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제

천안함 사고로 ‘한명숙 죽이기’는 묻혀가나?

녹색세상 2010. 4. 1. 22:49

한명숙 전 총리 진술거부권 행사

재판부는 사실상 변호인 쪽이 낸 절충안 선택


누가 뭐라 해도 한명숙은 다가 올 지방선거에 가장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임을 부정할 수 없다. 오래도록 준비를 해 온 민주당의 다른 후보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이명박 정권의 사냥개인 검찰이 지나칠 정도로 선거운동을 해 준 덕분이기도 하다. 가만히 두었으면 당내 경선과정에서 치열하게 공방이 오갔을 텐데 과잉 충성한 검찰 때문에 다른 후보들과 격차를 너무 많이 벌려 놓은 게 사실이다. 이대로 가면 지방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참패는 강 건너 불 보듯 뻔하다.

 

▲ 한명숙 전 국무총리(왼쪽)가 4월 1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진술거부권을 둘러싼 갈등 속에 다시 열리는 재판에 참석하려고 자신의 변론을 맡은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과 함께 법정으로 가고 있다. (사진: 한겨레신문)


이런 와중에 지방 선거의 여론을 단 숨에 잠재우는 호재가 등장해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은 박수를 치고 있을지 모른다. 천안함 침몰 사고다. 중학생이 봐도 첨단 장비로 무장한 ‘대양 해군’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초기 대응이 엉성하기 그지없다. 뿐만 아니라 사고 발생 시간도 수시로 바뀐다. 어느 조직보다 ‘신속정확’을 생명으로 하는 군대가 이렇게 말을 바꾸는 경우는 지금까지 처음 본다. 이 사고로 한나라당 심판의 상징인 ‘한명숙 마녀사냥’이 묻히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재판 와중에서 진술 거부권을 둘러싼 검찰과 변호인의 견해차로 이틀 동안 휴정과 개정을 거듭하던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피고인 신문이 4월 1일 오후가 돼서야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전날 한명숙은 재판부에 ‘검찰이 하는 신문을 거부하겠다’며 법에서 보장한 ‘진술거부권 행사를 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그럼에도 검찰은 ‘총리까지 역임한 사람이 신문을 거부한다’며 언론에 흘리는 등 여론몰이에 나서는 등 과민한 반응을 보였다.


양쪽의 팽팽한 주장을 듣고 나서 재판부는 변호인 쪽이 제시한 “검찰의 신문사항을 변호인이 먼저 본 뒤 의견을 내면, 재판부가 검토해 신문에 반영하겠다”는 절충안을 택했다. 검찰은 이날 오전부터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전날과 마찬가지로 “피고인이 답변하지 않아도 검찰은 신문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검찰은 이날 재판부에 일본 고등법원 판례와 형사소송법 개정 전 정부안 등을 참고 자료로 제출하며 “재판부의 소송 지휘권으로 검찰의 신문권 전부를 제한할 수는 없다”고 항의했다.

 

 


유시민과 대조적인 변호사 강금실의 탁월한 연출 솜씨


이처럼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재판부는 이날 오후 새로운 ‘절충안’을 제시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신문에서 진술을 강요하고 답변을 유도하거나 위압적ㆍ모욕적 신문을 해선 안 된다’고 적시한 ‘형사소송법 시행규칙’을 들어 “검찰의 피고인 신문이 저 조항에 해당되지 않게 양쪽이 사전에 검찰의 신문 사항을 협의하라”고 당연한 제안을 했다. 생명 앞에 다른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우리네 정서와 맞지 않을 뿐 아니라 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님에 분명하다.


그렇지만 천안함 침몰 사고로 인해 마녀사냥을 하듯이 한명숙 죽이기에 들어간 검찰의 행태가 묻혀서는 안 된다. 재판 중임에도 불구하고 경호를 담당했던 현직 경찰관에게 ‘위증죄’로 고소하겠다는 압박까지 가하는 등 파렴치한 짓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이런 검찰의 치사한 짓은 비난을 자초한 것임에 분명하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해 뜨는 새벽이 온다’는 건 상식이다. 이명박 정권이 강산이 변하도록 집권할 줄 착각한 검찰은 꿈을 깨야 한다.


재판 과정에서 강금실 전 법무장관이 변호사로 화려한 연출을 했다. ‘전국적인 방물장수’로 지방선거 판을 크게 만들 줄 알았던 유시민은 한 방에 찌그러지고 말았다. 법원에 들어가면서 마치 큰 언니의 팔짱을 끼듯이 자연스런 모습을 취한 강금실의 솜씨는 탁월했다. 4년 전 지방선거에서 질 줄 알면서도 뛰어들었고, 총선에서는 비례후보까지 포기하면서 뛰었다. 비록 사진 한 장이지만 ‘대구에서 뼈를 묻겠다’고 호언장담한 유시민과 너무 대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