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엑스파일이 또 공개되었다. <미디어오늘>이 2월21일 보도한 삼성의 기자 대처 요령은 ‘대 언론 엑스파일’이다. 삼성이 최근 신입사원을 상대로 언론 접촉 유의사항을 교육시켰다. ‘기자를 만났어요’라는 교육 안에 따르면, ‘기자는 비즈니스맨’, ‘파워의 자부심=권력’, ‘dog 저널리즘, 냄비 저널리즘(때로는 무책임 보도의 유혹에 빠진다)’ 등 사회초년병인 신입사원에게 기자와 언론에 대한 그릇된 시각을 강의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23일 오전 11시 삼성본관 앞에서 삼성의 잘못된 언론관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특히 이날 기자회견에는 삼성 관련 기사삭제가 발단이 되어 파업 중인 시사저널 기자들이 참석했다. 지난해 6월 삼성 이학수 부회장과 관련된 기사를 금창태 사장이 인쇄소에서 삭제하자 시사저널 기자들은 편집권 독립 등 기자답게 일할 수 있는 근로조건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고 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소장(한성대)은 “최근 주요 화두가 진보와 관련한 논쟁이다. 신자유주의 물결과 개발독재 시대의 유산이라는 이중적 모순 때문에 우리사회의 진보와 발전이 저해되고 있다. 이중의 모순은 허깨비가 아니다. 삼성으로 상징되는 자본권력이야말로 이중적인 모순의 실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런 거대한 자본권력이 언론마저 장악하면서 우리사회의 질곡을 심화시키고 있다. 시사저널 사태야말로 그 상징이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자본권력은 경영권의 자율성을 주장하고, 언론권력은 편집권의 자율성을 주장하지만, 경영권이나 편집권은 권리가 아니라 위임받은 권한이며, 그 권한의 남용을 바로잡는 게 바로 진보와 발전의 실체라고 김 교수는 주장했다. 김 교수는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해 위임한 권한을 제한할 때, 우리사회는 변화한다. 우리 모두 입을 열어서 비판하고 행동하자”라고 말했다.
김 교수에 이어 마이크를 잡은 신학림 전국언론노조위원장은 “삼성이 신입사원을 상대로 교육을 하는 것은 자유다. 다만, 정확한 내용이 아니라 왜곡된 내용을 가르쳤다는데 문제가 있다. 삼성의 왜곡된 언론관은 시사저널 사태와 무관하지 않다. 삼성은 변한다고 말로만 하지 말고, 적당히 사과하고 넘어가지 말고, 진정으로 사과하고 변해야 한다. 그래야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삼성 기사 삭제사건이 발단이 되어 파업 43일째를 맞고 있는 시사저널노동조합 안철흥 위원장은 “어제 삼성전자 홍보 담당자가 찾아왔다. 삼성에 대한 불만보도 사례로 시사저널 표지를 넣은 것에 대해 해명했다. 실무진의 실수라고 했다. 우리도 삼성이 시사저널에 대한 어떤 악의를 가지고 교육서를 만들었다고 보지는 않다. 그러나 삼성 관련 기사 삭제사건에서 드러나듯 삼성이 언론을 바라보는 시각에 문제가 있다. 오만과 편견과 독선으로 점철된 그 시각 때문에 시사저널 기사 삭제 사건이 발생했다. 삼성은 한국의 대표기업답게 대언론정책도 바뀌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2월2일 기자회견 때 벌어진 물리적 충돌을 우려해서인지, 삼성은 경호원을 내세우지 않아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
이날 발표된 기자회견문 성명 전문은 아래와 같다.
©시사저널 노조
삼성의 '언론 x-파일'에 경악한다
삼성이 신입사원들에게 기자를 대처하는 방법을 조직적으로 교육시킨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충격적이다. 삼성의 대언론 대응이 치밀하다 못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삼성은 진정 언론통제 왕국을 꿈꾸는 것인가? 지난 21일자 <미디어오늘>은 삼성전자의 신입사원 교육 자료를 입수해 ‘삼성, 신입 사원에 기자 대처 교육’이라는 제목으로 삼성전자 신입사원들이 최근 ‘언론 접촉 유의사항’ 등을 교육받았다고 보도했다. ‘기자를 만났어요’라는 제목의 A4 용지 14쪽 분량인 이 자료에 언론과 기자의 특성, 위기 대응 기본원칙, 삼성의 언론 홍보 구조, 언론 응대 실패 사례 등이 자세하게 나와 있다.
삼성은 기자들에게 술과 밥을 먹이는 것을 홍보업무의 전부로 여기고 있는 그룹 내부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신입사원 교육 자료에 언론과 홍보업무 관련 내용을 포함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 자료는 삼성의 언론관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기자의 특성“ 부분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Power의 자부심= 권력’, ‘때로는 무책임보도의 유혹에 빠진다.’ ‘dog 저널리즘, 냄비 저널리즘’.
왜곡도 이런 왜곡이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진실을 캐기 위해 탐사 심층 보도에 주력하고 있는 기자들을 모욕하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이는 한마디로 기자들을 권력을 추구하는 집단으로 보는 것이자 주관도 없이 무책임하게 동조 보도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묘사한 것이다. 기자들이 세속적인 권력을 추구하나, 기자들이 한 명이 보도하면 확인도 하지 않고 무조건 따라서 보도하나, 기자들이 냄비처럼 끓어올랐다가 순식간에 식는 식으로 보도하나. 일부 부정적인 측면에 주목한 것이라고 해도 신입 사원 교육 자료에 이런 내용을 넣었다는 자체가 삼성이 얼마나 잘못된 언론관을 갖고 있는지를 스스로 만천하에 알린 것이다.
이 자료 119쪽에 나와 있는 ‘대기업에 대한 언론의 이중성’ 항목도 삼성 스스로 인정하다시피 문제가 심각하다. 삼성은 언론이 기업 확장에는 관대하지만 소수에 의한 경제구조에는 불만을 갖고 있다면서 2005년 9월에 발간된 <시사저널> 추석 합병호 ‘삼성은 어떻게 한국을 움직이나’ 표지를 실었다. 국민 여론조사와 삼성그룹 임원들 분석,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을 분석한 기사 등으로 이루어진 <시사저널> 보도를 ‘불만보도’라니, 말이 나오지 않는다. 미루어 짐작컨대 삼성은 아직 ‘불만보도’를 접해보지 못한 것 같다. 삼성은 진짜 ‘불만보도’가 어떤 것인지를 한 번 보고 싶은가. 삼성측은 “이중성이라는 용어를 수정하겠다. 부정적인 의미로 <시사저널> 표지를 넣은 것이 아니다. 사과 한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미 삼성의 신입사원들에게 <시사저널>은 삼성에 대한 불만세력이라는 낙인이 찍혔을 것이리라는 점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삼성 이학수 부회장과 관련한 기사를 금창태 사장이 인쇄소에서 삭제하면서 촉발된 <시사저널> 사태와 관련해 우리는 이미 삼성도 일정한 책임이 있음을 거론한 바 있다. 이 기사가 보도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삼성 고위층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또 지금 이 순간에도 삼성 회장 비서실 전략홍보팀 상무이사를 지낸 인물이 ‘짝퉁’ <시사저널> 제작을 총지휘하고 있다. 우리는 이번 삼성의 ‘신입사원 교육사건’도 우연한 실수로 벌어진 일이라고 보지 않는다. 이것은 삼성의 비뚤어진 언론관이 낳은 필연적인 사건이다. 갈 길 멀고 할 일 많은 삼성은 기업 위상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과 품위를 갖춰라. 그렇지 않으면 '불만보도‘가 봇물 터질 것이다.
2007년 2월 23일 전국언론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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