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생태

‘같이 가면 더 멀리갈 수 있다’는 어느 앞산꼭지의 글에 대해

녹색세상 2009. 5. 19. 16:10

 

이 글은 추운 겨울 날 어느 꼭지가 올린 글에 대한 답변으로 써 놓았다가 서로 부딪칠 것 같아 미루어 놓았던 것입니다. 지금이 적절한 시기인것 같아 일부 수정해 올립니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란 노래와 ‘사노라면’이란 노래는 제가  참 좋아합니다. 부를 때 마다 가슴에 와 닿는 노랫말이 심금을 울리기도 하죠. 청년시절 아름다운 억이 있어서인지 즐겨 부릅니다. 노랫말이 좋아 교회 학생들과 같이 부르던 기억이 새삼 떠 오릅니다. ‘별난 노래 부른다’는 잔소리를 듣긴 했으나 청소년들이 좋아해 수시로 부르곤 했습니다. 까까머리 철부지들이 30대 중반이 된 지금도 가끔 만나 막걸리 한잔 하면 이 노래를 같이 부르곤 합니다.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란 구절은 나이든 지금도 감동적으로 와 닿아 가끔 코끝이 시큰 거리기도 합니다.

 


함께 가는 것은 남을 배려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위한 생존 본능의 가장 유효한 수단이기도 하죠. 철새인 기러기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20배가 넘는 1만 킬로미터를 날아가는 이유는 환경이 바뀌면 이동해야 하는 생존의 법칙 때문입니다. 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날아가는 것이죠. 이동하지 않고 그 자리에만 있으면 죽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항법 장치도 없건만 오직 태양과 별을 보고 방향을 잡고 날아갑니다. 마치 철저한 훈련을 한 편대 비행처럼 떼를 지어 날아가는 것은 무려 30퍼센트나 힘이 덜 들기 때문입니다. 서로 바람의 저항을 막아주고 서로 교대하며, 인도하고 위험을 감시하는 철저한 역할 분담을 합니다. 먼 길에 서로 소리를 내어 격려도 하며, 모두가 같은 길을 가는 일행임을 아는 것이죠. 내가 먼저 몸을 움직이며 상대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도와줍니다.

 

비판할 때는 성역없이 날카롭게 하는 게 맞지만 상대를 껴안는다는 전제 조건이 깔려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의의 칼날만 내 세울 줄 알았지 먼저 바탕에 깔아야 할 관용과 사랑이 부족한 저의 잘못으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같이 가려면 이와 같이 먼저 서로를 인정하고 껴안으려는 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아무리 그렇지만 ‘거꾸로 가려는 사람들까지 껴안으려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 힘조차 낭비하는 잘못된 것’이라 비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안없는 비판은 하지 마라’는 잘못된 말이 판을 치는 것은 기득권자들이 남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짓거리일 뿐 원칙에 어긋났을 때 문제 제기하는 게 비판입니다.

 

 

사람이 모이다 보니 어느 모임이나 자신이 주도권을 장악해야 움직이는 집단이나 인간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끝까지 가고 책임을 지면서 그렇게 한다면 굳이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갈 수도 있으나, 결정적인 순간에 찬물을 끼얹으면서 그런 짓거리 할 때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런 무리나 인간들은 암이나 ‘악의 축’과 같은 존재들이라 도려내지 않으면 주위 사람들이 다치고 상처받기 마련입니다. 사람이 모인 곳에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철저히 자기중심을 넘어 진보의 탈을 쓴 이기적인 인간들도 봤습니다. 그런 인간들일 수록 ‘내가 해야 한다’며 잡은 마이크는 안 내 놓으려 하고, 자기 뜻대로 안 되면 온갖 흙탕물을 일으키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그로 인해 받은 상처는 다른 것 보다 더 크기 마련이라 가슴에 피멍이 들기도 합니다.


‘자기 생각이 분명할수록 남의 의견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말이라 굳이 거론할 필요조차 없지요. 그렇지만 방향이 틀리거나 아닌 것을 맞다고 말하는 사람조차 ‘일리 있다’고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런 전제조건이 있을 때 동지로서 함께할 수 있는 것이지 무작정 보듬어 안고 가는 것은 동반자살이나 마찬가지라 봅니다. 청년시절 뒤쳐지는 사람들이 귀찮아 혼자 등산을 다녔습니다. 군사독재 정권이 죽인 종형 두 분의 아픔과, 멀쩡한 우리 집이 철거를 당해 폭삭 망한 후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푸는 데는 등산이 그만이었죠. 끓어오르는 분노와 추한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기 싫어 혼자 다녔는지도 모릅니다. 체력이 좋을 때니 넘치는 혈기를 주위 사람들과 나눌 생각은 하지 않고 나 보다 떨어지는 사람을 거추장스러워한 오만이었습니다. 입으로만 ‘약자의 편에 선다’고 한 건방지기 짝이 없던 시절이었음을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산에 같이 가 보자’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군요. ‘철이 드는 증거’라고 하기에 기쁜 마음으로 덕담을 받아 들였습니다. 혼자 자기 마음대로 가는 재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뒤쳐지는 사람과 같이 가는 재미는 더 좋고, 뛰어난 성악가의 독창보다 화음을 이루는 합창이 더욱 아름다운 것은 서로 ‘좋은 소리를 내자는 마음이 함께 하기 때문’이라 믿습니다. 이게 바탕이 된다면 저는 어느 누구와도 같이 할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습니다. 더 마음을 열어야겠지만 지금의 내공은 이 정도 밖에 되지 않아 속상하기도 합니다. 저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되겠지요. 앞산을 지키는 일에 제가 평화의 도구가 되어 기쁘기 그지없었습니다. 얼마를 더 오래 싸울지 모르나 힘 닿는 대로 ‘아닌 것에 대한 저항’을 계속하려 합니다.


머리 잘 돌아가고 계산 잘 하는 사람들이 모두 떠난 지금 미련하고 어리석게도 난 저 아이들이 앞산의 증인임을 믿는다’며 마지막까지 남아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지막 한 사람이 남아도 아닌 것에 대해 저항하는 것은 아름답다’고 합니다. 그 아름다운 것을 하겠다는 동지들이 있는 한 그들을 버리는 것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에 내가 힘들면 조용히 떠나지 다른 말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앞산을 지키는 것이 내 자신을 지키는 것이기에 질 줄 알면서도 뛰어 들었듯이 어떤 형태로던 싸우려는 동지들이 있는 한 비록 내 몸이 떠난다 할지라도 그들을 버리는 것은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 저로서는 차마 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