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갈등 ‘강도론’ 충돌 뒤 전면전
청와대가 11일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집안 내 강도론’ 발언과 관련해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했다. 박 전 대표의 발언이 도를 넘어섰다는 것이 이명박의 입인 이동관의 판단이다. 이는 곧 이명박의 생각이기도 하다.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은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날 브리핑에서 “대통령 폄하 발언에 대해 적절한 해명과 공식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며 사과를 요구했다. 잘못했으면 사과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 수석은 이번 사태를 ‘박근혜 전 대표의 실언파문’이라고 규정했다. 화합을 강조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을 박 전대표가 곡해해 대통령을 폄하했다는 것이다. 주군인 이명박의 실수나 잘못은 없고 박근혜의 잘못만 나무라는 어이없는 요구에 할 말을 잊는다. 청와대가 박 전 대표를 공식적으로 비난한 것은 새 정부 출범 이후 사실상 처음이다. 새 정부 출범 후 친이계와 친박계 간 갈등은 계속됐지만 이번처럼 박 전 대표에게 사과를 요구한 적은 없다.
청와대가 이처럼 강공입장을 택한 것은 세종시 수정안을 놓고 정쟁만 되풀이되는 상황을 그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박 전 대표의 발언과 관련해 해명만 하다가는 이 대통령의 잘못된 발언 때문에 이번 사태가 빚어진 것으로 오해를 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또한 친박계의 부적절한 발언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의도도 담겨 있다. 이는 최후의 승부까지 고려하고 있음을 내비치는 것이다.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충북지역 업무보고(9일, 충북도청)를 받고 “세종시가 들어서 과학비지니스벨트가 형성되면 충북이 가장 큰 수혜 지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사진: 청와대 홈페이지)
이와 관련해 박 전 대표는 이에 대해 “말이 문제가 있다면, 있는 대로 처리하면 될 것 아니냐”며 불쾌감을 표시했다고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이 전했다. 이 의원은 “청와대가 이명박 대통령의 ‘강도 발언’에 대해 박 전 대표를 겨냥한 게 아니라고 얘기했듯, 우리도 어제 분명하게 ‘특정인을 겨냥한 게 아니다’라고 해명하지 않았느냐”며 “박 전 대표가 과연 무슨 사과를 할 만한 잘못된 말을 했느냐”고 반박했다.
청와대가 유력한 차기 주자인 여당의 전직 대표에게 사과와 해명을 요구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로, 향후 세종시 수정을 두고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갈등이 전면적인 권력투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크다. 청와대는 박 전 대표의 ‘강도론’ 발언과 관련해, 전날 “박 전 대표의 오해”라며 서둘러 파문 확산을 경계하는 태도였으나, 하루 만에 정면 맞대응 쪽으로 자세를 틀었다. 이 수석은 이날 “우리는 사리와 도리를 갖고 얘기한 것인데 감정적으로 대응하니 안타깝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친박계는 “적반하장”이라며 반격했다.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 격인 유정복 의원은 “박 전 대표의 어제 발언은 국민이나 충청도민이 세종시 원안을 수정해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정부와 총리가 나서 수정안 관철에 총력전을 벌이며 대국민 약속을 뒤집는 상황에 대해 국민에게 면목없고 죄송하다고 사과한 게 핵심”이라며 “청와대 홍보수석이 (전 당대표에 대한 예우를 무시하고) ‘박근혜 의원’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하며 새삼스런 반응을 보이니 참으로 난감하다”고 말했다.
이 수석은 이날 브리핑에서 ‘박근혜 전 대표’라는 표현 대신 ‘박근혜 의원’이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썼다. 그만큼 청와대가 격앙돼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청와대는 또 박 전 대표의 정치 지도자 자질 문제도 거론했다. 노무현 정권의 잘못된 유산이 세종시인데, 박 전 대표가 원안 고수를 주장하는 것은 지도자로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 때 세종시 약속을 분명히 해 놓고는 뒤집는 이명박의 자질은 괜찮은지 모르겠다. 가히 그 주인에 그 머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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