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생태

광화문 물 폭탄은 오세훈의 디자인서울이 안겨준 인재

녹색세상 2010. 9. 24. 17:26

“청계천에 들여다볼 시간에 하수도관 점검부터”

전문가들 ‘대리석 광장ㆍ콘크리트 천 탓’ 비판


대한민국 서울의 심장부 광화문 광장이 폭우로 물에 잠긴 것을 두고 탄식과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추석 연휴 첫날인 지난 21일 서울 한복판인 광화문이 물에 잠겼다. 259.5㎜의 집중호우 탓이었다. 승용차는 수륙양용차처럼 물살을 가르며 힘겹게 광장을 지났고 오가는 시민들은 무릎까지 차오른 물로 보행에 어려움을 겪었다. 시민들은 경악했다. 텔레비전 등을 통해 물에 잠긴 광화문 광장을 지켜본 시민들은 서울의 상징이랄 수 있는 곳이 순식간에 호수로 변했기 때문이다.

 

▲ 지역에 따라 시간당 최고 100㎜의 기습폭우가 쏟아진 지난 21일 오후 물이 차오른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차량들이 바퀴가 물에 잠긴 채 주행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기막힌 현실에 혀를 차며 서울시의 구멍 난 행정을 꾸짖었다. 광화문 앞을 뒤덮은 ‘대리석 공원’과 콘크리트로 물길을 낸 청계천이 만든 ‘인재’라는 지적도 잇따랐다. 서울시는 시간당 100㎜에 가까운 비가 내려 현재 빗물처리 시설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는 점을 광화문 침수의 원인으로 들었다. 하지만, 이전에도 비슷한 양의 비가 내렸지만 지금처럼 광화문이 물에 잠기지는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금처럼 물에 잠긴 예가 한 번도 없었다.


‘민중의 소리’에 따르면 2001년 7월15일 광화문 인근에 273.4mm의 폭우가 쏟아졌으며 0시부터 1시까지 68mm, 1시에서 2시는 52.5mm, 2시에서 3시는 87.5mm, 3시에서 4시는 35.5mm를 기록했지만 광화문이 호수로 변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서울시는 2시19분에서 3시19분 사이에 84mm가 내렸고 1시에서 2시 사이 67.1mm, 2시부터 3시 사이에는 69mm가 내렸다고 밝혔다. ‘민중의 소리’는 광화문 공원 공사와 청계천이 배수 과정에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강르네상스 대신 배수시설 확보부터


디자인서울과 한강르네상스 등 오세훈 시장의 핵심 사업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23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서울 같은 현대적 대도시에서 그런 물난리가 났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겉모습만 보면 세계 어느 나라의 대도시 못지않게 얼마나 번지르르하게 꾸며 놓았는가?”라며 광화문 광장이 물에 잠긴 현실을 개탄했다. 모든 사람이 분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교수는“거의 호수처럼 변해 버린 광화문 네거리를 오고가는 자동차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우선순위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그 살풍경한 광화문 광장을 만든답시고 쏟아 부은 돈은 하수도와 배수시설 정비에 우선적으로 투입되었어야 하는 것 아니었나?”라고 반문했다. 이 교수는 이어 “그동안 서울시가 ‘디자인 서울’이니 ‘한강 르네상스’니 하며 난리법석을 떨어온 것을 생각해 보면 입맛이 더욱 씁쓸하다.”고 밝혔다.

 


“이번의 수해는 내실을 제쳐놓고 겉모양 꾸미기에만 급급해 왔던 서울시의 전시행정이 얼마나 허황된 것이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청계천에 무슨 물고기가 살고 있는지 들여다보고 있을 시간에 바로 그 옆을 지나는 하수도관의 상태를 점검했어야 하는 게 아니었느냐고 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도시전문가인 김진애 민주당 의원은 광화문 수해가 기록적인 폭우 탓이며 광화문 광장 단장이나 청계천 공사와는 무관하다는 일부 언론의 분석을 비판했다.


그는 23일 밤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103년 만의 강수량 운운하며 제발 이 중대한 사안에 그리 미리 재단하지도 포장하지도 말기를!”이라고 쓴 소리를 던졌다. 한편, 광화문 광장 침수 피해는 주변에도 미쳤다. 지난 8월 거액을 들여 리모델링을 마친 교보문고는 천장에서 빗물이 새는 바람에 책장에 비닐 막을 덮어 책을 보호해야 했다. 특히 인문사회과학 코너에선 서가의 책을 빼내고 5~6시간 동안 물기제거 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광화문 광장 초입에서 12년째 약국을 운영한다는 한 시민은 물에 젖은 약을 말리며 정부를 원망했다. 그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청와대가 지척이고 과거 임금들도 살았던 광화문이 이렇게 물에 잠기다니 보기 좋게 배신당한 것”이라며 “광화문 광장과 청계천 공사 후 물이 빠지지 않는 현상이 더욱 심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언뜻 눈에 보이는 디자인서울과 한강르네상스 사업과 같이 겉만 번지러한 것은 걷어치우고 배수시설부터 먼저 갖추어야 한다. (한겨레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