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병상에서 제 자신을 되돌아보고 적은 것인데 청년시절부터 지금까지 윤 희 용 개인사의 많은 부분을 알고 계신 통일연대 오 규 섭 목사님 내외분과 대화를 나누다 딱지 맞은 과거사가(?) 떠올라 많은 반성을 한 내용입니다. 병상에서 책 펴놓고 지낸 유일한 환자라 거의 왕따(?)를 당하다시피 했습니다. 밤낮 구분이 거의 안 되는 게 입원 환자 생활인데 아침 일찍 눈 떠 일과를 시작하고 오전 치료 후 땀 흘리며 자전거 타고, 오후에도 그렇게 하고, 저녁 먹고는 몸을 유연하게 하는 게 진료에 도움이 된다고 매일 요가를 하러 나갔으니 따돌림을 안 당할 재주가 없죠. 그런데 산재 관련 상담하러 많이 찾더군요. ^^
솔직히 말해 저는 아직도 아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고루한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헤어진 아이가 올 해 중학교 2학년인데) 목욕탕 가면 같이 손잡고 오는 부자간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럴 수 있었는데”라며 부러워하는 아직도 덜 떨어진 남자입니다. 단, 그 아들이 나와 피가 섞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은 학창시절부터 가지고 있었고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완성된 것이 아니라 진행형이란 말처럼 사람의 철학이나 가치관은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는 것이기에 이 틀을 뛰어 넘으려는 노력은 계속하고 있습니다.
-가해자임을 깨달으면서-
권위적인 집안에서 자라 선택의 여지라고는 전혀 없었던 여동생들의 일방적인 희생이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알고 지냈습니다. 세상에 대한 눈을 뜨면서 우리 형제는 “우리 집에서 남자들은 가해자”임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전두환 정권 시절 강제 철거로 집이 통째로 날아가 사남매를 다 대학 보낼 형편이 못 되긴 했지만 클 때부터 ‘너희들은 여상 가서 취직해라’는 무언의 압력 때문에 꿈 많던 사춘기 시절부터 여동생들은 희망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어머니라는 여성의 일방적인 희생을 지금도 딛고 살아간다면 오늘의 우리 형제가 있기까지 여동생들이라는 여성들의 희생이 있었음을 여성 동지들께 고백합니다.
여성주의가 이런 제게 가르쳐 준 게 있다면 “모든 것을 여성의 눈으로 늘 새롭게 다시 읽는 작업을 해야만 여성 문제 해결에 가까이 다가 갈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20대 초반 친구가 가져다 준 장 준 하 선생님의 수기와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라는 책이 세상을 보는 눈을 열게 해주었지만 여성문제에 관해서는 거의 무지하다시피 했습니다. 생활인으로 돌아와서 직접 부닥친 “앞길이 수 백 만리 같은 어린 자식들을 고통 속에서 살아가게 하는 호주제”란 낡아빠진 괴물과 싸우면서 남녀 평등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하며 다시 한 번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월남전에 참여한 사람들 보다 더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이라는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처해있는 '성매매 피해 여성' 문제를 우연히 공부하면서 '여성주의적 관점'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남녀를 불문하고 어느 누구라 할지라도 여성주의적 시각을 갖지 않으면 여성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늦게나마 깨달았으니 천만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저 같은 예수쟁이들은 이럴 때 ‘하느님이 주신 좋은 기회’라는 일종의 자기 고백을 한답니다. ^^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말한다면 “민중진영과 진보진영은 여성들에게 엄청난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남성들은 한시라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어느 여성 운동가의 말은 개인적으로 저희 형제들에게도 결코 예외가 아닙니다. 밥벌이에 정신이 팔려 잊고 살았던 이 문제가 40대가 넘어 새로이 제게 다가왔음을 정말 감사히 여깁니다. 그러기에 저는 최근 스웨덴에서 실시한 ‘기업임원 40% 여성 강제 할당’ 문제를 적극지지 하면서 우리 민주노동당에도 현행 30% 할당의 비율을 차츰 올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칠레의 피노체트 군사독재 정권에 항거하다 온 집안이 거들 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성 대통령 당선자의 “각료는 남녀 반씩 임명하겠다”는 인터뷰가 제게만 인상적이진 않았을 것입니다.
-마무리하면서-
사람이 없다고요? 언제 민주화 운동과 진보 진영에 사람이 남아 돈 적이 있었습니까? 없으면 발굴해야 할 것이며, 부족한 점이 있다면 교육과 훈련을 통해 단련시키면 된다고 믿습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며 누구에게나 기회와 여건이 주어지면 부족하긴 하나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도 발견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절반인 여성들이 행복하지 않으면 남성들 또한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여성들을 소외시키는 한 우리 사회의 희망은 결코 없다고 믿습니다.
06년 2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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