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은사님들이라고 부를 수 있는 어른들이 계시다는 게 행복합니다. 지난 주 금요일 스승의 날에 뵙고 바로 선생님들에게 편지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어 놓고는 미루다 보니 피로 얼룩진 학살에 맞서 질 줄 알면서도 싸운 ‘5.18광주 민중항쟁’ 29주년 기념일인 오늘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미완의 숙제인 학살이 자행되고 있어 하루하루를 가슴 조이며 살아가는 이웃들이 많이 있습니다. 광주민중항쟁 이후 최고로 많은 민간인이 죽은 서울 용산 학살 역시 마찬가지이고 지금도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강제 철거가 바로 그것입니다.
▲ 유일한 왼손잡이라 ‘사대부중의 좌파’로 불린 정치경제를 가르친 전경일 선생님, ‘사회가 발전하려면 좌우가 골고루 있어야 한다’고 진보정당에 몸담고 있는 제자를 거들어 주신 은사님입니다. 백씨의 친구 분이 10월 항쟁에 연루되어 우리 현대사의 아픔을 직간접적으로 겪은 분이기도 합니다.
저와 뜻을 함께 하는 동지들이 추운 겨울 날 ‘나무 위 농성’을 하면서까지 지켜 자식들에게 물려주려한 대구의 어머니 산인 앞산을 파괴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라 봅니다.
열 대 여섯 밖에 안 된 철부지에게 ‘사회를 알아야 한다’며 신문사설을 보도록 권하신 전경일 선생님, 쉰이 된 지금까지 세상을 향한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은 ‘선생님에게 사회를 잘 배웠기 때문’이라고 친구들이 말하더군요. 특히 덩치 큰 애가 작은 애를 때렸을 때 ‘덩치 값 못 한다’며 이유는 뒤로 하고 큰 아이를 먼저 꾸지람 하셨죠. 약자를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그렇게 배웠습니다.
우리들의 영원한 큰 형님이자 오라버니이신 멋쟁이 박삼선 선생님, 어린 나이였지만 몸이 좋지 않거나 장애가 있는 후배들을 배려하도록 유난히 신경을 쓰셨죠. 제가 다른 것은 다 양보해도 약자를 함부로 대하는 걸 묵과하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던 사춘기 시절에 배운 것입니다. 아들 같은 제자가 남이 하지 않는 일을 한다고 걱정해 주시는 이덕순 선생님, 착하기만 하고 모범생이었던 제가 마치 투사로 보여 놀라셨을 줄 압니다. 저는 투사도 못 되고 그리 과격하지도 않고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뿐입니다.
어머니 같은 선생님에게 꽃바구니를 드릴 정도로 감각도 있는 부드러운 남자란 걸 잘 아시죠? ^^ 약자들의 고혈을 쥐어짜는 거꾸로 된 세상이 윤희용이 같이 나약한 인간을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아실 겁니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이 같이 가야 하는 게 신앙’이듯 ‘행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려 할 뿐입니다. 못난 제가 가는 길이 이 땅에서는 너무 멀고 험난해 보여 걱정하는 사랑하는 벗들이 있는데 선생님이 염려하시는 건 당연하다고 봅니다.
▲ 이른바 ‘마당선생’이신 체육을 가르친 박삼선 선생님, 한 동안 연락을 못 드렸다가 ‘당장 전화하라’는 지침을 받았습니다. ‘31회와 인연 맺은 게 자네 때문’이라며 저를 찾으시는 고마운 큰형님 같은 분입니다.
흔히 개혁이나 변혁을 말하면 마치 세상을 갈아엎어 버리는 줄 알지만 그게 아니라 모든 것을 ‘제 자리로 갖다 놓는 것’이라고 민중신학자 안병무 박사는 ‘역사와 해석’ 서문에서 밝혔습니다. 모든 게 제 자리를 찾아가 저 같은 허물투성이가 나서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하루빨리 왔으면 하는 게 솔직한 바람입니다. 어떤 선생님은 ‘지난 좌파 정권 10년’이라고 하지만 김대중ㆍ노무현 정권이야 말로 빈부 격차를 더 심화 시켰고, 구조 조정이란 이름의 비수를 들이대어 성실하게 일만 해 온 사람들을 벼랑 끝으로 내몬 장본인입니다.
국가가 교육을 책임지는 북서 유럽 정도는 안 되더라도 최소한 ‘공정한 기회’는 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국립대학 법인화’를 김대중 정권이 들고 나와 ‘국립대학의 사립화’를 시도해 돈 없는 집 자식들은 대학 구경도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무상의료는 아니라도 일하다 다친 사람을 치료해 현업에 복귀하도록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함에도 노무현 정권은 산업재해보험을 악독하게 만들어 피해자이기도 한 저로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 이덕순 선생님, ‘원수를 사랑하라’고 배운 예수쟁이인 제 가슴에 맺힌 한이 너무 많아 걱정되시죠?
별 것 아닌 인간이 ‘아닌 것을 아니다’며 살다 보니 온 몸에 상처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외면하며 살 수 없어 제게 주어진 길을 갈 뿐입니다.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신 예수의 가르침을 외면할 수 없기에 수 없이 갈등 하면서도 이 길을 갑니다. ‘조금만 비겁하면 행복이 보장’되지만 ‘가장 완벽한 알리바이는 정직’이기에 그 길을 못 가겠더군요. 배운 게 적다고 기 죽지 않고 가진 게 없다고 해서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원할 뿐 자본가라고 해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가진 자들의 재산을 빼앗자는 게 아니라 ‘같이 먹고 살자’고 할 뿐입니다.
불행히도 부자들이 먼저 자신의 곳간을 연 나라는 단 한 군데도 없고 민중들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떠밀려 마지못해 연 게 인류 역사이더군요. 저와 동지들이 가고자 하는 진보정치의 길은 이미 이루어진 나라가 많이 있기에 결코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님을 전경일 선생님은 잘 아실 겁니다. 누구는 저희들을 보고 ‘반대만 한다’고 하더군요. 지금까지 제대로 한 것은 거의 없고 엉터리로 하니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지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같이 살 길을 찾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희망이 없고 그것은 곧 저희들의 노후조차 불안할 수 밖에 없기에 ‘같이 살자’고 목소리 높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자들이 이런 일에 나서는 것은 의무라고 선생님들에게 배웠습니다. 이것이 투쟁이고 이런 저 같은 사람을 투사라고 부른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1980년 광주민중항쟁 당시 피해를 입은 분들이나 진압군으로 투입되었다가 지금도 정신병원을 들락거리며 고통을 겪고 있는 잊혀 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신은 상관의 명령에 따라 대충 총을 쏘았을 뿐인데 ‘내가 쏜 총에 누가 죽었을지 모른다’며 29년이 지난 지금도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살의 원흉인 전두환ㆍ노태우 일가는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한 광주는 미완의 숙제로 남아 있을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얼마 전 전두환의 둘째 아들 전재용은 30억짜리 호화판 주택으로 이사 갔다고 하더군요. ‘전 재산이 29만원’이라고 우기는 전두환의 아들이 이렇게 판을 치는 한 광주학살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고통은 깊어만 갈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선생님, 이런 인간들이 있는 현실을 자식들에게 물려준다는 것은 부모 된 자로서 죄악이기에 싸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은사님들에게 좋은 말씀 드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가슴 아픈 이야기만 늘어놓아 죄송합니다. 다음에 찾아뵙고 선생님들과 지난 시절 이야기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2009년 5월 18일 제자 윤 희 용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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