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와 국제

한미FTA 손 못 대는 한국 국민, 유럽헌법 부결시킨 프랑스 국민

녹색세상 2007. 4. 4. 14:56

[해외리포트] 뒤로 가는 ‘노무현 민주주의’ ,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맞나?

 

“나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난다. 이 결정은 오늘 정오를 기해 효력을 발생한다.”
 

  1969년 4월 28일 자정이 조금 지난 시간, 샤를르 드골 프랑스 대통령이 프랑스인에게 보낸 하야 성명이다. 단 두 줄의 이 성명은 파리에서 120마일 떨어진 프랑스의 작은 도시 콜롱베에서 날아왔다.


  근대화의 욕망이 분출한 1968년 5월 혁명의 대답으로 드골 대통령은 1969년 4월 27일 지방분권과 상원개혁을 골자로 하는 헌법 개정을 국민투표에 부친 바 있다. 자신의 정치 인생을 걸고 헌법개정 승인 운동을 펼친 드골은 “만약 부결될 시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52.41%의 프랑스인이 반대표를 던져 헌법 개정안은 부결됐다. 투표 결과가 발표되고 5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약속한 대로 드골은 성명을 발표하고 엘리제궁을 떠났다. 프랑스인이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 1위의 드골이 역사의 뒤켠으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유럽헌법 부결, 그러나 국민의 뜻이었다.

 

 ▲ 프랑스에서 유럽연합 헌법 찬반 국민투표가 부결된 다음날인 2005년 5월 30일 신문 가판대를 장식한 신문들. 일제히 국민투표 부결을 알리고 있다.


  국가의 운명이 걸린 사안이 있을 때마다 프랑스는 국민투표를 통해 국민의 의견을 물어왔다. 이것은 프랑스 민주주의의 오랜 전통이다. 헌법이 정한 범위 내에서 유권자들이 승인과 거부로 답할 수 있는 국민투표는 직접민주주의의 발현인 것이다. 프랑스 헌법 제11조는 국민투표가 ‘직접민주주의에 의한 가장 명백한 국민의 의사표시’라 정의하고 있다. 이것은 특정한 정치적 사건 즉 영토변경이나 병합 혹은 새로운 지배자가 권력의 정통성을 획득하기 위해 실시하는 신임투표와 구별된다. 이 때 전자가 제도화된 레퍼렌덤(referendum)이라면 후자는 임의적인 플레비사이트(plebiscite)라 부른다.


민주주의가 확립된 나라에서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를 물어 국가정책을 결정하는 레퍼렌덤은 진정한 민주주의의 방식이요, 군사독재정권에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권력자가 권력 유지를 위해 쓰는 형식적인 국민투표가 바로 플레비사이트인 것. 프랑스에서 실시된 국가 규모의 레퍼렌덤은 1793년 7월 이후 총 24건에 달했으며 이중 부결된 것은 4건에 불과하나 그 파급력은 컸다. 1945년 10월 21일 제3공화국 복원 건, 1946년 5월 5일 제1차 헌법 개정안 그리고 앞서 언급한 1969년 4월 27일 드골의 지방분권과 상원 개혁 건 마지막으로 지난 2005년 5월 29일 유럽연합(EU)헌법 비준 건이 그것이다.


  특히 프랑스에서 부결된 유럽헌법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진하는 유럽연합 기관차에 제동을 걸며 국제적인 파장을 불러일으킨 사건이었다. 프랑스의 모든 정당이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역동적인 선거전을 펼친 가운데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프랑스인의 54.87%가 반대의사를 밝혀 부결된 것이다. 다른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국회를 통해 유럽헌법을 비준시킨 것과 달리 국민투표 절차를 통해 10번째로 입장을 표명한 프랑스는 유럽헌법 첫 부결국이었다.


  이것은 국민의 '감정적'인 선택이라기보다는 다른 어떤 국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열성적 관심의 결과였다고 말하는 쪽이 가깝다. 국민투표가 실시되기 수개월 전부터 프랑스 정부는 유럽헌법에 관한 안내 책자를 발간해 각 기관에 배치했고 해당 공무원들은 가가호호 방문해 유럽헌법의 내용을 설명했다. 서점에도 수십 종의 관련 서적이 깔렸고 각 조항마다 세세한 설명이 따라붙었다.


  유럽헌법의 내용조차 확인하지 못한 채 비준이 통과된 다른 유럽연합 회원국과 비교해 프랑스는 국민들이 유럽헌법에 대해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나 몇몇 정치 관료들이 주도하는 유럽 건설에는 찬성할 수 없었다. 유럽의 미래를 특정 인물 몇몇에 맡길 수는 없었던 것이다.


  독일과 함께 유럽연합 건설을 진두지휘해온 프랑스가 유럽헌법을 거부한 것은 유럽사회에 충격이었을 뿐 아니라 시라크로서는 난감하기 짝이 없는 국제적 망신이었다. 결과는 유럽연합 50주년을 기념한 지난달 25일 극명하게 드러났다. 유럽 곳곳에서 축제처럼 벌어진 유럽연합 관련 행사들을 프랑스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것. 그러나 프랑스인은 괘념치 않았다. ‘국민’이 선택했으니까.


헌법 제1조 제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지난 2일 한미 FTA(자유무역협정)가 결국 타결됐다. 지난해 2월 협상 개시 선언후 14개월여 만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중심으로 몇몇 경제 관료들이 주도한 ‘한미FTA’가 대한민국의 미래에 무엇을 가져다줄 지는 미지수다. 정부의 주장대로 ‘대한민국의 희망이 빨리 이뤄질지’, 정말 ‘개방으로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나라가 될 지 누가 알겠는가? 그러나 유럽헌법 비준을 앞두고 프랑스 정부가 쏟아낸 관련 정보의 홍수를 기억하며 자문해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정부는 국민과 ‘충분히’ 토론했는가? 가히 ‘밀실 협상’이라 불러도 무방할 이번 협상에 대해 정부는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켰는가. 일방적인 광고로 국민을 호도한 일은 없는가.


지난달 중순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민주노동당과 함께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 사회조사본부에 의뢰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83%가 한미FTA 협상에 대해 ‘다음 정부에 넘기더라도 국익과 사회적 영향 등을 검토한 후 협상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한다. ‘이미 충분히 논의했으므로 일정대로 체결해야 한다’는 의견은 12.9%에 불과했다.


  국가정책에 반대하는 여론이 80%를 넘는 상황에서도 정부는 왜 국민과 대화하지 않았을까. 왜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투표를 실시해서라도 국민의 의견을 수렴할 생각을 못 했을까. 정부가 결정하면 국민은 따라야 했던 30년 전으로 시계는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다.


  ‘주권’이란 ‘국가의 의사를 전반적이고 최종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힘’이다. ‘민주주의’는 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성 즉 자기결정권의 원리가 작동하는 정치원리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헌법 제72조는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ㆍ국방ㆍ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미FTA 문제는 대한민국의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구조의 변동을 초래해 국민생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행위라 판단된다. 투자자 국가소송제도는 경우에 따라 사실상 우리 헌법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충분히 국민투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안이다.” 인제대학교 법학과 강재규 교수는 말했다. 강 교수는 그러나 ‘국가 중요정책의 판단이나 국민투표 회부 여부는 대통령의 재량권에 맡기고 있어’ 헌법재판소나 법원은 헌법규정의 문리에 따른 해석을 내놓을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헌법 제73조는 ‘대통령은 조약을 체결 비준하고…’라며 조약 체결권을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국회의 의결을 거쳐 외국과 조약을 체결할 수 있는 권한은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다.”

 

 ▲ 이라크 전쟁 반대를 외치며 거리에 나선 정치인들. 오른쪽 부터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제1서기, 베르트랑 들라노에 파리 시장, 로랑 파비위스의 얼굴이 보인다.


민주주의 실종된 ‘노무현식 민주주의’
 

  그러나 국민에게는 ‘저항권’이라는 천부의 자연권이 있기 때문에 국민적 저항이 거셀 경우 대통령도 어쩔 도리가 없다고 강 교수는 덧붙였다. 대통령의 조약체결권도 ‘국민주권주의’나 ‘민주주의’ 원리에 따른 한계가 있고 헌법제․개정 권력은 주권자인 국민의 권한이기에, 사실상 헌법 개정에 이를 수도 있는 조약 등의 체결이라면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조약체결권 범위를 벗어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대한민국 역사에 국민투표의 두 갈래인 레퍼렌덤이나 플레비사이트의 사례는 없었나. 1969년 박정희 대통령이 3선을 목적으로 추진한 제6차 개헌 즉 3선 개헌, 1972년 유신헌법의 예가 있다. 국민의 지지를 담보하지 못한 정권이 국민의 의사를 물어 ‘미흡한’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실시한, 비정상적인 플레비사이트의 대표적인 예다.


  레퍼렌덤의 예는 없었다. 참여정부라 불리는 노무현 정부 또한 국가의 ‘사활’이 걸렸다 할 한미 FTA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레퍼렌덤에 대한 가정을 해본 일은 없는 것 같다. 그 뿐인가. 지난 14개월 여 동안 우리 정부는 160억이라는 국민의 혈세를 들여 한미FTA ‘공익’ 광고를 단행했다. 농민들이 쌀을 모으고 영화인들이 제작한 한미FTA 반대 광고는 방송 불가 판정을 받았다. 박정희 독재 시절의 ‘유신헌법’은 ‘공익’ 광고로 인정받았다. ‘유신’에 반대하는 광고는 심의에서 탈락했다. 두 가지 사례의 명분은 ‘정부 정책에 반한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대한민국 헌법 제2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22일 이후 한미FTA에 반대하는 모든 집회는 불허됐다. 집회 신고제가 집회 허가제로 둔갑한 것이다. 현재 한미FTA 항의 시위와 관련해 수많은 농민 노동자들이 수감됐고 140여 명에 소환장이 발부된 상태다.


  이것을 우리는 ‘노무현식 민주주의’라 불러야 할까. 미안한 말이지만 ‘노무현식 민주주의는 우리 헌법이 정의한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어도 한 참 멀다. 통치가 정부의 임무라면 비판과 견제는 국민의 의무요, 권리다. 국민의 뜻에 따라 정부가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때로는 국민의 비판이 냉혹하고 통렬하다 하더라도 이 같은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를 보장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없다.

 

 


국민이 틀렸다면, 국민이 책임진다.


  우연에 불과하겠으나 노무현 대통령과 프랑스의 시라크 대통령은 올해 임기를 마감한다. 지난 2002년 극우파 저지의 깃발 아래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의 힘으로 재선을 탈환한 시라크와 보수 세력에 맞선 자발적 시민운동으로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 두 사람은 재임 기간 동안 수십 건의 반정부 시위에 휘말렸다는 점 뿐만 아니라 상대국 대통령과 전화로 국가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점에서도 닮은꼴이다.


  한미 FTA 타결 직전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과 전화 환담을 나눈 노 대통령은 전 세계 국가 수장의 휴대폰 번호를 갖고 쟁점이 불거질 때마다 직접 전화를 걸어 의견을 조율하거나 입장을 통보하는 세계 유일의 대통령 시라크를 연상시켰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각종 사안이 터질 때마다 ‘정권 퇴진’의 강도 높은 비판과 마주해야 했던 시라크에 비해 우리 국민은 노 대통령에게 ‘대통령님, 제발’이라 하소연했다는 점이다.

 

  오는 5월 엘리제궁을 떠나는 시라크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대선 출마 포기를 선언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프랑스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 시라크를 ‘프랑스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이라고 몰아붙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과소평가할 수 없는 시라크의 치적이 있다. 국제사회에서 감히 이라크 전쟁에 반대한 것. ‘반전’의 깃발 아래 연일 거리를 메운 시민들에게 이라크 전쟁 참여 여부를 물을 필요는 없었다. 거리가 말하고 있었으므로.
 

  이로 인해 미국에서 반 프랑스 정서가 확산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프랑스를 찾는 미국 관광객의 수가 감소했고 프랑스 상품 불매운동도 일어났다. 일반 패스트푸드점에서 판매돼온 감자튀김 ‘프렌치 프라이즈(French fries)’가 ‘프리덤 프라이즈(Freedom fries)’로 개명되고 프랑스산 포도주를 길거리에 쏟아버리는 해프닝이 벌어질 때도 프랑스인들은 여유롭게 웃을 수 있었다.


  정치 경제적 불이익이 온전히 프랑스 국민의 몫이었다 해도 불만은 없었다. 주권국가로서 프랑스는 그들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므로. 그리고 국민의 뜻대로 통치한 대통령은 국제사회에서 왕따가 된다한들 두려울 게 없었다. 대통령을 지지하는 국민이야말로 천군만마였던 것이다.


  임기 말의 노 대통령은 부디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평가받지 말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백 번 양보해 국민의 판단이 틀렸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탁상공론으로 국가의 미래를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설령 국민이 틀렸다 하더라도 그에 따른 책임은 국민이 질 것이다. 그러나 만약 정부의 결정이 틀렸다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박영신/ 오마이뉴스,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