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제

세종시 문제로 불거진 이명박ㆍ박근혜의 한판 싸움

녹색세상 2010. 1. 31. 13:35

친이계 ‘우려감’ 전달한다며 ‘분당 언급 

친박계 ‘우린 말한 적 없다…부추기느냐’며 반박


세종시 문제로 내분 직전까지 간 한나라당에서 ‘분당’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소속 의원들의 언론 인터뷰뿐만 아니라 공식회의 자리에서도 금기 ‘분당’이 나왔다. ‘친이-친박’이 세종시 문제로 퇴로 없는 한판 진검승부를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한 지붕 두 가족’이 갈라설 수 있다는 이야기가 거론되고 있다. “한나라당이 분당해야 한다”고 공언하는 이는 없다.“이렇게 양보 없이 싸우다가는 갈라설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기 위해 분당을 꺼낸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당 지도부의 “입 밖으로 내서는 안 될 마지막 단어는 금기로 간직하라”(장광근)는 주문에도 ‘분당’이라는 말이 여권 내 돌고 있다. 특히 분당 발언을 확대 재생산하는 데는 언론의 역할이 적지 않다. 기다렸다는 듯 ‘분당’ 발언을 예리하게 집어냈다. 일부 언론은 “사정이 이렇다면 당당하게 갈라서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문화일보)”라며 분당을 부채질 하고 있다. 한나라당 내 분당 발´이 논란으로 확대된 것은 지난 27일 최고중진연석회의 박희태 전 대표의 발언에서 부터다.


“분당 분당 누가 말했나. 바보들의 이야기라고.”


언론은 이날 박 전 대표의 분당발언을 집중 조명했다. 박 전 대표는 “나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는데, 항간에는 ‘우리당이 깨질 것이다’, ‘분당 될 것이다’는 이야기가 상당히 퍼져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이것을 그냥 보고 지난다는 것은 상당히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우리가 이렇게 불안한 상태의 모습을 보인다면 많은 국민들이 우리 곁을 떠날 것”이라며 “이런 시기에 우리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정신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당대표를 지낸 중진의원으로서 당 화합을 강조한 발언이지만, 위험한 단어를 택한 것이다. 즉각 친박계의 반박이 이어졌다. 친박은 분당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오히려 분당이란 단어를 꺼낸 사람들을 겨냥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허태열 최고위원은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서 몇몇 분이 입에 담아서 안 될 이야기를 하고, 또 국민들도 당이 매우 어지러운 모습 보이고 있기 때문에 우리를 지지하는 많은 국민들이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허 최고위원은 이어 “한나라당은 탄핵 역풍에 천막깃발 아래의 어려운 여건에서도 일치단결해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면서 “어떤 경우에도 당이 파국을 맞는 결과는 없을 것”이라고 분당설을 일축했다. 같은 친박 성향의 박종근 의원도 “방금 박희태 전 대표의 말이 있었는데, 당이 일치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에 대해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한 뒤 “당내에도 첨예한 의견대립이 있는 데다 야당은 결사적으로 반대투쟁을 전개하는 상황에서 세종시 수정안을 밀어붙일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정부와 친이계를 겨냥했다.


“대선부터 이어진 분당론에 면역생긴 한나라당”


친이도 친박도 분당설에 대해 물으면 손사래를 친다. 실제 분당이 이뤄질 가능성도 낮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두 세력이 분열할 경우 양쪽 모두에게 득보다는 실이 크기 때문이다. 분당의 정치적 명분은 물론, 분당 이후 정치적 진로도 친이-친박 진영 모두에 유리하지 않다. 더욱이 먼저 분당을 꺼낸 진영에 ‘분열의 장본인’이라는 낙인이 찍힐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친이계 의원들 사이에서는 분당이란 표현이 공개적으로 거론됐다. 그렇다고 ‘분당하자’는 것은 아니다.


“세종시 문제로 이대로 가다가는 위험한 상황이 오지 말란 법 없다”는 경고에 ‘분당’을 녹였다. 분당의 위험을 거론하면서 동시에 박 전 대표의 세종시 원안 고수를 겨냥하는 것이 최근 친이계 공세의 논조다. 분당의 조짐이 도사리고 있다는 게 곳곳에서 드러난다. 세종시 논란과 관련, 인터뷰에서 분당을 처음으로 언급한 홍준표 의원도 “어느 집단에서 자기 소신만 내세우면 혼자 탈당하고 나가서 당을 만들어야 된다”고 말했다.

 


홍 의원은 이어 “당론이라는 게 있고, 당 전체 의견이라는 게 있는데 내 소신만 중요하고 남의 대다수의 소신을 접으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독불장군”이라고 박 전 대표를 비판했다. 박희태 전 대표의 논조도 마찬가지. 지난 27일 회의에서 ´분당 위험´을 거론한 뒤 화합을 당부했다. 화합을 주문한 주요대상에는 박근혜 전 대표도 포함된다. 반면, 친박 쪽에서는 ´분당´이란 단어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절대 분당은 없다”는 강한 어조다. 동시에 지난 ‘2004년 탄핵, 차떼기 정국’에서 한나라당을 살린 박 전 대표의 공로를 강조하며 ‘주인의식’을 강하게 표출했다.


이정현 의원은 “친이와 주류라는 분들이 분당이나 ‘누구 나가라’는 말를 하면 안 된다”면서 “2004년에 당이 완전히 죽어가던 절박한 시절에 박 전 대표가 국민 앞에서 108배를 하고, 방송에 나와서 눈물로 호소했다. 이런 애절한 호소를 자기들이 해봤는가. 이렇게 살려놓은 당인데 박 전 대표 보고 나가라는 식으로 하면 되는가. 한마디로 배은망덕”이라고 말했다. 유정복 의원도 “분당은 생각해본 적 없다”면서 “박 전 대표는 탄핵과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으로 사라질 뻔 했던 당을 살려 냈고, 당을 세우신 분인데, 어찌 분당을 생각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친이-친박이 서로 다른 논리로 분당을 말하고 있지만, 서로를 겨냥한 감정싸움의 소재인 것만은 분명하다. “세종시 싸움에서 밀리면 차기대선 경쟁도 밀린다”는 양 계파 간 절박함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당내 일각에서는 세종시 문제로 “주류 측이 비주류를 밀어내려는 계획에 착수했다”, “세종시 수정안 당론 채택 후 친박계 당론반대에 출당” 등 분당을 둘러싼 각종 시나리오가 나돌고 있다. 일부 의원이 특정계파를 겨냥해 분당설을 의도적으로 흘리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이와 관련, 여권 한 관계자는 기자들과 사석에서 “일부 의원들이 세종시 싸움에서 ´분당´을 거론하며 격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면서 “양 계파 모두 험악한 분위기를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대선경선 이후 계속된 분당얘기에 이제 면역이 생겨서 쉽게 꺼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양쪽 모두 벌써부터 당내 대권경쟁이 시작되는 것은 원치 않는 눈치이지만, 오히려 세종시 싸움으로 대권경쟁의 구도가 명확해진 형국이다.


그럴수록 친이-친박은 사활을 간 한판 싸움이 불가피하다. 더욱이 세종시법 개정안이 구체적인 입법절차에 들어감에 따라 양 계파 간 싸움의 강도도 격상 될 조짐이 곳곳에 포착되고 있다. 그만큼 분당론도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반복되는 자극에 무감각해 지면, 행동에 옮기는 다음 단계에 돌입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게 권력의 속성이다. 이명박과 박근혜 계보의 치열한 권력 싸움의 초읽기에 들어간 것은 숙명인지 모른다. (데일리안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