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국립사범대 졸업한 두 후배

녹색세상 2013. 7. 24. 05:45

삼성에 들어간 후배


국립사범대를 졸업한 고등학교 동아리 후배가 있다. 둘 다 관악골에서 공부했는데 6년~7년 후배다. 6년 후배는 화학교육과를 다녔다. 자취방에는 늘 비표를 해 놓을 정도로 조직 활동을 치열하게 했다. 책꽂이에 있는 2천 여권 정도 되는 책은 장식용이 아니라 전부 손때가 묻어 읽은 흔적이 역력했다. ‘무식하다’는 소리는 듣지 말아야 한다는 자극을 준 내게는 정말 고마운 동지이기도 하다.


대학 4학년이 ‘운동권 사투리 쓰면 안 된다’고 할 정도였으니 내공이 대단했다. 전두환 정권이 과외금지령을 내렸을 때라 눈감고 비밀과외를 하면 편하게 공부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습에 지장있다’며 피할 정도로 철저했다. 어쩌다 보니 대학원에 가게 되었다. 대학원 가서도 경제학과, 사회학과 원생들과 일주일에 한 번씩 세미나를 했다. 이공계 대학원생이면 전공 공부만도 버거운데 사회과학 공부까지 한다는 건 보통 부지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이왕 시작한 공부 박사과정을 마치라.’고 권했는데 문제는 삼성장학금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당시는 삼성의 해악질에 대해 진보진영이 그리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아 별 생각이 없었다. 건강이 안 좋아 병역 면제를 받았고, 학위를 받고 삼성전자에 입사를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전자에 대해 관심이 많아 어지간한 전자공학 전공자 못지않게 회로도를 읽을 정도라 쉽게 적응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말처럼 삼성에 입사한 후 후배는 거의 연락이 되지 않는 게 아니라 피하고 있다. 아직 근무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었으나 삼성으로 가고 나서부터는 얼굴 못 보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영화 제작을 한 후배


한 후배는 일반사회교육과를 졸업했다. 유명 사립대 산업공학과에 합격했으나 신림동에 가야 한다며 재수를 했다. 애당초 교사를 할 생각이 없어 졸업 후 대우에 입사해 영상사업부에 근무를 하게 되었다. 외환위기 대우가 해체 되면서 같이 근무한 동료들과 영화 관련 일을 시작했다. 간혹 언론에 인터뷰 나올 정도였고, 동문들과 술자리에 있다 보면 연예인들이 와서 인사를 할 정도였다고 하니 그 바닥에서는 잘 나간 모양이다.


상무였으니 지분이 좀 있었던 걸로 아는데 사업이 꼬이기 시작하면서 배운 도둑질이라 연기학원을 했는데 동업한 사람과 송사에 말려 거의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낸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렇다고 다 정리해 다른 걸 하려니 쉽지 않은 모양이다. 몸으로 살아온 게 아니라 마음은 뻔함에도 불구하고 노동을 해야 하는 업종을 선택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이 후배와는 잘 나갈 때 통화 몇 번 하고는 목소리도 듣지 못했다. 삼성 간 후배처럼 젊을 때 공부하도록 자극을 받은 일도 없어 그냥 소문만 들었을 뿐이다. 내가 유명해져 삼성과 마짱이라도 뜨면 삼성있는 후배가 찾아올지 모르나 그럴 가능성은 없고, 영화 일을 한 후배는 너무 잘 나가다 얼마나 추락했는지 초상이 나도 연락을 안 할 정도가 되어 버렸다.


둘 다 교사를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가끔 해 보곤 한다. 특히 삼성 간 후배는 아이들을 좋아하는데다 능력도 있어 뛰어난 활동가가 되어 있어 가끔 얼굴도 보곤 할 텐데....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게 세상살이 인 모양이다. 오늘따라 이 후배들이 보고 싶은 걸 보니 나도 늙어가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