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김민선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다’는 미국 쇠고기 수입상

녹색세상 2009. 8. 15. 18:37

 

대한민국 헌법 제27조는 재판청구권을 보장하고 있고, 누구라도 법원에 소장을 내고 약간의 비용을 내기만 하면 원고가 될 수 있다. 피고로 지목된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소송에 대응해야 한다. 가만있으면 ‘모든 것을 인정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배우 김민선 씨에 대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업체 에이미트의 손해배상소송에 대한 얘기다. 사실관계가 이미 드러나 있고, 소송의 목적에 대해 당사자인 원고도 순순히 털어놓고 있기에 일정한 평가는 가능하다고 본다. 보도를 보는 순간 “이런 소송도 가능한가”라는 의문을 가지면서 의아해 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 김민선이 출연한 영화 ‘미인도’의 열연 장면. 스크린쿼터 문제를 비롯한 사회 문제에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배우다.


손해배상이 성립하려면 이른바 요건사실(일종의 성립조건)을 만족시켜야 되는데, 민법 제750조의 요건사실로 추려볼 수 있는 것은 ①고의 또는 과실 ②위법성 ③손해의 발생과 인과관계 등이다. 세 가지 요건이 모두 만족되어야만 책임이 인정되고, 한 가지라도 만족되지 않으면 손해배상책임은 전혀 성립되지 않는다. 먼저, 고의 또는 과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김민선 씨는 자신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해, 공개적으로 그리고 고의적으로 표현했다. “광우병이 득실거리는 소를 뼈째 수입하느니 청산가리를 입에 털어 넣는 편이 오히려 낫겠다”라고 했으니 고의범(?) 맞다.


문제는 위법성과 인과관계이다. 먼저 위법성을 보자. 위법성이란 ‘법을 위반했다’는 것인데, 법전에 나와 있는 실정법 뿐 아니라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도 실무상 위법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가 좀 애매하다. 정치적 견해가 반영될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김민선 씨의 이른바 ‘청산가리 발언’이 사회질서, 정확히 얘기하면 ‘기득권 질서’에 기어오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전여옥 의원 같은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적 견해일 뿐이다. 누군가의 의견에 찬성하고 반대하는 문제는 그 의견의 위법성과 관계없다. 김민선 씨 역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를 행사했을 뿐이고, 자신의 미니홈피에 독백형식의 주관적 의견을 올렸다. 그 정도 의견표명을 위법하다고 한다면 대한민국은 독재 국가로 낙인찍혀 마땅하다. 워낙 ‘신기한 일’이 많이 일어나므로 법원에서 김민선 씨가 위법한 행위를 했다고 판단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손해의 발생과 인과관계를 살펴보자. 불법행위가 성립하려면 가해행위에 의하여 손해가 발생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손해는 현실적으로 발생한 것에 제한한다.


함부로 소송하는 버르장머리는 누가 고치나?


수입업자의 주장은 김민선씨의 발언 때문에 자신을 비롯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업자가 약 4200억원의 손해를 입었지만 소송비용 때문에 ‘우선 3억원만 청구한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의문이 든다. 손해액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지만 김민선 씨의 발언 때문에 국민들이 일제히 미국산 쇠고기를 먹지 않게 되었고, 그 모든 책임이 김민선 씨에게 있다는 건데, 아무리 머리를 짜 보아도 상식과 지식으로는 그 인과관계를 설명하기 어려운 것 같다. 오히려 정부의 엉터리협상과 거짓말 때문에 국민들이 미국산 쇠고기를 멀리한 것이 상식이다.

 

 ▲ 미국산 쇠고기 수입업체 에이미트 박창규 회장. (사진:오마이뉴스)


때마침 여론조사도 나왔다. 리얼미터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85% 이상은 김민선 씨의 발언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답했고, 그중 절반 정도는 아예 김민선 씨의 발언을 들어본 적도 없다고 답했다. 이번 소송은 ‘법률적으로 원고 승소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게 많은 변호사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물론 승소가능성이 거의 없더라도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기획소송 내지 시험소송(test suit)이라고 하는데, 승소가 목적이 아니라 여론을 환기시키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에이미트 박창규 회장은 크게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변호사 수임료로 얼마를 지급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인지대와 송달료는 얼마 들지 않았을 터이므로, 에이미트 박창규 회장은 저렴한 비용으로 전국적인 지명도를 갖게 되었다. 매우 값싸고 효율적인 광고임에 틀림없다. 박 회장은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솔직하게 말했다. “앞으로 연예인들이 함부로 말하는 버르장머리를 고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미국산 쇠고기 홍보대사로 나서면 봐 주겠다”는 막말까지 해대니 꼴불견이다. 이렇게 ‘함부로 소송하는 버르장머리’는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고민이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아주 못 된 버르장머리임에 분명하다. (오마이뉴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