 강한 민족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너무 성공과 목적에 집착하여 그것을 이룬 이들만이 우리의 민족이며 대표라 생각합니다. 또 미국에서 한국인들은 마치 얹혀사는 것처럼, 오직 ‘주류사회’를 외치며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 어느 곳에 살든 우리가 사회의 일부로 존재하는 곳에는 우리도 주류라는 것을 알고 또 우리의 후손들에게 인식시켜야 합니다. 이젠 미국에 살고 있는 동포들은 객지 생활을 하는 손님이 아니라 미국의 주인이며 주류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조씨가 저지른 사건은 우리가 한국인으로서 미국인들과 미국정부에게 사과해야 하고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니라 우리가 미래의 한국인들에게 심어주어야 할 주체성, 소속감, 정체성에 관한 큰 숙제를 남긴 일로 보아야 합니다.
시드니 손(Sidney S. Sohn)/ 변호사
'정치 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명박 낙태발언, 선거캠프 점거농성 (0) | 2007.05.17 |
---|---|
자발적 노예가 왜 이리 많은가? (0) | 2007.05.02 |
학습하자, 그리고 또 학습하자 (0) | 2007.04.10 |
‘파괴 전문가’ 노무현의 숙명 (0) | 2007.04.03 |
“미국의 빈부격차가 있는 한, 스웨덴의 꿈은 영원하다” (0) | 2007.04.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