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완벽한 알리바이’는 정직이라고 들었습니다. 살아가다 실수를 하면 있는 그대로 잘못을 인정하고 정직하게 털어 놓으면 뭐라 하지 않습니다. 무엇이던 정직하고 숨김없이 솔직하게 하면 입을 뗄 사람이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압니다. 그러기에 정직과 원칙만큼 귀하고 아름다운 것은 없다고 말합니다. 무엇을 비판할 때 원칙을 말하면 됩니다. 원칙에 어긋난 일이 있으면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리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는 ‘원칙’과 솔직이라는 말을 아주 우습게 압니다. “원칙이나 정직은 책에는 써놓아야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 소용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팽배해 있습니다.
▲ 앞산파괴 주범인 태영건설이 동원한 용역깡패들. 현장에 투입 2일 전에 경찰서에 신고해야 하는 것을 피해 일일 계약이라는 편법을 사용했다.
진보진영이나 먹물 집단이라고 결코 예외는 아닙니다. 지난 백 여년의 세월 동안 한국 사회가 ‘원칙없는 사회’로 굴러 와서 거짓이 판을 치기 때문이겠지요. 사실은 원칙과 정직을 말하면서도 철저히 외면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원칙으로 돌아가기’를 주장하면 아주 우스운 사람이 돼 버립니다. 그 정도에서 멈추면 다행인데 사정없이 짓밟아 버리는 경우를 봅니다. 남의 생각이니 인정만 해 줘도 되련만 별종으로 몰아 무시해 버립니다. 심지어 집단적으로 ‘무엇이 원칙인지’ 조차 모르는 상황에까지 봉착하지 않았습니까? 심할 경우 원칙을 말하는 이를 왕따 시켜 생사람을 매장 시켜 버리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좀 더 밝아지기 위해서는 그런 우습고 왕따를 각오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누가 뭐라 하던 끈질기게 원칙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을 때 우리 사회가 좀 더 밝아지기 때문이죠. 원칙이 없고 조금만 비겁하면 당장은 편할지 모르나 점점 어둠 속으로 들어갈 뿐입니다. 지금처럼 원칙 알기를 우습게보고 엉뚱한 방향으로만 관심을 호도하는 관행이 계속되는 한 ‘너무 깐깐하다’ ‘대안 없으면 비판도 하지 마라’는 우습기 그지없는 말이 계속 판을 칠 것입니다. 물론 정직하고 원칙으로 돌아가는 길은 점점 더 멀어지겠지요. 원칙을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피곤한 일입니까? 귀 기울이는 사람도 별로 없고 그러다 보면 지치기 마련이죠.
더구나 지난 일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원칙을 말하기란 여간 어렵고 힘든 게 아닙니다. 지나간 일이니 ‘기분 좋게 처리해 주자’는 게 대부분의 생각인 것 같습니다. 굳이 따지지 않고 좋게 해 주려는 그 ‘아름다운 마음’은 참 좋으나 과거를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밝은 미래를 볼 수 없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더욱이 공식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일이라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앞산터널 저지 싸움의 와중에 한 동지가 용역깡패에게 떠밀려 실신해 119구급차에 실려 후송되었습니다. 실신할 정도였으니 분명히 피해자인데 쌍방처벌을 받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이 발생했을 무렵 “태영건설에서 고소할 우려가 있으니 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후유 증상의 우려도 있을지 모르니 몇 일 안정을 취하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병실이 없다고 해 가까운 병원을 찾아 ‘사람이 가니 병실을 부탁한다’며 전화까지 해 놓았으나 후속 조치는 전혀 없었습니다. 젊으니 바로 퇴원을 했지만 “그래도 모르니 치료 흔적이라도 남겨 두라”고 신신당부를 했으나 그냥 넘어갔습니다. ‘저러다 뒤통수 맞을 텐데’라는 걱정이 머리 속을 맴돌았으나 듣지 않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지요. 수사 진행 상황을 물어 보았으나 묵묵부답이라 어떻게 손을 쓸 겨를도 없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벌금 처분 통지서를 받았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이런 상황이 올 것 같아 대비도 하고 당사자의 건강 때문에 그렇게 당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넘겨 버렸으니 어이가 없더군요. 이 문제를 지인들에게 물어봤더니 ‘정말 갑갑하다. 그 정도도 모르느냐’고 합니다. 벌어질 일에 최소한의 대비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벌금 처리 문제로 긴급하게 회의를 소집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1시간이나 넘게 지각을 하고, 그와 관련한 내용도 그 날 오후 4시 넘어서야 올리는 등 늑장으로 일관하니 더 갑갑하죠. 앞산 달비골에 다리 걸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고소당한 사람들의 벌금 처리 문제이긴 하나 기본 예의조차 지키지 않는 것을 보면 회의가 듭니다.
지나간 일이지만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앞으로 이런 일로 머리 싸맬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은 상의도 없이 외부로 흘려버리고, 일이 터지면 바로 달려오는 것은 그리 좋은 모습이 아닙니다. 옳은 일 하다 덮어 쓴 벌금이니 조직에서 처리해 주는 게 맞지만 당사자는 ‘조직의 결정과 합의에 따른다’는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무작정 처리해 달라는 것은 상식 밖의 처신입니다. 조직 생활을 해 보지 않아서 그런지 자신의 요구만 말할 뿐 지켜야 할 기본을 무시하는 것을 묵과할 수 없는 것은 ‘최소한의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벌금 처리 문제는 이제 현실 문제로 다가왔습니다. 다른 문제를 거론한 사람들의 말대로 했다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묻고 싶습니다. 솔직하지 못한 처신이었다고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많은 동지들이 머리를 맞대고 한 푼이라도 더 모으기 위해 생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얽힌 사람들이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 달라’는 원칙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깐깐하고 까칠하다’고 욕 얻어먹는다 해도 ‘최소한의 원칙은 지키자’는 말은 꼭 해야 되겠습니다. 지나간 일이지만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앞으로 이런 일은 되풀이 되고 만다는 것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입니다.
추 가: 저도 잘 지키지 못하지만 원칙과 솔직함이 일상화된 세상을 바라는 마음에서 고민 끝에 적었습니다. 누구를 ‘정죄하자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고민하자’는 게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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