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의 사법충격] 한미 FTA와 지적재산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지적재산권을 거론하는 이유를 놓고 정부는 지적재산권 보호 수준을 미국에 맞추기 위해서라는 얘기를 한다. 그러나 바로 미국의 이 분야 협상 목표가 바로 한국의 지적재산권 보호 수준 및 관련 법 제도를 미국과 일치시키거나 근접시키는 것이다. 이 분야에서 미국 측의 요구가 거의 관철될 가능성이 큰 것도 이 때문이다.
▲ 한미 양국은 26일부터 한미FTA 협상을 끝내기 위한 최종 고위급 회담에 돌입한다. 사진은 한미FTA 8차 협상 마지막 날인 지난 12일 저녁 서울 하얏트 호텔에 마련된 브리핑룸에 악수를 나누고 있는 김종훈 한국측 수석대표와 웬디 커틀러 미국측 수석대표.
미국의 문화산업, 해적질로 발전했다
한미 양국의 인식은 문제가 많다. 각국의 지적재산권 제도의 역사는 자국의 산업 발전 수준에 맞춰 왔다. 미국이 바로 그랬다. 1842년 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가 자신의 소설을 비롯한 외국 저작물의 보호를 촉구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것은 그 한 사례다. 1800-1860년 사이 미국 베스트셀러의 절반 정도는 영국 소설을 해적질 것이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저작권법을 통해 외국 저작물에 대해 아무런 보호를 하지 않았다. 또 자국 출판업을 보호하기 위해 이런 해적질을 방임했다. 급기야 영국 정부가 나서서 미국 정부를 저작권 조약에 끌어들이려고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보다 못한 디킨스가 미국 방문에 나선 데에는 이런 사정이 있었다.
이런 미국의 행태는 무려 한 세기 가까이 계속됐다. 프랑스 주도로 저작권 보호에 대한 조약, 베른협약이 1887년에 체결됐다. 그러나 미국은 내내 이 협약에의 참가를 거부하다 한 세기가 지난 1988년에야 합류했다. 미국은 100년 동안 이 협약의 가입 여부를 저울질하다 자국 이익에 도움이 되는 시점이라는 판단이 선 다음에 가입을 결정한 것이다. 실제로 처음에 미국이 베른협약을 거부할 때, 국무부 장관은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베른협약에 미국이 참여하는 것은 ‘비실리적(impractical)’이다. 장래에 그 협약에 참가하는 것이 '적절하고 실리적(expedient and practical)'이 되면 참가할 수도 있다.” 미국 정부는 이 제안을 그대로 따랐다.
현재 미국의 전체 GDP 중 지적재산권 관련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6%다. 이것은 약 6200억 달러 수준으로 1991년 이후 2~3배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미국의 주력 수출 분야다. 이제 미국은 이런 지적재산권 산업의 확장을 위해 자국의 지적재산권 관련 법과 제도를 한국에 강요하고 있다.
▲ 최종 협상안에 쌀 개방이 포함되면서 벌써부터 국회 비준동의안 처리과정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7월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출석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한미FTA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미국의 지적재산권 ‘사다리 걷어차기’
실제로 한미 FTA로 인해 지적재산권 분야에서 한국이 얻을 이익은 마이너스다. 미국 측 요구의 핵심은 △저작권 보호 기간, 특허 기간의 연장 △특허의 강제실시 요건 완화 △친고죄 폐지, 일방적 구제 절차 도입 등이다. 한 마디로 저작권을 통한 독점 이윤을 얻을 수 있는 대상을 확대하고 기간을 늘리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세계은행이 낸 보고서에 따르면 TRIPS(지적재산권 관련 무역 협정)를 완전 이행했을 경우 미국은 190억 달러의 이익을 보지만 한국은 153억 달러의 적자를 본다고 예측됐다. TRIPS보다 더 강력한 지적재산권 보호를 목표로 하는 한미 FTA가 타결될 경우 한국이 입을 손해는 더 클 것이다.
더 나아가 지적재산권은 다른 산업과 다른 특수성이 있다. 지적재산권은 인간의 정신적 창작의 결과를 독점적으로 이용하게 함으로써 창작자에게 동기를 부여하고자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특정 개인의 창작물이라고 해도 그 전부터 내려오는 인류의 지혜와 경험이 바탕이 된 것이므로 창작자 본인에게만 과도한 독점권을 부여할 수 없다. 또 일반 상품과는 달리 일반 공중에게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필요성도 있고, 그렇게 해야만 문화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더구나 정신적 창작이란 자국의 문화와 긴밀히 연계된 것이어서 일률적인 경제 논리로 재단해서는 안 되는 분야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국은 오로지 권리자에게 더 많은 경제적 이익을 보장하는 것에만 신경 쓴다.
현재 국내의 개정 저작권법도 권리자 보호 중심으로만 내달리고 있어서 양식 있는 많은 사람이 깊은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법 체계, 문화, 기술의 차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일률적인 기준만을 강요하고 있는 한미 FTA는 큰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미국 기업의 독점이윤 보장에만 맞춰진 협상에서 우리가 얻을 것이 무엇이겠는가? (최승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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