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0일 1987년 독재에 항거한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된 6.10항쟁 11주년 행사가 대구에서는 대백 앞 민주광장에서 얼렸습니다. 오랜만에 시내 중심가를 나가봤더니 무대에 얼마나 많은 돈을 갖다 발랐는지 모를 정도로 화려하게 꾸며 놓았더군요. 동성로 성곽을 복원한다며 곳곳에 돌을 깔아 장애인들이나 노인들이 다니기 불편하게 하더니, 그냥 아무나 와서 즐겁게 즐기고 놀 수 있는 시민 마당 대신 요란한 장식이 사람들을 억압하고 있었습니다. 전형적인 개발독재 시대의 발상이라 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내년 지방 선거를 앞두고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대통령부터 기초단체장까지 확 배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곳곳에는 안면 있는 시경과 관할인 중부서 정보과 형사들이 늘렸고, 무엇이 그리도 겁나고 두려운지 중부서장은 경비담당 직원을 대동하고 현장을 수시로 누비고 다니더군요. 멀리서 현장을 보고 보고만 받아도 될 일을 행사가 어떻게 번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젖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먼저 청소년들의 ‘현 정국에 대한 시국선언문’ 낭독으로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알려진 얼굴이 아니라 괜찮지만 명찰이 채증당할 까봐 명찰을 뜯어 버리고 올라가는 학생들을 보면서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불안하게 만들었을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도 모름에도 ‘얼마든지 감수하겠다’며 당당히 나서는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미래가 결코 어둡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누가 건드리면 바로 연락하라’며 격려를 해 주었더니 조금 긴장한 얼굴이 밝아지더군요. 87년 군사독재 정권 시절 그 암울한 시기에도 노태우의 부정 선거를 항의하며 ‘전국고등학생연합’이란 이름으로 10대들은 저항했습니다. 작년 광우병 정국을 그치면서 ‘촛불소녀’가 등장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며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당당하게 외쳐 기성세대를 부끄럽게 만들더니 이제 이명박 정권을 향해 시국선언을 할 정도로 당차기만 합니다. 그래서 우린 ‘희망’이라는 이름의 끈을 놓을 수 없습니다.
국민을 억압하고 지배하려는 현 정권에 대한 청소년들의 입장
우리는 5월 23일을 잊지 못합니다. 누가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습니까? 우리는 그의 영전 앞에 국화를 바치며 그 동안 교과서에서 배운 민주주의가 무너졌음을 느끼고 오열했습니다. 영결식을 본 순간만큼은 각자의 성향을 떠난 한 마음으로 뭉쳤습니다. 우리의 국화는 민주주의의 수호자들의 피를 헛되이 한 우리 자신에 대한 국화요, 수동적으로 살았던 과거의 우리 자신에 대한 국화였습니다. 지금을 기점으로 우리는 과거의 우리들에게 작별을 고하고자 합니다.
무엇이 우리를 학교에서 뛰쳐나와 민주주의를 걱정하게 했습니까? 우리는 다수 의견도 중요하지만 소수 의견도 중요하다고, 언론은 어떤 권력과도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우리에게는 언론ㆍ출판 집회와 결사의 자유가 있다고, 우리나라는 삼권분립을 지킨다고 배웠습니다. 진정한 통치자는 낮은 곳을 향할 줄 알아야 하고 그게 복지국가라고 배웠으며, 우리에게는 권력에 대한 저항권이 있다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배운 것에 대해 회의감을 느낍니다. 소수 의견은 무시되고, 언론은 권력에 굴복하고 있습니다. 촛불집회에 나갔던 청소년들은 경찰 조사를 받아야만 했고, 삼권분립이라는 말과 달리 국가의 모든 권력은 부정 세력과 뭉쳐있습니다. 집을 잃은 사람들이 공권력에 의해 무참히 희생되고 있고, 우리는 정당성을 부여한 권력으로부터 탄압받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 청소년들은 현 시국의 부정을 고발하고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거리로 나섰습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독재와 불의에 항거하는 민주 항쟁의 역사이며 그 중심엔 항상 학생들이 서 있었습니다. 1960년 4월 19일에 먼저 앞으로 나선 것은 중고등학생들이었고, 이후에도 청소년들은 항쟁의 역사에서 민주주의의 숭고한 가치를 배웁니다. 우리는 독재와 부당한 권력이 주는 제안과 타협하지 않는 주체적인 존재이기에 수 많은 거짓 속에서 단 하나의 진실을 보았을 때 결코 고개를 돌리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상황에 직면해 우리의 학업을 잠시 내려놓고 우리가 앞으로 누려갈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합니다.
2009년 어른들과 이명박 대통령에게 묻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각자의 이념을 떠나 이 자리에 섰습니다. 아직 정치색을 띄지 않은 백색의 종이일 뿐이지만 우리는 압니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우리는 역사가 가르쳐준 가치가 위협받고 있는 이 혼란한 시국에 대한 통탄을 금할 길이 없기에 우리는 지식의 요람에서 가르치는 바에 따라 스스로 민주주의를 지키려 합니다. 우리는 국가의 수장인 이명박 대통령과 여당인 한나라당이 7~80년대 군사독재 정권 시절로 회귀하려는 발상에서 벗어나 국민과 소통하고,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사죄할 것을 바라며 우리의 요구사항을 알립니다.
1.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검찰과 조중동은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직간접적이고 도의적 책임을 인정하고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라!
2. 정부와 한나라당, 경찰은 용산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진심어린 애도와 함께 대책을 정식으로 논의하고, 소외 계층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적절한 대책을 세울 것을 약속하라!
3. 한나라당은 공기업과 공영방송 민영화 등 부유층만을 위한 악법 추진을 멈추라. 국민들의 정당한 의사를 수용하고 올바른 논리로 반대론을 설득해 상생의 길로 가는 진정한 여당의 의무를 수행하라!
4. 한나라당은 언론악법 개정안을 즉각 철회해 모든 언론의 독점화와 보수화를 중단하라!
5. 정부는 국민의 정당권인 집회의 자유를 인정하고, 경찰은 집회에 대한 자의적인 과잉 해석을 멈추고 본연의 임무인 집회의 안전 보호로 돌아가라. 부당하게 연행되거나 폭력적인 진압을 당한 국민들에게 사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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