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밤에 자전거로 읍내까지 장 보러 갖다온 사연

녹색세상 2010. 5. 15. 11:04

 

일과를 마치고 냉장고를 열어 보니 텅텅 비어 썰렁했습니다. 아침은 커녕 당장 먹을 게 없으니 눈 앞이 캄캄해지더군요. 대충 저녁을 때우고 자전거로 군위읍내까지 장 보러 갔습니다. 평소 자전거로 다니는 길이지만 밤이라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습니다. 자전거 후미등을 부착하고 야광조끼까지 입었지만 사고가 나면 낮 보다 더 위험하죠. 하루 미루어 낮에 갖다 올 걸 괜히 나섰나 싶은 후회가 들지 않은 게 아니지만 이왕 나선 길 ‘갖다 오자’며 페달을 밟았습니다.

 


낮에는 주위를 보면서 거리 감각을 느낄 수 있는데 밤이니 어디까지 왔는지 도통 알 수가 없더군요. 가파른 재를 하나 넘고 언덕 길까지 포함하면 3개나 넘어야 하는 제법 땀을 흘려야 하는 길입니다. 시골길이라 잘못하면 바로 하천으로 추락할 위험도 있어 신경이 더 쓰입니다. 이렇게 힘든 걸 왜 나섰는지 후회막급이지만 이미 자전거는 읍내 가까이 다 왔습니다. 평소 장을 보는 마트는 끝자락에 있어 더 가야 합니다.


20킬로미터를 야간에 달리니 잔뜩 긴장을 해 낮보다 3배는 더 힘든 것 같아 저녁 먹은 배는 다 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적어간 걸 챙긴 후 막걸리 한 병을 덤으로 챙겼습니다. 밤에 자전거 타고 멀리서 왔다고 하니 놀라더군요. 생긴 게 벽면서생 같아서 그런지 자전거로 달려 왔다는 걸 의아해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막걸리로 허기 진 배를 추스른 후 집을 향해 달렸습니다. 배가 든든하자 페달을 밟는 게 한결 수월하더군요. 올 때 보다는 조금 나은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밤길이 험하긴 마찬가지라 긴장을 늦출 수 없지요. 면소재지를 지나면서 잠시 쉬면서 목도 축이고 땀도 닦았습니다. 남은 거리는 8킬로미터 밖에 안 되니 여유를 갖질 수 있어 다행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전조등이 꺼져 버렸습니다. 일회용이 아닌 충전용 건전지를 사용하느라 평소에 상태를 점검하는데 오늘은 깜박 해 버렸습니다. 밤중에 가로등도 하나 없는 시골 길을 달려야 하니 정말 눈 앞이 캄캄해지더군요.


그런데 잠시 가다보니 희미하게 불이 들어와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언제 꺼질 지 모를 정도로 약해 부지런히 페달을 밟았습니다. 최대한 빨리 집으로 가는 것 말고는 다른 해결책이 없으니까요. 무릎보호대를 착용한 탓에 조금 무리하게 밟았습니다. 마지막 언덕을 넘으니 ‘이제 다 왔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냉장고가 비도록 신경 쓰지 않은 탓에 한 밤 중에 자전거질을 했습니다. 덕분에 온 몸은 땀으로 젖어 기분은 좋으나 너무 위험해 다시는 미련한 짓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