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에서 사람들은 시장 가격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거래를 한다. 그런데 만약 시장가격 정보 자체가 부실 투성이고 심지어 의도적 가격 왜곡과 조작이 난무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도 한두 푼짜리도 아니고 가계 전 재산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큰 주택 가격부터가 그렇다면 납득이 될까?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것은 현실이다. 현재 일반인들은 보통 사설 부동산정보업체들이 제공하는 각종 부동산 가격이나 이를 토대로 언론이 보도하는 주택 가격을 시세라고 생각한다.
▲ 부동산 중개업소들이 거래가 끊겼는데도 호가를 올리기도 한다. 이를 바탕으로 사설 부동산정보업체들은 사실상 조작에 가까운 통계자료를 내고 이를 상당수 언론이 그대로 보도하는 양상은 되풀이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그러면 정확한 시세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현재는 각 지자체들에 신고된 실제 거래내역을 국토해양부가 집계해 발표하는 국토부 실거래가 자료가 주택시장 상황을 가장 정확히 보여주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신고일이 주택거래 이후 60일까지여서 자료 입력이 늦고, ‘상승계약’이나 ‘하향계약’ 사례가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문제 소지가 있다. (하지만 실거래가의 평균치 추이를 보면 이 같은 사례에 의해 왜곡되는 정도는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김광수경제연구소’는 2009년 국내 부동산시장을 분석하면서 기초 지자체별로 실거래가 추이를 살펴보았다. 기초 지자체별로 1000세대 이상 대규모 아파트 가운데 그 지역 주택시장상황을 잘 나타낼 수 있는 아파트 단지의 월별 실거래가 추이를 평형별 평균가격으로 살펴본 것이다. 분석 결과를 보면 국민은행이나 사설 부동산 정보업체들이 발표하는 주택 가격이 얼마나 허구에 가까운지 여실히 파악할 수 있다.
실거래가 큰 폭 하락, 부동산정보업체 가격은 왜 완만한 하락세일까?
우선, 서울 대부분 지역과 경기 남부 및 주요 신도시 지역 등은 대부분 2006년 말, 수도권 외곽과 인천 등에서는 2008년 상반기에 고점을 찍은 뒤 2009년 초까지 꾸준히 하락세를 보였다. 그 하락폭은 아래 표(서울 주요 아파트단지의 가격 하락률 비교)에서 보는 것처럼 아파트 단지별로 차이가 있지만, 20~40%씩 큰 폭으로 하락한 경우가 많았다. 이는 명목가격으로 같은 기간의 물가 상승 수준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로는 더 큰 폭으로 떨어졌다고 할 수 있다.
▲ 서울 주요 아파트 단지의 하락률 변동 비교 서울 주요 아파트 단지의 실거래가 추이를 보면 2008년 말~2009년 초 고점 대비 20~30% 전후까지 떨어졌으나 해당 지역의 국민은행 호가지수는 이 같은 급락세가 거의 나타나고 있지 않다. (위 언급된 아파트 면적은 전용면적. 단위는 제곱미터)
이는 2006년 말까지 수도권 아파트 가격이 폭등한 뒤 추가 매수세가 뚝 끊어지자 빚을 많이 진 매도자들부터 집을 내놓으면서 실거래가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중대형 아파트들의 경우 단기간에 가격이 너무 올라 거래가 거의 끊어질 지경이어서 빚을 잔뜩 낸 가계들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매물을 토해냈다. 이렇게 실거래가가 큰 폭으로 하락하는데도 부동산 중개업소가 불러주는 호가 위주로 작성된 국민은행 가격지수와 사기적 허수에 가까운 부동산정보업체 가격은 완만한 하락세를 나타낸 정도에 그쳤다.
표에서 실거래가 고점 대비 하락률과 해당 지역의 국민은행 가격지수 하락률의 차이가 이 같은 양상을 잘 나타낸다. 실거래가는 큰 폭으로 하락했는데도 지역 주민들과 부동산중개업소들이 결탁해 호가로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2008년 10월 서울 상계동의 한 아파트 79m²(분양면적)형은 2억4000만 원에 현장에 매물로 나와 있지만, 국민은행 시세 하한가는 3억1000만 원으로 돼 있었다. 또 비슷한 시기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한 아파트 106m²형은 급매 물건 가격이 6억5000만 원이었지만, 국민은행 주택 통계 사이트에서는 상한가 9억 원, 하한가가 8억 원에 올라와 있었다.
또 2008년 10월 경기도 수원시 매탄동의 한 아파트 106m²형의 경우 현장 시세 3억5000만 원에도 매수세가 없었지만, 한 사설 부동산업체의 인터넷 사이트에는 하한가가 4억원으로 잡혀 있었다. 가격을 낮춘 매물이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시점이었다는 점을 감안해도 그 괴리가 너무 과도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실거래가가 계속 하락하는 상황에서도 2006년말 이후 계속 호가 거품을 지탱하고 있었던 것이다. 2008년말과 같은 집값 급락기만큼은 아니지만 최근에도 실거래가와 부동산 정보업체의 호가 사이에는 상당히 큰 차이가 있다.
지역이나 면적형별로 다르지만 그 차이가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이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은평뉴타운 1지구 12단지 85㎡(전용면적, 이하 전용면적)형의 경우 국토부 실거래가는 2009년 10월에 4억 원에 거래가 이뤄진 뒤 거래가 끊어졌다. 하지만 한 부동산 정보업체의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 있는 이 평형의 최저가는 5억5천만 원, 최고가는 6억 원으로 게재돼 있다. 최근 주택시장 흐름을 보자면 해당 아파트 가격은 2009년 10월에 거래된 4억 원보다 오히려 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부동산 정보업체는 실거래가보다 1억5천만~2억 원 가량이나 더 높은 호가를 게재하는 셈이다. 같은 은평뉴타운 1지구 1단지 85㎡형의 경우도 2009년 11월에 4억 원에 거래된 뒤 거래가 사라졌다. 그런데도 부동산 정보업체에 게재된 가격은 5억2천만~6억 원 선이다. 은평뉴타운 1지구 13단지 102㎡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009년 12월 실거래가는 4억9천만 원에 그쳤지만, 부동산 정보업체에는 6억3천만~6억8천만 원으로 등록돼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른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 삼성래미안 1차 아파트 60㎡형의 경우 2009년 12월에 3억9천만 원에 거래된 사례가 단 한 건 있었지만 부동산정보업체의 가격은 4억~4억2천만 원에 게재돼 있다. 또 같은 아파트 115㎡형은 2009년 11월 단 한 건이 7억4800만 원에 계약됐지만, 부동상 정보업체에 게재된 가격은 7억8천만~8억 원에 게재돼 있다. 경기도 용인시 마북동 삼거마을 삼성래미안1차 135㎡형의 경우 2009년 10월 5억3천만 원에 거래된 뒤 거래가 끊겼지만, 부동산 정보업체 사이트에는 같은 평형의 거래가가 5억7천만~6억3천만 원으로 잡혀 있었다.
또 경기도 고양시 화정동 은빛마을 6단지 104㎡형은 4억800만 원, 133㎡형은 5억6200만 원에 각각 한 건씩 거래됐다. 165㎡평의 경우 11월에 5억8500억 원에 거래됐다. 하지만 부동산 정보업체의 가격은 순서대로 각각 4억2천만~5억5000만 원, 5억5천만~7억 원, 6억8천만~8억 원으로 잡혀 있다. 실제 거래가격이 부동산 정보업체 호가의 하한선 수준이거나 하한선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허다한 셈이다. 그 괴리가 심한 경우 호가와 실거래가의 괴리가 1억~2억 원씩 벌어지기도 한다.
이처럼 부동산 중개업소와 이들의 가격 보고를 게재하는 정보업체들의 가격 조작과 선동은 거의 일상화되다시피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부 부동산정보업체는 2009년 5월부터 송파구 잠실동 주공5단지의 경우 2006년 고점을 회복했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해당 단지의 실거래가는 여전히 고점 대비 14% 하락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일부 언론은 이 같은 부동산정보업체의 호가를 마치 시세인 양 기정사실화해 선동하기 바빴다.
그뿐만 아니라 2009년 3~9월 사이의 반등세에도 불구하고 서울 대부분 지역의 아파트 단지들은 여전히 고점 대비 10~30% 하락한 상태다. 그나마 서울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경기도에서는 가격 반등세가 서울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김광수경제연구소가 수도권 핵심 지역의 실거래가를 조사해 본 바에 따르면 실거래가가 이미 고점 대비 20~30% 가량은 떨어져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도 호가 위주의 국민은행 가격지수는 여전히 2006년 고점에 육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몇 달 동안 거래 한 건 못한 부동산중개업소, 조작 통계자료
이처럼 실거래가와 부동산 정보업체들을 중심으로 쏟아내는 호가 사이에는 이미 매우 큰 괴리가 있다. 더구나 2007년 이후 추가 매수세가 급감하면서 잠재적 매도자들과 부동산 중개업소 등이 결탁해 호가를 억지로 높여 부르고 있어 실거래가와 호가의 괴리는 갈수록 커지는 양상이다. 서울 등 수도권 상당수 지역에서는 지금 같은 거래 빙하기에도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호가를 올리고 있다. 실제로 서울 양천구 목동의 경우 부동산 중개업소들이 몇 달 동안 거래 한 건 하지 못할 정도로 거래가 끊겼는데도, 목동신시가지 재건축 이슈를 들어 호가를 올리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이를 바탕으로 사설 부동산정보업체들은 사실상 조작에 가까운 통계자료를 내고 이를 상당수 언론이 그대로 보도하는 양상은 되풀이되고 있다. 이처럼 왜곡된 보도와 정보가 난무하는 근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자산시장에서 부동산가격이 결정되는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이다. 국내 주택 전체 재고를 약 1300만호로 잡고, 한 가구당 1억 원만 쳐도 총액이 1300조 원이다. 그런데 전국 아파트 거래물량은 2006년 112만5천 호, 2007년 84만 호 수준이다. 계산의 편의상 연간 100만호 가량이 거래된다고 가정하면 전체 주택 재고의 약 7.7%가 거래되고 있는 것이다.
일부 경제적 이해가 부족한 부동산 재테크 전문가는 “일부 빚을 많이 진 사람들이 집을 싸게 내놔도 대부분 사람들은 집을 보유하기 때문에 집값은 안 떨어진다”는 황당한 주장마저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일부의 주식물량이 거래돼 전체 주가가 오르내리는 주식시장과 마찬가지로 7.7%의 주택 물량이 거래되면서 전체 1300조원에 이르는 주택의 자산 가격이 함께 오르내리게 되는 것이다. 특히 미국이나 유럽처럼 단독주택의 비중이 높고 주택유형이 다양한 경우와 달리 한국의 경우 이런 특성이 훨씬 더 심하다.
한국의 경우 2000년대 이후 부동산 투기가 대부분 아파트를 위주로 일어났고, 시세도 아파트 단지별로 표준화, 획일화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치동 은마아파트 77㎡형, 분당구 서현동 삼성아파트 134㎡형처럼 같은 지역의 같은 규모 아파트 별로 부동산도 주식처럼 종목별 시세가 형성되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층별이나 조망권 여부 등에 따라 일정한 편차가 있지만, 큰 틀에서는 이렇게 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동산 가격은 일부 주택 물량이 거래돼 전체 주택의 가격이 사실상 결정된다.
이런 점에서 2008년 말 서울 강남 등 ‘버블 세븐’ 지역에서 30~40% 이상 가격이 떨어진 것은 정상적인 시장 가격이었다. 매도자 입장에서는 그 가격대 이상으로는 주택을 아무리 팔고 싶어도 팔 수 없는 게 부동산 시장의 냉엄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이런 원리에 따르면 상당수 부동산 정보업체들이 제시하는 과도한 호가는 결코 정상적인 시장거래가격이 아니다. 아무리 잠재적 매도자가 가격을 많이 받고 싶다고 하더라도 사줄 수요자가 없다면 그것은 시장 가격이 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잠재적 매수자와 매도자가 서로 다른 기대가격을 갖고 있는데, 언론이 잠재적 매도자의 호가를 시장 거래가격처럼 보도하는 것은 조작에 가깝다. 다분히 사람들의 불안 심리를 부추겨 추격매수를 하게 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선동형 기사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선동기사가 난무하다 보니 매도자와 매수자간 기대가격이 너무 크게 벌어져 더 이상 거래가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빚을 잔뜩 지고 근근이 버티던 잠재적 매도자들은 언론의 선동보도에 헛바람이 들어 호가를 올렸다.
잠재적 매수자는 가뜩이나 경기도 불투명한데 터무니없는 가격에 집을 사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러다 보니 집을 팔려는 사람은 몇 달이 넘도록 집을 내놔도 집을 팔 수 없는 현상이 수도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현재의 호가 위주 집값은 절대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는 집값이 아니다. 실제 거래될 수 있는 집값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주택 소유자가 생각하는 집값보다 최소 20% 이상 낮은 가격일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지금 부동산시장의 현실이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잔뜩 부푼 호가는 점점 떨어지는 실거래가로 수렴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최근 수도권 주요 아파트단지의 실거래가는 ‘거래 실종+실거래가 하락’이라는 2007년 이후의 양상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지금이라도 부동산 가격 폭락에 대비하지 않으면 엄청난 후폭풍을 겪을 수 밖에 없다. 후발 주자의 장점은 앞 사람의 실패를 보고 교훈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이 겪은 ‘악몽의 10년’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부채를 최대한 줄이는 것부터 해야 한다. (오마이뉴스 인용)
'정치 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어실력도 형편없는 청와대 김은혜와 이동관 홍보수석 (0) | 2010.02.01 |
---|---|
세종시 문제로 불거진 이명박ㆍ박근혜의 한판 싸움 (0) | 2010.01.31 |
유시민, 낙오노빠 변희재는 안 데려가는가? (0) | 2010.01.25 |
세종시 주도권 노린 이명박ㆍ박근혜의 정면승부 (0) | 2010.01.23 |
이미 시작된 이명박 정권의 균열과 한나라당 내분 (0) | 2010.0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