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예술

한국교회 매카시즘의 바람 불어

녹색세상 2007. 2. 1. 16:00

자기 생각과 다르면 무조건 비방…운동 한번 안했던 목사도 빨갱이

 

  요즘 한국 개신교에 좀 이상한 바람이 불고 있다. 1970-80년대 한국 기독교는 권위주의 독재체제에 맞섰던 ‘진보’적 학생 노동운동의 보호막이자 협력자였다. 저항적 사회운동이 성장한 요람이었고 민주화운동의 결정적인 국면들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처럼 한때 ‘진보세력의 상징’처럼 비쳤던 한국 기독교, 특히 개신교는 어느 날부터인가 ‘보수 세력의 상징’으로 돌변하였다. 적개심과 분노가 가득 찬 그들은 교회 강단에서 연일 성도들을 대상으로 정당 대변인을 뛰어넘는 정치 설교를 말하고 있다

 

  종말론적인 하나님나라의 통치를 외면하고, 예수의 가르침은 ‘친미반북 사상’으로 해석되고, 다시 한번 변용돼 국가보안법 존치, 사학법 재개정, 좌파 정권 교체 등 자신들의 잣대로 많은 보수 교회가 공격적으로 변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부도덕한 행위 때문에 내려진 법정의 심판마저도 좌파 정권 때문에 일어난 피해자인 냥 전가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이들은 안에서는 가해자가 되어 다른 생각을 가진 목회자를 공격하고 있는 실정이다. 만약에 진보적인 목소리를 냈다가는 교단의 영향력 있는 보수적 목사나 장로에게 친북반미로 찍히기 십상이다. 요즘 책임 편집한 현대사 책 한 권 때문에 그 흔한 민주화운동 한 번 안했던 목사가 빨갱이 목사로 몰리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없어졌거니 생각했던 냉전 시대의 추악한 매카시즘의 바람이 오히려 교회 안에서 불어오고 있는 것이다. 사실 한국의 개신교는 소수의 진보 세력 외엔 언제나 보수 우익 쪽으로 기울여져 있었다.

 

  3.1운동을 기점으로 변절한 한국 개신교는 결국 해방이 되어도 신사참배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고, 반공주의를 매개로 이들은 일제 대신 미군정의 비호 아래 자신들의 기득권을 늘려나갔고 이승만 독재체재를 강화하는 데 일조하였다. 반공은 신사참배의 원죄를 씻어내려는 한국 개신교의 몸부림이었다. 더 나아가 5.16쿠데타와 유신헌법을 옹호하고 광주의 숱한 인명을 학살하고 정권 찬탈에 성공한 군홧발에 납작 엎드려 조찬 기도를 해주었다. 또한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이 정하신 바라”는 로마서 13장의 말씀을 들이대며 민주화를 바라는 교회 내 혁신 세력들을 억눌렀다.

 

  6월 항쟁에도 6.29선언 이후에도 복지부동으로 몸보신하기에 급급한 이들은 사회가 변하여 가는데도 오히려 수구로 퇴락해가고 있다. 권력과 야합하여 부와 거대한 성전과 수많은 신도들로 교세를 확장하였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다보니 빈자나 약자와 공유하지 못하고, 부자 세습이라는 불명예와 부도덕한 성적 타락으로 그 이름이 곤두박질하는데도 오히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점점 보수 우경화로 무장해갔다.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잘못을 회개하지 못하고 잡은 것을 놓을 줄 모르니 이들은 매사에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자기와 다른 타자의 입장을 이해하지 않으며, 오히려 친북 좌파 정권 타도를 부르짖고 스스로를 친미 반북 반공세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실정이다.

 

  매카시즘을 조금 다른 말로 표현 한다면 그것은 데마고그(demggogue)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인 데마고그에는 그래도 어떤 이념이 존재하겠지만 종교적인 데마고그에는 하나님을 앞세운 선동밖에는 없다. 사실 공산주의는 우리가 최선을 다해 맞서 싸워 반드시 꺾어야 할 적이었고, 한국교회가 공산주의에 대한 열렬한 반대를 정체성의 기원으로 삼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하여 무자비하게 또 다시 매카시즘의 바람을 일으키겠다면 우린 이를 단호히 견제하고 박멸하여야 한다. 우리가 부정할 것은 보수주의와 진보주의가 아니다. 어차피 세상은 보수와 진보가 공존하여야 한다. 건전하고 가치관이 확실한 보수와 진취적이면서도 건강한 진보가 공존하여야만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다시 이 땅에 매카시즘이 불어 닥친다면 그것은 또 다른 공멸을 부르는 바람일 것이다.


추악한 매카시즘 몰아내야


  매카시 그는 누구였던가? 미국의 위스콘신 출신의 매카시(Joseph Raymond McCarthy)라고 하는 공화당 출신의 상원의원의 이름을 따서 우린 매카시즘(McCarthism)이라고 불렀다. 매카시는 1946년에 공화당 상원으로 당선되었다. 이 사람이 일약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된 계기는 웨스트버지니아의 휠링이라는 도시에서 한 연설 때문이었다. 이 연설에서 그는 아주 놀라운 폭탄 선언을 하였다. 즉 미국 국무성 안에 공산주의자 증명서를 갖고 다니는 공산주의자 내지 용공분자의 수가 굉장히 많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면서 그 사람들의 명단을 자기가 갖고 있다고 말함으로 미국과 전 세계 여론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 충격적인 연설 이후 민주당 상원의원의인 타이딩스(Tydings)가 위원장이 된 조사위원회에서 매카시 상원의원의 주장을 조사하였지만 매카시의 주장이 증명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매카시는 계속 자기주장을 폈는데, 용공주의자가 미국 정부 내에 많이 있으며 이 사람들은 비애국적인 어리석은 사람들이며, 용공주의자와 공산주의자다라며 계속 선동적인 언행을 굽히지 않았다.

 

  이 사람의 주장은 그 시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국무장관을 지냈던 애치슨도 용공주의자이고, 그 유명한 마살 플랜을 입안한 마살 국무장관도 용공주의자라고 얘기하였다. 그 후에 매카시는 아이젠하워의 지원을 받아 다시 상원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루주벨트와 트루먼의 20년간의 행정부를 국가 반역의 20년이라 규정하고 더 나아가 아이젠하워까지 집어넣어서 국가 반역의 21이라고 선동하면서 아이젠하워까지 용공주의자로 몰아붙였다.

 

  이런 무책임한 발언과 비난으로 세상은 떠들썩하였고 결국 그에 대한 공개 청문회가 열렸으며 TV로도 공개되었다. 이를 지켜본 많은 사람들은 “저 사람이 아무런 증거 없이 저런 말을 하였구나”라고 확신을 하였고 결국 그는 1954년 12월2일 동료 상원들에 의해서 67대 22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정죄를 받게 되었다. 결국 매카시의 선풍은 급속도로 사그라졌고 결국 건강마저 나빠져 1957년에 외롭게 죽고 말았다.

 

  매카시즘의 정체란 다른 것이 아니다. 자신의 노선과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되면 거두절미하고 공산주의자내지 비애국자라고 단죄하여 몰아쳐버리는 냉전 시대의 가장 추악한 파시즘적 논리다. 어찌 보면 우린 이 매카시즘과 때려야 땔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서 살고 있었는지 모른다. 한국의 매카시들은 반공이란 한마디로 무소불위한 전가의 보도를 지니고 있었다. 친일파든 정상 모리배이든, 독립투사를 때려잡던 관동군이든, 헌병밀정이든, 반공투사로 변신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고 애국자가 되었으며, 그 반대로 독립투사이든, 애국자이든 빨갱이로 몰리면 악질 반동분자로 모든 것이 매장 당했던 시절이 있었다.

 

  어쩌면 그 정점에 한국 기독교가 존재하고 있었다. 1988년 2월 교회협은 제37회 총회에서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을 발표했다. 선언의 내용은 “우리는 갈라진 조국 때문에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을 미워하고 속이고 살인하였고, 그 죄악을 정치와 이념의 이름으로 오히려 정당화하는 이중의 죄를 범하여 왔다”면서 “특히 남한의 기독인들은 반공 이데올로기를 종교적인 신념처럼 우상화하여 북한 공산정권을 적대시한 나머지 북한 동포들과 우리의 이념을 달리하는 동포들을 저주하기까지 한 죄를 범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가 자신들의 입지가 흔들린다하여 결별을 선언하고 주님의 가르침마저 정면으로 거스르며 보수 우익으로 자처하고 있다. 그들은 지금 자신들만이 이 나라와 이민족을 구원한다는 착각 속에 매카시의 광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믿음 때문에 그나마 이 나라가 적화통일이 안되고 경제성장을 이룩하였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신자가 아닌 사람들의 눈에는 회개하지 못하고 거듭나지 못한 그들 때문에 이 나라에 고난이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번쯤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뉴스엔조이/전종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