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민중

나의 분신인 KTX승무원 동지들에게...

녹색세상 2007. 3. 3. 10:18

   귀하게 자라 착하게 공부만 한 우리의 딸들이 일년 넘게 파업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파업이 뭔지, 투쟁이 무엇인지 노동자의 권리와 비정규직이 어떤 것인지 모르고 살아 온 그들이 성차별과 비정규직 철폐 투쟁의 선봉에서 힘차게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 딸들이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다며 어머니들이 싸움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어떤 어머니는 ‘딸이 그만둔다 해도 내가 끝까지 가겠다’며 의지를 불태우고 있습니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 자식을 감옥에 보낸 민가협의 어머니들을 보는 것 같아 마음 아프기 그지없습니다. 제게는 질녀 뻘의 젊은 여성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저려 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더 줄기차게 투쟁에 임하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른 채 얼떨결에 앞에 서게 되었다는 ‘왕언니’ 민세원 지부장의 글이 있어 올려봅니다.


 

 

   많이 힘들지? 하지만 나도 그렇고 우리 모두 자신의 간절한 선택과 정당한 노력을 포기하고 노예처럼 사는 것 보다, 힘들지만 이렇게 계속 투쟁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훨씬 편한 일이라 생각한다..... 당장 몸이 편한 것을 좇으면 그 순간은 좋을지 모르나 평생 후회와 고난 속에 살게 되는 것이 진리인 법이니 말이다.

 

  나 역시도 동지를 등지고 KTX관광레저로 가서 힘들게 투쟁하고 있는 우리들 마음에 대못을 박은 이들에게 화가 났었지..... 하지만 이젠 마음 깊이 측은하단 생각이 든다. 특히 정리해고 이후나 최근에 지원해서 간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 아프다. 자신의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면서도 당장의 안락함이나 현실적인 어려움에 굴복하고 들어간 것이니 자괴감에서 벗어날 수 없을 테고,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테니 말이야. 모두 알고 있겠지만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한, 원하는 것을 얻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마음이 아플 수밖에 없구나..... 하지만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기에 마지막까지 투쟁한 동지들이 철도공사에 직접고용 정규직이 되어 승무원으로서 일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미래를 준비하자, 그것이 투쟁이다. 투쟁의 내용에는 현장으로 돌아갔을 때를 대비한 자기개발도 포함되는데 너희들이 알아서 잘 하고 있는 것에 무척 감동 받았단다.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투쟁일정 사이사이 짬을 내어 공부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나 자신도 더 분발한단다. 치고받고 싸우는 투쟁도, 자신을 위한 투자도....진정 나 자신을 위한 모든 것이「투쟁」이다. 「투쟁」은 자신의 생활 속에 깊이 박혀 실천해야 진정 삶을 발전시킬 수 있다.

 
  1년 가까이 합숙하면서 동지들과 희노애락을 함께하며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2월 23일이면 파업투쟁을 시작한지 360일을 맞이하는구나. 곧 1년...긴 투쟁과정 속에서 나는 누군가를 섣불리 판단하거나 규정지어선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단다. 나 자신조차도 말이다.

 

  사람은 변할 수 있고 변한다. 자의든 타의든 변화하지 않는 사람은 없지...일상생활에 있어서도 그렇고 투쟁에 있어서도 그렇다. 그러니 지금 당장 마음에 들지 않거나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다름’을 이해하고 기다려보렴. 어느 날 문득 아주 달라져 있는 상대방을 발견하게 되고 예전에 간단히 결론지어 버렸던 그에 대한 판단들이 성급했었다는 것을 알게 될거야. 우리 모두 스스로 많이 변하고 성장했잖니.^^

 

  동료 중 누군가가 안 좋은 일이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했을 때 탓하거나 미워하기 전에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도록 노력해보자. 그리고 내 잘못이나 실수에 대한 비난을 접했을 때 원망하거나 화를 품기 전에 역지사지의 자세로 숙고해보자. 투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서로가 무엇을 제일 싫어하고 어떤 것에 제일 민감한지를 낱낱이 잘 알고 있잖아... 어떤 일을 놓고 상대방이, 다른 동지들이 어떤 느낌과 생각을 갖을지 알 수 있잖아... 투쟁이 아무리 힘들고 나 자신을 괴롭힐지라도 내가 선택한 당당한 길이라는 자부심을 마음 한가운데 깊이 심고 다른 동지들을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노력에 인색하지 말자.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동지에 대해 정성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동지도, 투쟁도 아닐거야...

 
  지난 1년이...10년 같기도 하고 하루 같기도 하다. 어려운 순간순간마다 너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투쟁의 열기와 희망과 의지가 나를 붙잡아 주었어... 정의와 진실이 아닌, 얄팍한 정치적 판단과 꼼수들이 난무하는 추잡한 사회 속에서도 우리는 결코 희망을 잃을 수 없을 거야. 끝까지 함께할 동지가 있고 신념과 목표가 있으니까.....

 
  내가 지부장으로 일해 온 것이 딱 2년이 됐구나. 지난 2년 동안 마음을 다해 KTX승무원을 위해서 총력을 기울였고 이것은 내 인생에 있어서도 전무후무한 일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나 자신을 버리기 위해 아직까지도 순간순간 노력한단다...진정 나 자신을 비우고 버렸을 때, 더 많은 것을 얻는다는 사실을 알았거든. 나 자신만을 위한 사고와 삶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사고와 삶을 갖을 때, 더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될 거다. 우린 그 첫걸음을 걷고 있는 것이고....

 
  하루하루 힘들어하면서도 늘 밝은 웃음과 유머를 잃지 않는 성실한 KTX승무원 동지들 모두를 존경하고 사랑한다..... 너희들이 있기에 내가 있다. 우리 모두가 포기하지 않고 한 마음이 된다면 반드시 이루어 낼 우리의 목표를 생각하며 새해를 맞이하자. 당당하고 기쁘게 2007년을 마주하자.

 

                                  2007년 2월 22일

                  「 컨테이너 속의 늙은 공주님」에서

            「움직이는 왕언니」로 거듭난 민세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