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국립기도원 길목에서 돌아온 앞산꼭지의 사연

녹색세상 2009. 4. 5. 00:49
 

나무 위 농성을 마치고 국립기도원 길목까지 간 사연


자연을 아끼고 생명을 사랑하는 동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러분들의 염려와 걱정 덕분에 3월 마지막 토요일 앞산터널 저지 ‘나무 위 농성’을 마치고 건강한 몸으로 내려왔습니다. 북풍한설 몰아치는 엄동설한의 추위를 견딜 수 있을까 걱정을 했는데 아무 탈 없이 지냈습니다. 오히려 꽃샘추위 때 약간의 감기 기운만 있었으니 대한민국 정부가 인정한 마지막 40대가 이 정도면 건강관리 잘 한 것으로 봐 주셔도 되겠죠? ^^ 한 겨울에 체감 온도가 떨어지는 골 들머리에서 하는 농성이라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게 사실이나 이 정도 할 수 있는 몸이 된다는 게 개인적으로 기쁘기도 합니다. 이 모두가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분들의 정성과 마음이 모아졌기에 가능한 일이라 믿습니다. 농성장을 찾아와 격려도 해 주시고 필요한 물품 챙겨주신 동지 여러분들의 정성은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끌려서 내려올지언정 내 발로 내려오지는 않겠다’고 다짐을 했으나 나무 위 농성을 이어갈 여건이 되지 못해 싸움의 방향을 전환하면서 선택한 고육지책이라 내려온 저로서는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차라리 끌려 내려왔더라면 끌어 오르는 분노라도 남아 있으련만 내부 힘이 약해 내려온지라 지난 일요일부터 달비골 인근을 돌아다니면서 쓰라린 속을 조금 가라앉히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아름다운 패배’라고 하는 분도 있지만 제 마음이 그것을 받아들이기에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힘이 부족한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에 달비골을 배회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나무 위 농성’을 하는 도중 한나라당 사무총장으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는 호사(?)를 누릴 정도로 ‘유명 블로거’로 뜨기도 했습니다. 언론 장악을 위해 인터넷을 옥죄기 위한 본격적인 절차를 밟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조사 후 법무부 외상값이 드러나면 바로 국립기도원으로 갈 수 밖에 없어 그 쪽 정파의 사람들과 같이 활동하는 지인을 통해 ‘민주노동당과 중재를 부탁’하자 흔쾌히 승낙을 하더군요. 그런데 막상 일이 벌어지고 전화를 하자 난색을 표해 눈앞이 캄캄해지더군요. 중재자를 통해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경찰서에 하룻밤 정도 묵으면서 줄다리기를 하려고 그림을 그렸고, 그러려고 자존심 접어 가면서 부탁했는데 어떻게 된판인지 ‘못한다’고 하니 그저 멍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사건이 벌어지고 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달비골에서 ‘나무 위 농성’을 하는 도중 한나라당으로 부터 고소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건 처리 문제로 민주노동당에 내용증명으로 질의서를 보내 “지금 내가 조사 받으러 가면 나무 위 농성에 차질이 있으니 명확한 답변을 달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연락이 없어 ‘처리를 미루어 놓았다’고만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중재가 무산된 후 제가 전화를 하자 ‘탈당자 벌금은 주지 않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 보니 어이없어 “질의를 했으면 답신을 해줘야 하는 게 예의 아니냐? 난 공식적인 답변을 들은 적이 없다.”며 문제 제기를 하자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서울 사건을 지인이 근무하는 곳으로 이첩 요청한 것도 그런 이유였는데 창피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뿐이었습니다.

 

 


조직과 같이 고민할 문제라고 도와준 고마운 동지들


그 쪽 정파와 같이 활동하는 사람을 통해 중재를 부탁할 때 최소한 연락이라도 되었을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습니다. 민주노동당의 내부 논의를 통해 결정했으면 관련 당사자들에게 결과를 알려주는 게 공당의 업무 처리 방식이건만 그냥 묻어 버렸으니 더 화가 났습니다. 처리 과정에서 ‘해당 행위자’들이라서 벌금을 민주노동당에서 처리하는 걸 반대한 정파가 많았다는 소식을 듣고 “난 민주노동당에서 말하는 해당 행위란 것을 한 적이 없고, 개인적으로 판단해 입당을 했고 탈당도 스스로 판단해 혼자서 처리했지 주위 사람들에게 동반탈당을 꺼낸 적이 없다”며 서로 감정 상하지 않도록 처리해 달라는 정중한 내용의 내용증명까지 보냈건만 졸지에 해당 행위자로 낙인찍고 말더군요. 좁은 대구지역에서 얼굴 안 보고 살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는지 갑갑하기 그지없었으나 바로 다그치지 않고 ‘일단 기다려 보자’고 한 것이 저의 불찰이었습니다.

 

 

전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상황이 흘러가고 보니 중간에 부탁을 한 사람까지 다 미워지더군요. 안 되면 ‘안 된다’고 말을 해 줘야 다른 준비를 할 텐데 아무 말 없다가 전화를 하자 ‘연락 못한다’는 말 한 마디에 지금까지 쌓아온 신뢰감이 한 순간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급하거나 욕먹더라도 친구들에게 ‘돈 빌려 달라’는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살았는데 지금까지 지켜온 게 무너져 전화를 하고 거절당하는 수모까지 당했습니다. 그래도 ‘갑갑한 놈이 우물 판다’고 가까운 당원 동지 몇 분에게 전화를 했더니 “개인이 처리할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시당에 연락을 해서 조율을 해 보겠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려주더군요. 엉뚱한 방향으로 돌아가고 보니 갑자기 판단 능력을 잃어버려 그저 멍멍할 뿐이었습니다.


달비골 ‘나무 위 농성’ 후유증에다 한 방 더 맞은 게 마치 ‘울고 싶은 놈 뺨 때리는 것’과 같아 지금까지 ‘볼 날이 있으니 함부로 하지 말자’고 한 제 판단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처음부터 기대를 하지 않았으면 강제 노역 살 준비 단단히 해 챙겨갈 것을 ‘설마 중재자 얼굴을 봐서라도 그냥은 못 갈 거다’는 순진한 생각을 한 저를 되돌아보면서 혼자서 고민할 일이 따로 있고, 조직과 고민할 게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으나 사람에게 받은 새로운 상처로 인해 생긴 불신감 때문에 다른 앙금이 생기지는 않을지 걱정입니다. 설사 헤어졌다 할지라도 최소한의 상식은 지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의 실세를 장악하고 있는 사람들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제 몸으로 직접 느꼈습니다. 이런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합당 안 하느냐’는 말을 수시로 들을 때 참으로 난감하죠.


교도소 가서 몇 주 있다 오는 게 별 것 아님에도 불구하고 당황하는 제 자신을 돌아보면서 아직도 ‘수양이 부족하고 내공이 많이 딸린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준비물도 챙겨와 놓고는 헤매고 말았으니 말이죠. 그렇지만 ‘조직이 함께 고민하고 처리할 일’이라며 금요일 업무 마감 시간이 임박했음에도 불구하고 시당에 연락을 취하고, 국립호텔로 가지 않도록 노고를 아끼지 않은 당원 동지들이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달아 기쁘고, 긴급하게 처리해준 시당 관계 동지들에게 이 자리를 통해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좋은 일과 나쁜 일은 같이 온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다시 한 번 배웠습니다. 그리고 동지애를 발휘해 노력을 아끼지 않은 분들이 주위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알게 되어 기쁘기도 하고요. 수고한 당원 동지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나무 위 농성 후유증을 치료하고 난 뒤 식사라도 같이 하는 자리 마련하겠습니다. 수고해 주신 동지들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추 신: 약속 부도 낸 사람들과 수고한 동지들의 실명을 밝히지 않는 게 예의일 것 같아 알리지 않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