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이 화려하게 부활시킨 국회의원 사찰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정부기관의 사찰이 있었다는 주장에 대해 이런 반응이 적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박 전 대표 하면 야당이 아닌 여당의 차기 최고 유력주자이다. 여권 내에서는 그의 차기 집권을 확신하는 사람이 많을 만큼, 박 전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 다음가는 여권의 실세이다. 그런데 아무리 세종시 문제로 이 대통령 측과 관계가 안 좋아졌다고 해도, 설마 사찰까지야 했겠는가 하는 반응도 있다. 이명박과 박근혜의 사활을 건 싸움이 그만큼 치열하다는 증거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공개한 친박 의원들의 말을 들으면 사안이 그렇게 단순해 보이지 않는다. 처음 얘기를 꺼낸 이성헌 의원 하면 박 전 대표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가 밝힌 바에 따르면 박 전 대표와 식사를 같이한 스님에게 정부기관에서 찾아와 어떤 얘기를 함께 나누었는지 꼬치꼬치 캐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님이 “왜 만난다는 사실을 정부기관에 얘기했느냐”고 이성헌 의원에게 항의했다고 한다. 물론 이성헌 의원은 그런 얘기를 정부기관에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 의원은 “이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이성헌 의원의 말이 알려진 이후 유정복 의원도 입을 열었다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대해 정말 걱정”이라고. 이성헌 의원의 말을 뒷받침하는 말로 받아들여졌다. 유정복 의원 하면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최측근 인물이다. 두 측근 인사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이런 민감한 내용을 공개했으리라 생각하기는 어렵다. 아마도 친박 진영 내부에서는 이 문제를 상당히 심각하게 받아들였기에 이런 대응이 나온 것 아닌가 판단된다.
이들 뿐만 아니었다. 같은 친박 진영의 중진인 홍사덕 의원은 친박 의원들에 대한 뒷조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가 이를 부인하자, 자신이 확보하고 있는 내용을 공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홍 의원은 한나라당 내에서도 합리적인 중진의원으로 꼽힌다. 지저분한 짓은 안 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 역시 구체적인 근거 없이 그런 말을 흑색 선전식으로 했으리라고 믿어지지는 않는다. 반면 청와대는 아무리 아니라고 펄쩍 뛰어도 의심을 받게 되어있다.
정보기관의 사찰은 이명박 정권이 약하다는 증거
현 정부 들어 그동안 여러 정보기관의 사찰의혹이 제기되어왔지만. 청와대는 아무런 진상조사도 하지 않고 책임도 묻지 않고 그냥 지나가곤 했다. 박원순 변호사가 공개했던 일도, 이정희 의원이 공개했던 일도 모두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지나갔다. 이명박 정부가 사실상 정보기관의 정치사찰을 묵인한다는, 어쩌면 그것을 원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그런 정부 아래에서 다시 세종시 수정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에 대한 사찰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주장이 새삼스럽게 들리지는 않는다. 다만 그 대상에 박근혜 전 대표를 비롯한 한나라당 의원들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까지 뒷걸음질 친 것인가.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국정원이 도청을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노무현 정부 때 관련자들이 구속되는 일이 있었다. 그 소동이 있은 이후에는 정보기관의 정치사찰은 이제는 감히 하지 못할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정보기관장의 독대 보고는 받지 않았다. 그러나 다시 정권이 바뀌면서 정치사찰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정권 담당자들은 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정치 사찰로 장기집권은 불가능
노무현 정부 시절에 이런 사찰의혹이 제기되었다면 난리가 났을 조중동도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의 사찰의혹에 대해서는 관용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친박 의원들이 제기한 사찰의혹에 대해서는 철저한 진상규명이 이루어져야 한다. 여당 정치인에 대해서도 그런 사찰이 이루어진다면, 야당에 대해서는, 그리고 힘없는 반대세력에 대해서는 오죽하겠는가. 청와대는 사찰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언제 한번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하고서 그런 결론을 내린 적이 있었던가.
청와대는 차제에 정치사찰의 실태를 철저히 조사하고 그러한 행위를 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청와대가 그런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 일은 국민과 역사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가 스스로 이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몇 년 뒤 정권을 내놓은 뒤 정치사찰에 관련된 자, 그리고 그것을 묵인하거나 보고를 받은 자들은 모두 수사와 처벌을 면할 수가 없을 것이다. 앞날이 뻔한 일이다.
독재정권의 유물인 정치사찰을 부활시키고서도 훗날 아무 탈이 없으리라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세종시를 풍선으로 띄워 개헌이란 꼼수를 감추려고 별 짓을 다해도 이명박 정권은 오래가지 못 한다. 4대강 삽질은 이미 곳곳에서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박근혜까지 뒤지는 것은 국정 장악에 자신이 없다는 증거다. 그럴수록 정권은 짧고 심판은 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런 광경을 지켜봐야 하는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박근혜도 사찰당하는 더러운 세상”이란 소리가 나온다. (유창선 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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