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서 숙소를 나서는데 새벽에 비가 온 흔적이 있더군요. 흐린 세상을 조금이나마 ‘맑게 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낯선 도시에서 아침 밥 먹을 곳을 찾는 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풀 먹을 곳을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습니다. 풀은 커녕 된장찌개라도 먹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오직 고기국밥집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들어가 그 중 고기가 조금 적게 들어간 것을 선택했습니다. 몸자보에 쓰인 ‘삽질 대신 일 자리를’ ‘언론악법 철폐’를 본 주인 아주머니도 청년실업에 대한 걱정이 태산입니다.
자식이 졸업해야 하니 결코 남의 일이 아니겠죠. 이런 마음을 진보 진영이 모을 수 있다면 ‘바로 갈아엎을 수 있는데’라는 상상을 잠시 해 봅니다. 바닷가에 자리 잡은 울산화학공업단지 옆을 지나니 숨 쉬기가 거북할 정도로 공기가 다릅니다. 거기에다 왜 그리 언덕은 높고 긴지 아무리 기어 변속을 해도 페달 밟기가 힘들더군요.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게 세상 이치이건만 당장 내 몸이 힘드니 만사가 귀찮습니다. 해변가를 매립한데다 산을 깎은 흔적이 곳곳에 보이니 힘 든 게 당연하지요.
동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7번국도를 따라 부산으로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기장군 고리 발전소에 근무하는 후배와 점심 약속이 있어 온양을 지나 방향을 돌렸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울산을 벗어나기 전부터 ‘자동차 전용도로’라는 안내판이 오만하게 버티고 있습니다. 오직 차 만을 위한 길이 존재한다는 게 화가 날 뿐입니다. 사람은 어디로 가란 말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현장 확인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다시 한 번 느낍니다. 자동차 전용 도로에 자전거가 달리니 명백한 도로교통법 위반이죠. 예전 국도를 찾을 수 없으니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2년 만에 보는 반가운 후배입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대학을 다녔으니 고생이 어떠했을지 상상이갑니다. 어릴 때 너무 가난하게 살면 나이 들어서도 궁색한 티를 내건만 이 친구는 정 반대입니다. 공기업의 차장이 일이 밀려 주말에 출근해 종일 일을 해야 할 정도로 ‘신이 내린 직장’의 풍토도 엄청난게 변했다고 합니다. 입사 시절에 비하면 인력이 3분의 1에 불과하다고 하니 노동 강도가 얼마나 높아졌는지 짐작이 갑니다. 책상에 앉아 서류 결재만 하다 ‘점심 때 뭐 먹을까’ 고민하던 시절은 흘러간 옛 노래라고 합니다.
걸핏하면 들리는 구조조정의 칼바람은 직급이 높을수록 더 가슴에 와 닿기 마련이죠. 큰 아들이 먼저 세상을 떠난 충격에 모친은 치매로 오랜 세월 고생하시다 세상 떠나셨는데 이제 아내가 진이 빠져 고생이라는 말에 지난 시절의 힘들었던 게 조금이나마 짐작이 갑니다. 참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인데 왜 저런 고생을 해야 하는지 하느님 원망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명색이 공기업의 차장인데 차도 배기량이 적은 오래된 걸 그냥 타고 다닙니다. 껍데기와는 상관없는 사람답더군요.
‘가능하면 육식을 피하고 싶다’는 까칠한 선배의 주문에 해물식당에 가서 정성 가득 담긴 점심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형님, 이왕 시작한 진보정치 잘 하시라’는 격려를 아끼지 않으니 고맙기 그지없지요. 환송을 받으며 목적지인 해운대로 향했습니다. 듣도 보도 못한 귀찮은 전화가 곳곳에서 걸려 와 그냥 넘기고 언덕 길 많은 부산 해운대에 도착했습니다. 교직에 있는 친구는 경북 영천 누님 댁에 있어 해운대에 사는 친구와 단 둘이 만났습니다. 오랜만에 보니 반가운 게 벗인가 봅니다.
저녁을 먹고 부산 불꽃축제 구경을 갔습니다. 전망 좋은 해운대 바닷가에 건방지게 버티고 있는 비싼 아파트 때문에 제대로 구경을 할 수 없더군요. 어느 인간들이 건축 허가를 내 주었는지 모르지만 입에 수 많은 사람들이 보고 즐겨야 할 부산 앞 바다를 독점하는 오만방자함에 욕이 저절로 튀어나옵니다. 저녁이 되자 바닷바람은 확연히 달라 준비해 온 바람막이 옷을 입었습니다. 도착 전날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렸다는 말에 속이 조금 상했습니다. 하루만 당겨 왔더라면 구경할 것을 보지 못했으니 말이죠.
불꽃축제 구경을 하고 친구와 가볍게 맥주 한 잔 했습니다. ‘자전거로 전국 일주 한다니 그 몸이 부럽다’기에 ‘이런 몸이 있어 감사할 뿐’이라며 ‘고등학교 때부터 운동을 하고 청년시절 본격적으로 몸 관리한 게 다행’이란 생각을 합니다. 오랜만에 반갑고 고마운 벗을 만나 지난 시절 이야기도 하며 맛있는 맥주도 마시고 잠자리에 들기 전 오늘의 숙제를 합니다. 내일까지는 쉬고 월요일 아침에 출발하니 느긋하게 푹 쉬려합니다. 장거리 자전거 주행으로 뭉쳐진 근육을 풀기 위해 찜질방에서 늘어지게 엎어져야겠습니다.
추 신: 일요일 부산 해운대 부근에서 쉬고 창원을 지나 마산 끝자락에 있는 동지들의 신세를 지기로 했습니다. 진주를 지나 하동을 그쳐 광양으로 갈 예정입니다. 많은 분들의 정성과 후원으로 움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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