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생태

앞산에서 느끼는 봄 기운과 자연 치유력

녹색세상 2009. 2. 10. 11:41

 

 

어제는 정월 대보름이었습니다. 액운을 내 쫓고 한 해의 건강과 풍년을 비는 날이죠. 일요일 있었던 지신밟기의 여운이 아직도 달비골 곳곳에 남아 있어 상수리나무 위 ‘작은 성’에 기운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보름이라 정성스레 차려준 찰밥을 먹었는데 오후부터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가 되지 않아 고생을 했습니다. 챙겨온 응급처치함을 뒤졌으나 소화제가 없어 어깨너머로 배운 사혈침으로 몇 군데 피를 뺐습니다. 명색이 응급처치 강사가 자기 몸에 대해 처치를 못하고 있으니 더 갑갑한 노릇이죠. 평소 같으면 곧 바로 시원해 질 텐데 계속 불편해 ‘이러다 고생하는 건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앞섭니다.


속이 불편하거나 감기 몸살은 더 이상 음식을 먹지 말고 편히 쉬라는 몸의 자연스러운 반응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녁을 먹었더니 계속 불편할 수 밖에요. 몸의 반응을 무시한 아주 미련한 짓을 한 것이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9시 무렵 배가 아파 화장실을 갔더니 약간의 설사를 동반한 쾌변이 쏟아져 나오면서 편해졌습니다. 이처럼 우리 몸은 치유력을 갖고 있듯이 자연이나 생태계 역시 약간의 손상에 대한 복원력을 충분히 갖고 있습니다. 의사들도 ‘의사는 몸의 회복력을 돋우도록 거드는 것이지 몸을 낫게 하는 것은 사람의 몸’이라고 한결 같이 말합니다.

 

 

이러한 자연의 순리를 거역하면 고생만 더할 뿐 나이지는 것이라곤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본과 인간의 탐욕은 끝을 모르고 돌진하고 있습니다. 그냥 그대로 있고 싶어 하는 자연을 마구잡이로 파헤치는 것은 무식의 극치를 넘어 ‘생명을 죽이는 짓’임에도 불구하고 그 알량한 개발과 경제논리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세뇌시키며 발악을 해댑니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환산을 해도 자연이 인간에게 가져다주는 혜택이 엄청남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실은 뒤로 덮어 버리고 말죠. 땅의 절반 가까운 면적이 간척지라 ‘자연을 극복한 위대한 인간승리’라고 배운 네덜란드의 간척사업도 갯벌이 안겨주는 혜택을 깨닫고 간척지를 무너뜨려 예전의 갯벌로 되돌리기 시작한지 오래인데,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의 남쪽은 아직도 낡은 이론으로 무식하게 밀어 붙이고 있어 국제적인 망신살만 더하고 있을 뿐입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산불과 홍수가 동시에 일어나 수 많은 사람들이 대피하는 사건은 ‘기상이변이 본격화 되어 사람의 생명을 본격적으로 위협하는 신호탄’이라며 우려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모 국립대에서 천체물리학을 강의하고 있는 후배에게 기상이변에 대한 “예측이나 무슨 해결책이 없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갈수록 더해 예측조차 힘들고, 덜 쓰고 작게 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면서 “이제 성장 논리는 접어야 인간의 생존이 가능하다”며 심각하게 고민하는 걸 봤습니다. 학자의 양심을 걸고 아무리 말해도 지난 정권부터 “실용학문을 떠들어 대며 아예 듣지 않아 갑갑하다.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기후에 관한 학문임에도 연구할 의미조차 빼앗아 버린다.”고 한탄을 합니다.


이런 배경에는 ‘지구환경에 관한 협약’에 서명하지 않고, 화석 연료를 계속 사용량을 무한대로 늘려온 미국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우리라고 결코 예외는 아니지요. 언제부터인지 차가 있어야만 다니고, 그것도 배기량이 많아 환경 오염이 심한 고급차를 선호하는 이상한 분위기는 내가 살고 있는 도심의 오염을 가중 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사건이 바로 눈앞에 벌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써 손으로 가리고 환경을 파괴하는 개망나니 짓을 해대는 대구시와 태영건설은 천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봅니다. 가만히 있으면 어지간한 것은 스스로 제 자리를 찾아가는 자연의 순리부터 김범일 시장이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또 다른 새 소리가 나기 시작해 하루의 시작이 즐겁기만 합니다. 오늘은 2009년 2월 10일 ‘나무 위 농성’ 59일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