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21살 아들의 초등학교 시절 기억

녹색세상 2012. 8. 27. 10:50

 

올해 21살인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무렵의 일이다. ‘아버지, 누구는 너무 지저분해서 친구들이 모두 놀려요라기에 그럼 너도 그 친구를 같이 놀리느냐?’고 물었더니 녀석이 미안한 표정을 하더군요. “다른 사람들이 다 놀려도 넌 그렇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엄마가 일 하러 다니느라 늦게 와 제대로 못 씻겨 줘서 그런 거 아니니? 앞으로는 집에 데려 와서 씻으라고 하고 같이 목욕도 가라며 용돈을 줬더니 얼굴이 확 밝아지더군요.

 

1주 일 후 아버지, 그 친구 집에 데려와서 씻기고요. 아버지가 준 돈으로 목욕도 같이 갔어요라기에 역시 우리 아들은 멋진 의리의 사나이라며 크게 칭찬을 해 줬습니다. 어린 아이지만 명색이 사내랍시고 의리의 싸나이라 불러주니 기분이 우쭐했던 거죠. 깔끔을 뜨는 어미 아비 때문에 안 씻으면 난리 나니 아무리 흙장난을 치고 와도 씻지 않을 재주가 없었죠. 더구나 씻지 않았을 때의 불이익이 엄청나다는 걸 경험으로 잘 아니까요.

 

그 후 녀석은 지저분하다는 친구와는 물론이요 다른 아이들과도 잘 어울렸고, 한두 살 많은 형아들과도 잘 놀아 아비로서는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더군요. 그렇다고 공부와 관련된 걸 전혀 신경 쓰지 않은 건 아닙니다. 공부를 강요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공부하라는 말은 대 놓고 못하고 주말에 시간이 나면 로봇 만드는 거 연구하는 아저씨들에게 놀러 갈래라며 복현골 공대에서 박사과정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데리고 가 아저씨는 박사님 공부하고 있는데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라고 했죠.

 

아이를 키워 보지 않은 총각들이라 어렵게 말하면 옆에서 쉽게 걸러주면서 그 또래 사내 녀석들이 좋아하는 로봇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 시켜주곤 했습니다. 친구들 만나서 자랑을 했다는 말도 간혹 들었으니 녀석은 우쭐할 수 밖에요. 후배들이 맛있는 것도 사 주는데다, 술자리에 끼워 주곤 했으니 금상첨화죠. 그러면서 돌아올 무렵에 아저씨처럼 로봇 만드는 박사님 공부하려면 책 많이 봐야 한다며 부추겨 아동전용 서점에 데리고 가 책을 사오곤 했습니다. 태풍이 온다고 그런지 오늘은 녀석과 같이 막걸리 한 잔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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