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생태

앞산 달비골 벌목저지 행동의 날(2월 27일)

녹색세상 2009. 2. 27. 23:15
 

제가 달비골에서 ‘나무 위 농성’을 하면서 아침마다 우리 앞산꼭지들의 작은 성 주변에서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습니다. 마치 ‘우리와 같이 살아요’ 라며 호소하는 소리처럼 들리는 것 같습니다. 어제 오후에 교대를 하고 벌목 저지 싸움을 하러 월곡지 부근에 갔을 때 몇 일 후면 초등학교 입학하는 아이가 할머니와 같이 왔는데 “새들이 살지 못하면 우리도 살지 못하잖아요.” 하는데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정말 울고 싶었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같이 지키자’며 안아주었습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못난 조상’이 되기 위해서라도 달비골을 꼭 지켜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의문사를 당하신 다까끼 마사오(박정희)의 영원한 천적이자 마지막 민족주의자인 장준하 선생님의 수기인 ‘돌베개’ 서문에 나오는 ‘못난 조상이 되지 말자’는 말이 새로운 수행의 자리인 달비골에 입산한 후 이리 자주 떠오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식과 조카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마지막까지 이 앞산을 지켜 저 새들과 같이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아예 태영건설 직원들과 벌목작업 차량을 달비골 입구에서 원천 봉쇄해 버려 들어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아마 상상도 하지 못한 독특한 싸움 방식에 태영직원들이 어쩔 줄 몰라 허둥대는 모습이 고소하기 그지없습니다.


벌목 저지 싸움을 하는 난리 중에도 하외숙 꼭지의 순발력은 어김없이 나타났습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딱 맞는 것 같습니다. 달비골의 봄소식을 사진에 담고, 곤줄박이와 박새 사진도 찍었습니다. 제 눈에는 오직 정보과 형사나 태영건설 관계자들, 바람잡이 밖에 안 보이는데 섬세한 감각이 바로 드러났습니다. 몇 일 후면 고등학교 입학하는 아들 우현이에게 학교에서는 도저히 배울 수 없는 살아있는 교육을 위해 험한 순간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같이 오는 모습을 보노라면 부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모를 인연 끊긴 아이가 떠올라 더 부러운지도 모르겠습니다. 남 때릴 줄 모르고 순하고 넋살 좋은 녀석이었는데 오늘 따라 생각이 납니다.


어떻게 소식을 알았는지 20대 중후반의 조카들이 “삼촌 건강 잘 챙기고 앞산을 꼭 지키세요. 삼촌이 하시는 일이 자랑스러워요.”라며 누리편지(이메일)를 보내 왔더군요. “삼촌이 영원한 청년이 아니란 것 기억하시라”는 걱정을 같이 해 주니 고맙기 그지없었습니다. 제가 실명으로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지라 알고 있음에도 지금까지 모른 척 하고 있었던 것이죠. 연세 많으신 데다 건강도 좋지 않은 복현동 할아버지가 아실까봐 ‘비밀을 지킬 테니 걱정하시지 마라’며 저를 격려해 주었습니다. “해린이도 언젠가는 자랑스러워 할 것”이라며 큰 용기를 돋우어 주었습니다. (2009년 2월 27일 ‘나무 위 농성’ 76일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