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와 국제

한미FTA 아닌 대안은 없는가?

녹색세상 2007. 4. 4. 13:37

‘국내 서민경제?한반도 평화경제?동아시아 호혜경제’ 새로운 이론 틀 제시

 

  한미FTA 협상이 마무리됐습니다. 아직 합의내용이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지만 찬반논란이 거셉니다. 저는 이미 한미FTA를 우리산업 전반과 서민의 삶을 벼랑에 내몰 ‘재앙’으로 규정, 협정체결을 강력히 반대해왔습니다.


  최소한 절반에 이르는 국민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협상을 밀어붙여 끝내 타결을 선언한 노무현 대통령의 담화는 분노를 넘어 차라리 참담하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협상을 주도했고 끌려다닌 적 없다”거나 “개방폭이 적어 오히려 불만이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노 대통령은 나아가 반대주장을 ‘근거 없고, 과장된 논리’로 몰아붙였습니다.


  노 대통령은 또 “한미FTA 말고 대안이 있느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반대론을 ‘쇄국론’과 ‘시대착오’로 매도했습니다. 한미FTA를 찬성하는 분들 가운데서도 더러 같은 논리를 취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는 한미FTA가 절대적인, 다시 말해 유일무이한 선택일 때나 성립될 수 있는 논리입니다. 한미FTA는 여러 선택 중의 하나, 그것도 최악의 선택일 뿐입니다. 절대다수 국민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정책이라면 그것을 막는 것이 우선입니다. 노 대통령과 찬성론자들의 주장은 마치 “죽는 길로 갈 수 없다”는 사람에게 “그렇다면 죽는 것 말고 다른 대안이 있느냐?”고 힐난 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한미FTA 체결여부와 별개로 우리 경제에는 새로운 대안이 필요합니다. 한국경제는 IMF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신자유주의 체제로 재편되고 말았습니다.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 논리가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한미FTA는 사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론틀에 갇힌 체념적 선택입니다. 약육강식의 정글법칙이 판치는 국제경제 질서에 순응하자는 것인데, 그것은 결코 바람직한 방향일 수 없습니다.

 

  이에 저는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에 속박되지 않는 새로운 경제발전 전략을 찾고자 힘 써왔습니다. 여러 관계 전문가들과 함께 오랜 시간 연구하고, 검토를 거쳐 최근 ‘세박자 경제론’이라 이름 붙인 사회경제 패러다임을 입안한 바 있습니다. 지금도 이를 구체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각계의 의견을 반영해 계속 보완해나갈 생각입니다. 우선 여기에 ‘세박자 경제론’의 기본틀을 제시합니다. 새로운 시도인 만큼 여러 방향에서 깊이 있는 검토가 필요하리라 봅니다. 진지한 토론과 의견개진을 기대합니다.

 


세박자 경제론

-국내 서민경제, 한반도 평화경제, 동아시아 호혜경제


  ‘세박자 경제론’(triple-nomics)은 한국경제가 나아가야 할 발전모델로서 ‘국내 서민경제론, 한반도 평화경제론, 동아시아 호혜경제론’으로 구성된다. 단기적 경제정책을 넘어 향후 50년, 100년 한국 사회를 지탱할 경제 패러다임을 지향한다.

 
왜 ‘세박자 경제’인가?


  원내진출 이전까지 민주노동당의 경제정책은 부유세 신설, 국방비 절감, 무상의료-무상교육 실시 등 사실상 조세?재정 분야에 한정돼 있었다. 사회복지 확충으로 높아진 서민의 구매력이 경제성장에 효력을 발휘한다는 ‘성장-분배 선순환론’인 셈이다. ‘구매력 향상론’(수요론)은 물론 균형발전의 중요한 요건이지만 여기서 그칠 경우 ‘분배중심모델’이라는 한계를 안게 된다.


  이에 따라 분배중심 모델 영역을 넘어 서민의 공급능력을 키우는 모델을 함께 엮는 사회적 재생산 모델이 필요하다. 이는 한국경제를 지배하는 구조적 문제를 극복하는 종합적인 경제대안 모델이다. 새로운 경제시스템을 모색하는 데에는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활동경험이 적잖게 도움이 되었다.


  전지구적으로 개방이 가속화되고, 국제교역이 늘어나면서 국가 단위의 독립적 경제발전은 사실상 어려운 상태다. 한미FTA 협상에서 미국의 압력에 대응하기가 매우 어려웠던 것에서도 일국모델의 한계는 확인된다. 따라서 전지구적 경제개방 추세를 바로 보고,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넘어서는 대안적 국제경제 체제를 모색해야 한다.


  한국경제에서 서민은 경제의 주체가 아닌 객체에 불과했고, 종종 ‘민생’이니 ‘서민경제’니 해도 기껏 시혜적 보호나 지원 대상으로 간주될 뿐이었다. 이래서는 서민 중심의 경제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는 서민경제가 무너지고, 서민의 삶은 극도로 피폐해질 게 뻔한 일이다.


  따라서 서민이 경제의 주체로 서는 경제대안이 절실하다. 이는 절차적 민주주의 ‘이후의’ 민주주의, 다시 말해 과거의 권력인 ‘국가기구’의 민주화를 넘어 오늘의 권력인 ‘시장’을 민주화해야 함을 뜻한다. 재벌대기업, 외국자본, 관료집단 등 세 집단의 지배 속에 양극화가 가속되는 한국경제를 서민이 주체가 되어 고루 잘사는 경제로 개혁하는 것이다.

 

 


국내 서민경제-서민이 경제의 주체로


  국내 서민경제는 반세기 동안 재벌대기업, 외국자본, 관료집단(관벌)이 과두지배 해온 한국경제를 서민이 다시 세우는 대안경제다. 재벌대기업과 외국자본이 생산자원과 수혜를 독과점하는 체제를 넘어 서민이 주요 경제주체로 생산에 참여하고 부가가치를 함께 나누는 경제체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두 가지 조치가 필요하다.

 

첫째, 한국경제를 망친 원인을 규명하고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외국자본, 재벌, 관벌 세 집단이 과거에 했던 구실을 평가하고 이에 합당한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둘째, 소득재분배를 넘어서는 자산재분배를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 자산재분배는 ‘생산자산 재분배’와 ‘노동력 재생산자산(인적자산) 재분배’로 이루어진다. 


  생산자산 재분배 투기적 금융자본의 초과이익을 환수하고, 핵심 기간산업의 공공성과 생산성을 동시에 높인다. 탈법적으로 소유권이 넘어간 기간산업은 적절한 방법으로 사회에 환원하고, 합법적으로 소유권이 이전된 핵심기업의 경우 민주적 지배구조를 갖추게 한다. 일반 민간 기업은 노동자의 소유참여, 경영참여, 이윤공유 등의 방식으로 새로운 민주적 지배구조를 세운다. 국민경제에 사활적 영향을 미치는 대기업의 경우 국민연금기금 등을 투여해 지배구조에 참여함으로써 민주적인 통제권을 확립한다.


  재생산자산(인적자산) 재분배  서민들이 주거, 교육, 의료, 보육 등의 필수재(노동력재생산 자산)에 충분히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부동산 가격안정, 사교육비 억제 등 필수재 가격을 안정시키고, 서민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자산을 축적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서민경제, 어떻게 형성하나


  서민경제 형성동력은 전국단위 네트워크경제와 시장경제부문으로 나뉜다. 여기서 ‘전국단위 네트워크경제’란 지역협동조합?지역재투자법 등의 풀뿌리경제, 전국적인 도시-농촌 연결망, 전국적인 재래시장과 영세유통업 연결망, 공공서비스산업의 전국연결망 등으로 구성된다.


첫째, 풀뿌리경제는 사회기금에 기초한 지역금융을 통해 서민 스스로 사회적 기업, 비영리기업을 설립, 필수재를 공급하는 부문이다. 자산재분배 정책은 풀뿌리경제 차원에서 수요와 공급을 동시에 충족시킨다.


둘째, 전국단위 네트워크경제는 생산과 소비의 안정성과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인다. 도농 네트워크는 농협과 생협의 개혁과 더불어 도시의 수요와 농촌의 공급을 인터넷으로 연결한다. 전국의 재래시장을 연결해 망을 구축하고 고유브랜드를 개발한다. 전기, 가스, 수도 등 공공부문 네트워크산업을 개혁한다.


셋째, 시장경제부문은 지역클러스터 구축, 적극적인 노동시장정책 시행, 대기업-중소기업 관계의 민주화 등을 모색한다. 불공정거래 등 장기적으로 생산의 토대를 위협하거나 환경을 훼손해 공공성을 침해할 경우에는 정부조달 입찰제한 등의 규제수단을 마련한다.


한반도 평화경제-평화와 경제가 어우러진 한반도


  통일과 평화는 지금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양대 의제였다. 한반도는 이제 정치군사적 측면 뿐 아니라 경제적 측면이 매우 중요하다. 통일, 평화, 경제 등 3대 의제를 종합해 한반도 평화경제체제 모델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경제’는 산업, 재정, 운영 측면에서 지금까지의 ‘이론적 틀’(패러다임)을 넘어서는 것이다.

 
첫째, 산업 측면에서는 남북 경제협력의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개성공단 같은 거점도시를 나진, 선봉, 신의주 등지로 확대하고 그 배후지역에 국제적 투자를 늘린다. 이와 함께 거점도시를 연결하는 물류체계를 갖추고 이를 한반도종단철도(TKR),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연결해 한반도와 유라시아대륙을 잇는 물류체계 구축한다. 나아가 사회기반시설 구축, 지하자원 개발, 관광산업 등에서 호혜적 협력을 추진한다.


둘째, 재정적 측면. 현재 북한의 재정사정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북한 경제발전이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에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해 북한경제 인프라 구축을 위한 사회적 기금을 조성한다. 남한에서 남북협력은행 같은 특수은행을 설립하거나 동북아, 동아시아 차원에서 지원기금을 조성하는 방안 등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운영의 측면에서는 자본주의적 기업형태를 넘어서야 한다. 이를 위해 남북한 정부, 시민사회가 공동으로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운영모델을 개발한다. 또한 북한의 협동적 운영체제가 지닌 장점을 살리고, 앞서 제시한 풀뿌리 경제망을 활용해 ‘한반도 풀뿌리 경제네트워크’를 형성해나간다. 북한경제를 시장화?민영화한다는 단순한 사고에서 벗어나 북한주민의 선택에 따라 효율성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사회경제체제를 모색한다.

 

동아시아 호혜경제- ‘아시아 연결망’을 향해


  글로벌 경쟁 심화에 따른 국가양극화, 패권국가의 일방적 지배를 방지하고, 호혜적 분업체계에 기초한 지역공동체(regional community)를 건설한다. 역내평화와 호혜적 경제발전을 꾀하려면 처음부터 차이를 해소해야 하고, 이를 위해 ‘Social Asia’를 지향한다. 이는 ‘경제적 제로섬 게임’ 프레임으로 강대국이 자신의 체제를 약소국에 강요함으로써 국내외 격차를 확대하는 '미국형 FTA' 전략을 대체할 대안이다.


첫째, 나라별 정치체제의 이질성, 경제적 격차,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문화 연대를 추진한다. 예컨대 역사적,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시민사회 교류프로그램과 아시아 사회헌장(Asia Social Chapter) 채택 등이다.


둘째, 개발과 인프라구축, 기술발전에서 국가간 공조와 지원을 강화한다. 이 같은 기조에서 북한, 몽골, 시베리아 등 낙후지역 공동개발을 도모할 수 있다. 또한 대륙철도, 가스 파이프라인, 정보통신 등의 기초시설을 공동으로 건설함으로써 물류와 에너지, 환경을 네트워크화 한다. 인적 자산 계발을 공동으로 지원하는 한편 IT와 산업기술에서 아시아 경제 표준을 마련한다. 이를 위해 과학기술을 공동으로 연구 개발하고 상호 지원한다.


셋째, 동아시아 지역발전기금(ODA)을 조성하고, 달러 통화체제를 대신하는 아시아통화체제(AMF) 등 역내 금융체제를 구축한다.

(심상정 의원/민주노동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