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와 국제

병역 거부자 수감, 1만명으로도 부족한가?

녹색세상 2007. 2. 15. 16:58

 

 ▲ 해방 후 60여년 동안 1만 명이 넘는 젊은이들을 감옥으로 보냈지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여전히 인정되지 않고 있다. 사진은 2005년 6월 7일, 문상혁 청년인권연대 대표가 입영 통보를 거부한 채 국회 앞에서 입영통지서를 찢으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선언하는 모습

 

  병역 거부를 선언하는 순간 감옥행이다. 전과자가 될 줄 뻔히 알면서도 병역 거부를 하는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남을 죽이는 총을 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종교적인 이유도 있고, 개인의 신념에 따른 것도 있다. 이들을 전과자로 만드는 짓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분단을 미끼로 아직도 집단 광분에 젖어 젊은이들을 감옥 보내는 짓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병역 거부로 인해 수감된 젊은이들이 1만명이 넘은 부끄러운 사회에 살고 있음을 우리 사회는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난 5일 정부가 발표한 대체복무제의 단계적 폐지와 사회복무제 도입에 대한 안을 접하면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수형생활을 마친 이로서, 6년 가까이 병역거부권 실현을 위해 활동한 이로서 비통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작년 말 청와대에서 사회복무제 도입 논의가 나왔을 때, 그리고 그 모델로 독일의 사회복무제가 거론됐을 때, 필자는 한국사회에서 반세기 넘게 지속된 병역거부자들의 감옥행이 끝날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모델로 삼은 독일의 사회복무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병역거부자를 위해 만들어진 제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병역제도 개선안을 마련한 '병역자원연구기획단'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의 문제를 연구했으나, 그들에게 사회복무제의 기회를 준다면 병역이행의 형평성 원칙에 어긋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신념상의 이유로 군사훈련을 받을 수는 없지만, 자신의 신념만 인정된다면 훨씬 더 긴 기간 동안 힘든 일이라도 기꺼이 수행하겠다는 젊은이들을 계속 감옥으로 보내겠다는 결론이다.


  하나하나 짚어보자. 먼저 병역거부자들에게 사회복무제 기회를 주는 것이 과연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인가? 정부는 현재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의 90% 이상이 현역복무대상으로 분류되고 있기에 양심을 이유로, 신체검사 4급 이하인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복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형평성을 논할 때에는 구체적인 사례로 이야기하는 것이 빠르다. 현재 발의된 법안(2004년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과 임종인 의원이 각각 발의한 법안)에 준해서 이야기한다면, 사회복무제에서 요구하는 1주의 군사훈련을 면제해주는 대신 1.5배의 복무기간을 수행하겠다는 것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인정을 요구하는 이들의 대체적인 주장이다. 복무여건도 현역복무에 준하는 합숙생활을 명시했다. 이것도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병역기피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한다면 인원제한을 두어서라도 시행해보면서 면밀하게 검토해보자고까지 제안했다. 도대체 언제까지 '우려가 있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감옥행을 모른 척할 것인가.


  형평성 이야기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해보자. 점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한 대체복무제의 하나인 의무경찰에 지원자가 몰린다는, 그래서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이야기는 없다. 의무경찰은 엄연하게 대체복무제이며 현역복무대상자가 지원해서 가는 곳인데 왜 그런가? 사회적으로 군 복무만큼 힘들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즉, 군 복무는 힘들고 대체복무제는 편하다는 생각은 막연한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대체복무 중에서 형평성에 어긋나는 복무가 있었고 업무분야와 운용에서 뚜렷한 기준이 부재했기 때문에 그런 인식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점들이 사회복무제가 해결해야 할 것들이며, 그 속에서 형평성에 맞는 병역거부자의 사회복무도 거론돼야 한다.

 

문제는 형평성이 아니라 관용과 이해 부족..... 오늘도 2명은 감옥으로


  지금까지의 대체복무엔 4주 군사훈련이 포함돼 있었기에 신체검사에서 4급을 받더라도 신념상의 이유로 대체복무를 거부하고 결국 감옥에 가야했다. 이번에 발표된 안의 사회복무제에도 1주의 군사훈련이 포함되어 있기에 신체검사 등급을 막론하고 병역거부자들에게 기회는 없다. 1주든 1분이든, 군사훈련을 거부하는 병역거부자들로서는 수행할 수 없는 일이다. 신체검사 1~3급인 현역입영 대상의 사회복무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면, 사회복무 대상자인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가 1주 훈련 때문에 감옥에 갈 수밖에 없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결국 문제는 형평성이 아니라, 관용과 이해의 부족에서 비롯한다.


  계속되는 젊은이들의 감옥행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광복 이후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젊은 날을 감옥에서 보냈으며, 평생 전과자라는 멍에를 짊어지고 살아야했다.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도 1천여 명의 젊은이들이 구속된 채 이 사회의 변화만을 창살 너머로 소망하고 있다. 이들을 좁은 감옥으로 밀어 넣는 것이 아니라 소외되고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서 자신의 의무를 다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상식에 부합하며, 모든 이에게 좋은 일이다.


  분단이라는 조건에서 조성된 과잉 안보이데올로기, 열악한 복무여건 때문에 만연한 병역기피 풍토. 그 논리 속에서, 상식에 부합하고 모든 이에게 좋은 일은 금지돼야만 했다. 그 결과는 어떤가. 놀라지 마시길. 현재 전 세계에서 병역거부를 이유로 수감된 사람 중 약 90%가 한국감옥에 있다. 압도적 1위를 차지한 한국이기에 국제사회의 따가운 질책을 피할 수 없었다.


  지난 연말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UN Human Rights Committee)는 두 차례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처벌, 차별하는 것은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위반이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대안을 마련하고 수감된 이들에게 손해배상 할 것까지 권고했다. 그럼에도 한국정부는 묵묵부답이다. 아니 병역거부자들의 사회복무로 독일 사회의 수많은 영역이 움직이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 제도를 들여오면서 한국의 병역거부자들에게 어떠한 기회도 주지 않겠다는 것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더욱 악화시키는 조치이다.


  지금의 정부안은 이제 사회적으로 본격적인 토론을 거쳐 다듬어져야 할 것이다. 1주의 군사훈련이 제외된 복무가 사회복무제에 생겨서 병역거부자들이 사회와 공동체에 자신의 의무를 다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길 간절하게 바라는 사람이 많다. 현역입영대상자가 사회복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또한 1주의 군사훈련이 제외되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장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수많은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현역보다 긴 복무기간이 그러한 합리적 장치로 고안됐고 성공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문제를 다루는 데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더 이상 늦출 수는 없다. 통계적으로 보면 오늘도 2명의 젊은이가 감옥에 갈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순간에 차가운 감옥에 있을 젊은이들과 그 가족들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이미 부끄러울 만큼 늦었다.  (오마이뉴스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