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 넘게 타고 오르내리고 고속으로 운행을 하는 길이 380미터 고속전철인 KTX에 승객의 안전 업무를 보는 직원은 불과 손가락에 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100명도 안타는 비행기에는 탑승하면 이륙하기 전 안전에 대한 기본적인 안내와 시범이 있고 비상 탈출 시 어떻게 해야 하는가도 알려준다. 철도공사, 아니 대한민국 정부는 승객인 국민의 안전을 무시한 채 운행을 하고 있으며, 국민의 혈세로 건설한 고속전철이 명백한 사회간접자본임에도 ‘돈벌이’에만 눈이 뒤집혀 있다. 시기가 문제일 뿐 이미 민영화의 계획이 나와 있다. 영국이 철도 민영화 후 각종 안전사고가 엄청나게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거들떠 볼 생각조차 않고 있다.
국민 누구나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고속전철을 만들고, 공공사업장의 성차별과 비정규직 철폐 투쟁의 선봉에 우리의 딸들이 우뚝 서 있다. ‘철도의 꽃’이 아니라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승무노동자로 당당하게 일하고 싶어 한다. 그들의 요구는 ‘일터로 가고 싶다’는 너무나 간단한 것이다. 더 이상 이들의 요구를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더구나 사형수 출신의 사장과 인권변호사로 이름 날린 대통령이 있는 정부가 이러면 안 된다. 승무노동자들의 투쟁의 선봉에 서 있는 민세원 지부장에 대한 취재 기사가 있어 퍼 왔다.
[인터뷰]KTX 승무원..... 민세원 지부장을 만나다.
KTX 승무원 파업 1년, 그들처럼 여론의 관심을 끌어본 비정규직 노동자도 없는 것 같다. 며칠 전에는 한국 여성단체로부터 올해의 ‘여성운동상’ 수상자로 KTX 열차 승무지부가 선정되기도 했고, 지난 해 5.31 지방선거 때 서울 시장후보 ‘강금실’ 선본과 ‘국가인권위’를 접수(?)했던 당찬 여성들이기도하다. 하지만 이들에게 지난 1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생계와 이탈하는 조합원들을 보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석 달간의 실업급여가 끊기자 양말을 팔아서 생계를 꾸려야 했던 KTX 승무원들. 380명으로 시작한 파업대오는 점점 줄어들어 75명만의 정예 승무원들이 남아있다.
사회적 의식 또한 뚜렷하게 변해 있었다. 노동법, 근로기준법에 관심조차 없었던 그들 이었지만 여성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공기업의 비정규직화, 사측의 부당한 처우에 저항하며 맞서 싸울 수 밖에 없었던 현실은 그들 스스로 ‘노동자’라는 깨달음과 ‘노동의 가치’를 ‘실천적, 자생적’으로 배우는 현장이기도 했다. 이렇게 길고도 짧았던 시간은 꼬박 1년을 채웠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아직 풀어야 할 과제들과 그들이 희망하는 일터로 당당하게 돌아가는 일들이 남아있는 것이기도 했다.
▲ 한국철도 공사 KTX 열차승무지부 민세원 지부장(사진 몽구)
“노동법도 모르던 민세원 지부장, 노동운동가로 변해”
두 평 남짓한 컨테이너 박스 사무실에 들어서자 민세원 지부장이 코펠뚜껑에 커피를 담아 들고 오는 모습에서 착한 지부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해 삭발한 머리는 밤송이머리에서 제법 자라나 있었다. 30대 초반까지 정치나 사회문제에 관심조차 없이 살았다는 민세원 지부장 그러나 ‘여성노동운동가’로 탈바꿈한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30대 초반까지 사회문제나 정치에 전혀 관심 없이 살다가 지부장이 되고나서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고 나섰는데 깊숙이 들어갈수록 우리사회 전반에 걸쳐있는 비정규직, 양극화, 여성차별, 신자유주의 문제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을 느꼈어요.”라는 민세원 지부장의 날카로운 지적을 보면서 한 ‘노동운동가’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는 또 “입사 후 비디오를 가끔 볼 때마다 아무것도 모르고 꼭두각시처럼 시키면 시킨 데로 살다가 무엇이 문제인지, 우리 사회의 현실을 올바르게 알게 해준 철도공사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간의 시간동안 신체적 육체적 고통도 뒤따라야 했다. 9개월 반 동안의 수배생활은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었다. 승무원들의 하나둘 씩 이탈을 보면서 고통스러웠다.”는 말에서 수배생활과 조합원들의 이탈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고 했다.
철도공사와 이철 사장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이철 사장은 저희 오빠들도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희들의 문제가 쉽게 해결될 줄 알았죠. 그런데 저희들이 당하고 보니 민주투사의 탈을 쓴 이중성에 놀랐다.”며, 철도공사는 노골적으로 “파업을 포기한 대가로 관광레저의 관리직 특혜를 강요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민주노총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숨기지 않았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조직내부에 비정규직 담당자 하나 제대로 없다는 것도 문제며, 민주노총에서 장기투쟁 사업장을 아픈 자식이라 생각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다음은 민세원 지부장과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지난 1년, 하룻밤 꿈을 꾼 듯..... 사건 하나하나에 10년을 지나온 느낌 들어”
-. 지난 1년간을 돌아본다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어제 조합들한테도 말했지만 하룻밤 꿈을 꾼 듯하다. 급작스럽게 너무도 많은 일들을 겪다보니 지난 1년의 시간이 하룻밤 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건 하나하나 생각하면 10년을 지나온 느낌이 든다. 2004년 개통 당시 매스컴을 많이 탔다. 그 때 찍었던 영상을 보면 사회 생활한 저조차도 아무것도 모르고 웃으라면 웃고 걸으라면 걷고 꼭두각시처럼 저랬구나 싶었지만 지금은 저렇게 살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하지만 우리들의 희망은 길거리에서 눈물 흘리며 싸우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일터로 돌아가 KTX 승무원으로 일하는 것이다.
-.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나?
첫 번째는 개인적으론 투쟁기간이 길어지면서 파업을 포기하고 떠나는 승무원들을 보면서 가장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다. 남아있는 전체 승무원을 위해서도 자기 자신이 옳았고, 여성노동자로 당당히 살 수 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동료 여승무원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두 번째는 수배 중이었을 때였다.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 상황에서 안에서만 갇혀 살다보니 더울 때, 추울 때, 전경한테 얻어 맞고 절규하고 울고 그럴 때 현장에서 함께하지 못하는 부분에 제 스스로 화가 나기도 했고, 작년 하반기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 정말 몸이 아파도 병원에도 갈 수 없는 상황에서는 포기하고 싶기도 했었다.
-. 수배생활은 힘들지 않았는가?
9개월 반 동안의 수배생활이었다. 12월 마지막 주에 경찰에 자진출두해서 조사받고 나왔지만, 수배기간 동안 주변에서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해칠까봐 걱정을 많이 했었다. 활동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지난 해 말은 정말 감당하기 힘든 고통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때마다 주변에서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많아서 극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교수모임에 계시는 이화여대 조순경 교수님이 많이 도움을 주셔서 위기를 잘 넘긴 것 같다. 그리고 지부장으로서 휘청거릴 때 많이 이해해 주고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격려해준 승무원들에게 너무도 고맙게 생각한다.
-. 지난 해 삭발을 했는데 심정이 어땠나?
체포영장 떨어지고 나서 조합원들의 투쟁을 옆에서 지켜만 보면서 운신의 폭이 없는 지부장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자위적인 것 밖에 없다는 것 예상했다. 조합원들 투쟁하는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는 삭발단식 같은 몸으로 보여주는 날이 올 것이란 생각을 했었다. 정부가 당시 불법파견을 체포영장으로 뒤집으려 했을 때 망설임 없이 단행했다. 전체 승무원들이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을 수 있다면, 저 개인은 승무원 일을 못한다 해도 문제되지 않았다. 다만 삭발을 함으로서 아무 잘못 없는 승무원들을 울게 만들었던 철도 공사 경영진이 미웠다. 그리고 이 지경까지 오게 만들고, 가슴에 멍을 들게 했다는 분노에 돌아와서 많이 울었다.
▲ 파업 1년여..... 그동안 하나 둘 씩 떠나는 조합원들과 9개월 반 동안의 수배생활이 가장 힘들었다는 민세원 지부장 (사진 미디어몽구)
“철도공사 정규직 약속, 모두가 거짓이라니.....”
-. 파업이 장기화 되면서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CMS 참여와 재정사업도 했다고 들었다. 어느 정도 수준인가?
승무원들 가운데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분들이 있어 많이 힘들었다. 최저생계비라도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난해 북한산 술과 나물도 팔았다. CMS 가입 신청자가 약 700천명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절차상 복잡한 관계로 아직까지는 재정지원이 원활하지 못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새로운 집행부가 들어섰다. 의지에 따라서 CMS 참여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생각한다.
-. KTX에 오기 전 항공사 승무원으로 일했다고 알고 있다. 입사 전과 후의 상황이 어떻게 변했는가?
대한항공사 승무원으로 5년 동안 일했다. 그곳도 근무환경이 열악해졌다고 들었다. 그래도 저는 5년은 버텼는데..., 그 때는 사회현실을 몰라서 미련 없이 그만두고 나왔었다. 개인적으론 교육을 하고 싶어서 C/S 강사 수료증을 따고 경력직으로 지원을 했다. 입사 후 얼마 되지 않아 다른 강사직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갈등이 되었다. 하지만 본부장의 말처럼 “2004년을 근무하고 2005년 정규직화해서 교육 인스트럭스를 시켜줄 것이다. 일단 업무를 해보라”는 말을 믿고 들어왔었다.
당시에 철도청장이나 간부들이 저희를 채용하고 교육도 시키면서 확신을 심어준 것이다. 여기에 “당신들은 한 가족이니 정년을 보장 한다.”는 등 그들의 말을 철석같이 믿게 했다. 솔직히 철도공사 경영진이 350명을 교육 시키면서 차마 거짓말을 하겠냐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거짓이란 사실을 우리는 길거리에서, 농성장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눈물로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 KTX 승무원 대부분이 사회 초년생으로 알고 있다. 많이 힘들었을 것인데.....
KTX에 들어온 승무원 대부분은 대학에서 승무원이 되기 위해서 공부했던 친구들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에 첫 승무원이란 기대가 컸었다. 2004년 개통 때에는 모든 사람들이 “공무원이어서 좋겠다. 연봉 3천4천 받아서 얼마나 좋으냐.”며 부러웠던 했지만 사실 우리들은 부끄러워 말하지 못했다. 차별과 착취 또한 심했었다. 하지만 곧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끄러움을 잊고 지냈었다. 그러다 2005년에는 노동조합을 만들고 ‘저희들은 철도청 소속도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사실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2005년 노동조합을 만들고 철도공사의 부당한 차별과 착취에 맞서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에 깊이 들어 갈수록 이 세상의 모든 여성들이 문제가 한 가운데 놓여 있었다. 파견노동자의 문제, 하청노동자의 문제, 양극화 문제, 신자유주의의 문제 등 우리 여성노동자들의 문제가 세상 한가운데 놓여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느낀 것이다.
철도공사.... “파업을 포기한 대가 관리직 특혜 강요했다”
-. 철도공사 측의 부당한 차별이나 회유가 있었다고 들었다. 어떤 사례들이 있었나?
저희들은 KTX 승무원으로 입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철도공사 측은 자회사인 관광레저로 이적할 것을 강요했습니다. 언론에 많이 알려진 데로 관광레저는 부실한 자회사에 불과합니다. 부실한 자회사의 정규직이 된다손 치더라도 관광레저에서 계약해지를 당하면 정규직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여기에다 현재 승무원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과거 홍익회가 했던 영업사원을 요구하고 있다. 판매카트를 잡는 순간 영업사원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요구는 2004년, 2005년에 해왔던 승무원 일을 해야 하는 것이고 철도공사가 입사 시 약속한 직접고용에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철도공사 측에서 승무원들에게 노골적이고 공공연하게 "파업을 포기하고 이적하는 순서대로 진급을 시켜주겠다."고 강요까지 했다. 능력이나 정당한 사유에 따라서 대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파업을 포기한 순서에 따라서 그 대가로 관리직이나 진급을 해주겠다는 발상이 현 철도공사의 태도이다. 이 같은 일은 계속진행 되고 있기에 우리는 더더욱 부당함에 끝까지 맞서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철도공사 이철 사장 만났던 이야기를 해 달라.
지난 해 새마을호 승무원 농성 지지 방문을 갔었던 적이 있었다. 농성장 방문길에 우연하게 이철 사장과 마주쳤었다. 전화로 만날 것을 제안해 약 두 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 이철 사장은 언론에 알리지 말 것을 강요하기도 했다. 그러나 두 시간동안 만남을 가졌지만 이철 사장의 본 모습을 알게 되어 충격을 받았다. 이철 사장을 만나기 전까지만 이철 사장에 대해서 아는바 없었다. 저희 오빠들은 대학 다닐 때 존경하는 인물로 또는 민주투사로 알려져 있기에 그런 사람쯤으로 생각했다.
크게 두 가지만 이야기 하겠다. 먼저 이철 사장에게 제안을 했다. 왜? 외주화를 주어야 하는지 대한 합리적인 설명이 있다면 지금 당장 투쟁을 접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이철 사장의 논리는 실망스러울 정도였다. 처음 뽑았을 때 그렇게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과 정부나 공사의 방침이 구조조정이라고 밝혔다.
두 번째는 역사로비에서 새마을호 승무원들에게 불법이라 말하는데 이철 사장이야 말로 사형수로서 가장 큰 불법을 저지르지 않았냐고 물었다. 이철 사장 자신은 단지 “박정희를 욕한 것 밖에 없다.”고 했다. 순간, 과거의 자신이 했던 민주화운동마저 폄하하는 것 같아서 낯이 뜨거웠다. 혹시나 왜곡된 정보로 오판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했던 생각들은 이제 홀가분하게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혹시나 했던 기대감이 사라지게 되어 이제는 너무도 홀가분하다.
▲ 민세원 지부장은 이철 사장을 만나면서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혹시나 했던 기대감을 떨쳐버릴 수 있어 너무도 홀가분하다고 말했다.(사진 미디어 몽구)
-. 사는 야기를 해 주었으면 한다. 파업기간동안 결혼한 조합원들도 있다고 들었는데.....
입사 당시엔 없었지만 파업하는 중에 결혼한 친구들이 일곱 명 정도 있다. 초기 파업할 당시엔 애인들의 반대, 부모님의 반대 등을 이유로 파업을 포기한 승무원들도 있었다. 그러나 결혼이란 것을 존중하기 때문에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현재도 아이를 가진 승무원들이 있다. 곧 출산일이 가까워져 집에 있지만 일주일에 한번 정도 간담회 정도를 가지고 있다.
“KTX 승무원 파업 보도..... 언론의 ‘호기심 보도’ 도움 안 돼”
-. 다른 장기투쟁 사업장에서 KTX 승무원 언론보도에 대해서 부럽다는 이야기가 있다.
언론을 비판할 수밖에 없다. 처음 파업하고 정말 깜짝 놀랐다. 주요 3사 방송사부터 정말 난리가 났었다. 단지 신기한 호기심 같은 보도 행태였다고 생각한다. 20대 초반의 여성 승무원 수 백 명이 파업한 그 차제가 신기한 일이다. 보도 내용 또한 구경 왔다고 밖에 볼 수 없는 단발성 보도였다.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보지 않은 언론의 보도는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일부 인터넷 언론들이 이러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보도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주요 언론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혹시 모르겠다. 다른 장기투쟁 비정규직 사업장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를 갖고 있지 못하기에 언론의 관심이 없는 것 아닌가 한다.(웃음)
-. 지난해를 돌아보면 집회도 많았고 연대활동이 활발했는데, 최근 들어서 이러한 활동이 주춤한 이유가 있는가?
조합원들이 지난해 많은 연대들을 펼쳤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난해 말 이후에 적극적인 연대 활동을 펼치지 못해서 고민되는 부분이다. 최대한 연대를 하려고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노동자들의 투쟁이 힘들어하고 있는 것도 한 요인이다. 특히 언론의 보도를 보면 마치 지금이 대선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 이 같은 언론의 관심이 대선주자들에게 쏟아지고 있는데 과연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면 노동자들의 문제,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가 올바르게 전달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 지난해 11월 30일 비정규직 법안 통과 이후 민주노총의 대응이 부족했던 부분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민주노총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조직 내부에 제대로 된 비정규직 전문가 하나 없었다. 신임 이석행 집행부 또한 비정규직 사업에 전력을 다 하겠다고 말했지만 아직까지 실질적인 변화가 없어 보인다. 현재 장기투쟁 사업장의 경우엔 개별사업장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지난 해 민주노총을 보면서 기륭전자 동지가 한 말이 생각난다. “집안에 아픈 자식이 있다면 제일 아픈 자식부터 병을 고치는 것이 순서다.” 그렇다면 지금 민주노총의 아픈 자식이라 한다면 장기투쟁 사업장이다. 그동안 민주노총의 모습은 우리들을 자식으로 생각을 안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앞으로는 자식으로 생각하고 문제해결에 적극 나설 것으로 기대한다.
-. 비정규직 문제를 겪으면서 느낀 점과 앞으로 활동과 계획은 어떤 것인가?
우리 사회의 전체 노동자 가운데 60%가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고 있다. 차별과 고통, 비정규직으로 당해야 하는 부당함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럼에도 비정규직이 비정규직을 비난하는 것이 너무도 안타깝다. 어떻게 70만원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100만원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난하는 세상이 되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비정규직 노동자들 스스로 비정규직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것 같다.
철도 정규직의 외주화가 곧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비정규직의 외주화는 시작에 불과하다. 공사 측에서 이미 3만 여명의 조합원 가운데 5천 여명만 남기겠다는 방침을 밝힌 지 오래다. 싸고 편하게 부려먹고 직접고용으로 쓰다가 편하게 내가 필요한 노동력을 필요로 해서 직접고용을 피하고 간접고용을 정부가 여기에 동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 여성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노출되어 있다.
가끔 이런 말을 듣는다. 20대 능력 있는 애들이 다른 직장을 가면 되는데 그곳에 왜 있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사회의 현실 속에서 다른 직장에 가면 여성들이 차별과 착취가 없는지 묻고 싶다. 여기서 겪었던 일들을 다시금 겪어야 한다면 차라리 당당하게 맞서 우리의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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