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생태

앞산꼭지의 주말 자전거 여행

녹색세상 2009. 6. 29. 00:34
 

집안의 볼 일도 있고 해서 자전거를 타고 논공을 지나 고령까지 갔다 왔습니다. 시내에서 화원까지는 수시로 왔다 갔다 하지만 자전거로는 초행길인 고령까지 막상 가려니 막막해 지더군요. 토건공화국의 관료들이 시원하게 국도를 확장해 놓아 화원 나들목 지나면서 부터는 막힘없이 씽씽 달릴 수 있더군요. 옥포를 지나 달성군청이 있는 논공읍에 도착하니 목이 말라 챙겨 온 물병을 찾았더니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은 넣어 놓고는 빼 먹은 모양입니다. 어쩔 수 없이 가게에 들러 막걸리 한 병을 마셨습니다. 그야말로 꿀맛이었습니다. 

 

 

위천 삼거리를 지나 예전 국도를 따라 낙동강을 넘어 고령으로 들어섰습니다. 정신없이 밟아 약속한 곳에서 전화를 했습니다. ‘신이 내린 직장’이라는 공기업을 그만두고 자식을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으로 처가의 어른들과 같이 왔다고 합니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부부인데 작년 광우병 정국을 지나면서 촛불 때문에 맺은 소중한 인연이죠. 남편인 이경렬 씨는 난생처음 해 보는 집 수리를 능숙하게 잘 하고 있었습니다. 집 짓고 부수는 일을 해 온 저도 하지 못하는 일을 잘 하는 손재주가 있는 사람입니다.

 

아내인 이주현 씨는 언론소비자 운동에 열심이기도 합니다. 요즘 ‘삼성불매’ 운동이 한창인 ‘언론소비자주권캠페인’의 회의가 있어 소재지까지 나가 버스를 타고 대구로 와서 대전까지 갔다 올 정도로 열정이 대단합니다. 전부 노인들만 있는 동네에 50대 중반의 이장이 가장 젊은 사람일 정도로 농촌의 고령화는 극에 달해 있습니다. 이 부부가 윗 마을에서 내려와 이 동네에 살게 되었으니 가장 젊은 사람이 된 셈이죠. 마을에 오가는 사람들 중 젊은 사람이라고는 도통 찾아볼 수 없는 게 우리 농촌현실입니다. 

 

 

 

급격한 기상이변으로 냉해가 와 옮겨 심은 작물이 죽기도 하고, 가뭄이 너무 심해 나무가 말라 죽기도 하는데 우리 입에 들어가는 식량인들 온전 할리 만무하죠. 잘 닦인 고속도로는 24시간 쌩쌩 달림에도 불구하고 마을 쪽으로 방음벽도 설치하지 않고 방치해 둔 걸 보면서 공기업이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보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중고 자재를 최대한 활용해 적은 비용으로 지으려니 자연히 손이 많이 갈 수 밖에 없죠. 구해온 것이 너무 오래되어 건드리면 부서져 제대로 사용할 만한 게  없어 쓰레기만 잔뜩 늘어나고 말았습니다. 시골가면 밭일이라도 거들어야 하는데 일할 준비는 해 놓고 공치고 말았습니다.

 

오랜만에 먼 거리를 자전거로 와서 그런지 밥 먹고 나니 졸음이 쏟아져 골아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다음 날 달비골에 약속이 있어 12시 무렵 점심도 먹지 못하고 대구로 출발했습니다. 오는 길은 거리 감각이 있어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더군요. 멀기만 하던 옥포도 잠시 만에 지나 목적지인 달비골에 도착해 앞산꼭지들과 농성장 주변을 청소하고 탈이 난 곳을 수선도 했습니다. 같이 땀을 흘리니 몇 시간만 해도 깔끔해 졌습니다. 이래서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는 가 봅니다.

 

앞산을 지키겠다고 달비골에 자리 잡은 지 벌써 600일이 넘었습니다. 시민들의 자연 휴식처인 이 곳을 없애려는 건설자본의 탐욕은 시작되었지만 버티는 것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지 않으면 삼천리강산 곳곳을 파헤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전거로 오가면서 마구 파헤친 곳을 보니 억장이 무너집니다. 토건공화국의 무식하기 그지없는 삽질은 불도저 마냥 밀기만 해 댈 뿐 사람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엄격한 ‘개발제한구역’ 설정으로 도심의 무분별한 팽창을 억제한 박정희 개발 독재 보다 더 못한 독재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