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금 1천만원 시대, 서민은 정말 힘겹다. 대학교육의 질은 곤구박질 치고 있는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등록금은 세계에서 4번째로 비싸다. 임금은 고작 몇 % 오르는데 대학등록금은 임금의 두 배, 세 배 올라간다. 대학들은 물가상승 때문에 등록금을 올려야 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대학등록금 때문에 물가가 오르고 있다. 예전엔 소 팔아서 대학 보낸다고 우골탑(牛骨塔)이라 했지만, 요즘엔 등골 뽑아야 겨우 대학 보낼 수 있다 하여 인골탑(人骨塔)이라 한다. 우리나라 대학생 300백만, 가족까지 더해 1천만이 학기마다 등록금 문제로 시달리고 있다. 등록금은 더 이상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다.
딸 등록금 없어 분신자살 하는 아버지
대학생 자녀가 두 명이 될라치면 남학생은 등록금 때문에 군대 가야 하는 일도 생긴다. 자녀 등록금 마련하려 중년의 어머니가 취업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등록금 마련하려고 아이를 유괴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등록금 때문에 딸에게 대학진학을 포기하라고 할 수 밖에 없던 아버지가 서러움을 이기지 못해 분신자살하는 끔찍한 일도 있었다. 두 자녀 등록금을 못 낸 어머니도 자살을 택한다.
헌법에 명시된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는 대한민국에 없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기회자체가 균등하게 보장되지 않고, 능력을 발휘할 여지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오로지 가진 자를 위한 교육만이 판치고 있을 뿐이다.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눈앞에 두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대학 등록금이 이렇게 천정부지로 솟는 것은 국가의 책임방기가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다. OECD 가입국의 고등교육 재정은 GDP 평균 1.1%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고작 0.3%,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교육 발전을 들먹이는 것 자체가 가당치 않다.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계속 방기해온 결과이다. 교육재정 GDP 6% 확보라는 현 정권의 공약은 물 건너간 지 이미 오래지만, 이에 대한 어떠한 해명과 반성도 없다. 이 공약만 실천했어도 약 10조원의 추가 교육재원이 확보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초중등교육 완전 무상교육과 대학등록금 반값 낮추기가 가능하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선거공약집에만 있고 현실에서는 온갖 변명으로 사라진 것을.
대학은 ‘묻지마 적립’, 교육부는 규제 직무유기
등록금이 폭등하고 있는데도 정부당국은 ‘등록금 자율화’를 핑계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1989년(사립대), 2003년(국공립대)에 등록금 책정 자율화 조치(학교 수업료 및 입학금에 관한 규칙개정)를 시행하면서 사립대 등록금 상한제를 풀었으며, 국공립대의 경우 등록금 책정권한을 교육부장관에서 학교장으로 넘겼다. 교육부 스스로 규제권한을 포기해 놓고서는 이제 와서 ‘권한이 없으니 행정지도가 불가하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사립대학도 등록금 폭등에 한몫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립대 비율은 약 75%로 세계 최고수준이다. 고등교육을 사립대학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런데도 이를 적절히 규제하지 않음으로써 사립대학이 학생등록금으로 ‘교육장사’를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고 있다.
사립대학은 6조원 넘는 적립금을 쌓아 두고도 계속 등록금을 올리고 있다. 사용목적도 뚜렷하지 않은 ‘묻지마 적립’에 몰두하면서 건물증개축으로 몸집 불리기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관련 규정(사학기관 재무회계 규칙)에 따르면 학교장은 적립금 사용계획을 관할청에 사전보고 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교육부에 학교회계 예산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절차가 끝난다. 관할청은 적립금 적립여부, 액수와 기간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지만 교육부는 한 번도 실질적 조치를 취한 바 없다. 2005년 국정감사에서 사립대학 적립금 사용계획을 조사했지만 적립금 사용계획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곳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적립금이 대학등록금 인상의 주요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국립대 법인화’ 방침은 국립대를 사립대 만들기
뿐만이 아니다. 사립대학들은 예산 부풀리기 수법으로 한 해 1조2천억원 넘게 책정하고 있다. 지출은 늘려 잡고, 수입은 줄여 잡는 예산편성이 관행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2005년 전국사립대 153곳의 예산․결산 분석 자료를 보면, 결산에 견줘 지출예산을 1조 23억원 부풀려 편성했다. 수입예산은 2천341억원 줄여 편성해 모두 1조 2천 364억원을 남겼다. 이렇게 남은 예산의 상당액은 적립회계로 이체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대학등록금 인상의 주요특징 중 하나는 국립대학 인상률이 사립대학의 그것보다 높다는 것이다. 얼마 전 정부가 입법예고한 ‘국립대 법인화’ 방침은 이런 현상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국립대 법인화 방침으로 국가 재정지원이 줄어든 국립대학은 교육비 부담을 학생들에게 떠넘기려 하고 있고, 이에 대비에 등록금을 더 많이 올리고 있다. 국립대 법인화는 국립대를 일종의 사립대로 만드는 것이다. 대학이 수익창출에 목매달게 해 기초학문을 부실하게 만들고, 정부지원은 줄어 결국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만 가중시킬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줄곧 이 점을 지적해왔다. 교육부가 대학등록금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우선 국립대 법인화를 중단하고, 공공성 강화를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부풀어진 기성회비, 높은 학자금 이자도 문제
국립대학 등록금은 수업료와 입학금, 기성회비로 구성된다. 수업료와 입학금은 국고수입이지만 기성회비는 대학의 기성회계 수입이 된다. 기성회비는 한국전쟁 뒤 국고가 부족한 상황에서 학부모들이 스스로 갹출하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자발적 성금이 아닌 등록금으로 굳어져 버렸다. 게다가 보조적 성격의 기성회비가 전체 등록금의 80%를 넘어 배보다 배꼽이 큰 꼴이다. 수업료와 입학금만 내고 싶어도 등록금 고지서는 그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기성회비를 책정하는 기성회 이사진은 대부분 학교가 추천하는 부유층 학부모로 구성된다. 변호사, 기업대표, 교수, 고위공무원 등으로 편중된 이사회가 일반 학부모들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겠는가.
등록금과 관련한 교육부의 정책기조는 미국식의 ‘높은 등록금 + 학자금융자 확대’로 보인다. 대부분 미국 유학파들로 구성된 교육부 관료들의 사고는 미국식 이상을 넘어서지 못한다. 정부보증 학자금 융자 이자율만 7%대다. 국책 관련 이자율로는 최고수준, 정부가 나서 고리대부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이 등록금 문제를 들고 일어나고 사회문제로 떠오르자 내년부터는 학자금 이자율을 낮추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자율 조금 낮춘다고 등록금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사립대 적립금 상한제법’ 제정을
대학등록금, 더 이상 대학가만의 문제 아니다. 학생들이 일어서고 있고, 교수 교사 학부모도 함께 하고 있다. 정치권 전반이 등록금 문제를 외면하고 있을 때 홀로 싸워왔던 민주노동당이 함께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고등교육 재정확보가 절실하다. 2010년까지 고등교육재정을 GDP 1%까지 확보해야 한다. 나아가 등록금 책정뿐 아니라 대학의 주요 의사결정을 민주적으로 하기 위해 교수 직원 학생이 참여하는 대학평의원회, 자치단위를 법제화해야 한다. 교육부총리 산하에 등록금 조정심의위원회를 설치해 불합리한 등록금 인상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사립대학의 적립금 상한선을 설정해 초과분이 교육환경에 재투자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이 제안한 사립대학 적립금 상한제 법안이 제정되면 앞으로 5년 동안 연간 5천억원의 교육환경 투자 효과가 발생한다. 또한 사립대학 부풀리기 예산편성 과례를 바로 잡으면 연간 5천억원의 예산 효율성 증가 효과를 부른다. 이 정도면 앞으로 5년 동안은 사립학교 등록금은 동결을 넘어 인하도 가능하다.
민주노동당이 입법 발의한 등록금 상한제는 ‘등록금 반값정책’을 현실화하는 제도적 대안이 될 수 있다. 등록금 상한제는 각 대학이 가구소득 1개월 분을 넘지 않는 선에서 등록금을 책정하도록 하자는 게 뼈대다. 보통 가구의 경우 월 소득의 7~8%를 저축에 투여한다. 다시 말해 1년 소득 가운데 약 1개월 치를 저축하는 것이다. 등록금 상한제는 대학생 자녀가 있을 경우 최소한 저축은 하지 못하더라도 빚지지 않고도 대학을 다닐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등록금 상한액이 292만원 정도(2007년 기준)가 되고, 각 대학은 연간 등록금을 이 이하로 책정해야 한다. 이는 현재 등록금의 40% 수준이다.
한해 등록금 292만원..... 피부에 와 닿는 민주노동당 정치
이 법안은 또한 경제적 사정을 고려해 등록금 액수를 차등 책정해 기초생활수급권자와 차상위 계층에게는 완전면제 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나아가 등록금 후불제를 도입하는 등 대학교육 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근본적인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여러 정당이 등록금 문제 해결을 말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이미 민주노동당의 의견을 받아들여 학자금 융자 이자율을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공개적인 당적세탁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나라당은 반값 등록금까지 거론하고 있지만 레토릭(미사여구)에 불과하다는 의구심을 지을 수 없다. 이 주장에 뒤따르는 실질적인 정책과 노력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미사여구의 정치를 넘어 구체적으로 피부에 와 닿는 삶의 정치, 그것이 민주노동당이 펼치고자 하는 정치다. 노동자, 농민, 서민의 자녀들이 돈 걱정 없이 대학에 다닐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민주노동당이 지향하는 세상이다. 등록금 걱정 때문에 배움을 포기하고, 심지어 삶까지 포기하는 비극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심상정 의원/ 민주노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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