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아직 이명박 퇴진을 요구할 때가 아니다’고 말한 사제단 대표에게

녹색세상 2009. 2. 3. 17:38
 

지금이야 말로 이명박 정권을 퇴진 시킬 때.


“아직은 정권 퇴진을 요구할 만한 때는 아니다. 아직도 그들에게 기회가 있다. 용산 참사는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계기일 수 있다. 초심으로 돌아가지 않고 국민을 억압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용납할 수 없다. 하지만 불행히도 상황은 점점 그런 쪽으로 가고 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로 수고하는 전종훈 대표의 오마이뉴스 대담 기사를 보고 ‘이것은 아니다’는 생각이 들어 급히 적습니다. 전종훈 신부님, 생각지도 않았는데 원치 않는 강압적인 안식년 명령을 받고 얼마나 충격이 컸을지 늦게나마 위로의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삼성재벌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는 사실에 삼자인 제가 놀랐는데 당사자인 전종훈 신부님은 더 놀라셨겠지요. 이런 판국에 한국교회는 신구교 할 것 없이 자정능력을 잃고 민중들에게 마약만 먹이고 있으니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란 비난을 자초하고 있지요. 경찰의 살인진압으로 사람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않고 진리를 보고 기뻐한다’는 사도 바오로의 서신을 교회가 정면으로 거부하고 있는 형국을 보면서 비통한 심정 금할 길 없습니다.


“교회는 약자의 생명권을 대변할 의무가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약한 이웃의 인권, 사회의 불의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게 교회의 의무라고 선언하고 있다.”고 오마이뉴스와 대담에서 말씀하셨더군요.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가 과연 그렇습니까?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경영하는 강남성모병원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신부와 수녀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최소한의 법이 정한 의무조차 지키지 않고 용역깡패까지 동원해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몰아 버렸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돈에 환장한 인간들이나 하는 짓거리를 교회가 저질렀을 때 정의구현사제단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내부 잘못과 비리에 대해 지금처럼 침묵을 지키면서, 세상을 향해서만 외친다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제단마저 ‘똑 같은 놈들’이라며 고개를 돌리고 말 것입니다.


“돈 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먹고 살게 해 달라고 했는데 사람을 죽였다.”는 유가족들의 피눈물 나는 절규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더군요. 살 길을 열어달라고 마지막으로 부르짖으러 올라간 철거민들을 경찰특공대가 사정없이 두들겨 패 ‘앞니가 부러지고, 두개골이 함몰되고, 손가락을 없애 버린 살인’을 저질렀는데 “아직도 그들에게 기회가 있다.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계기일 수 있다.”는 한가한 말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촛불시민들에게 잔인하기 그지없는 폭력을 휘두른 이명박 정권을 보고 “어둠은 어둠일 뿐이다. 어둠은 빛이 오면 사라진다”고 낭만적으로 말한 목협의장의 설교와 어찌 그리도 닮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초록은 동색’이라 부르는 가 봅니다.

 

▲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 소속 신부들이 2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용산 참사 희생자들의 영정을 든 유족들과 함께 ‘용산 참극과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시국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사진:한겨레신문)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는 것이 하느님의 사랑.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라’고 명령하신 하느님의 말씀은 어디로 가고, 이리도 여유 있고 평화로운 태도를 보이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글을 쓰는 저도 나이 쉰이니 몸 사릴 때가 되었지만 이명박 정권을 향해서는 일말의 기대도 하지 않고 바로 끌어내려야 한다는 생각뿐입니다. 무덤에 있던 백골단을 부활시켜 인간사냥까지 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 살인까지 저지르고도 사죄는 커녕 염장이나 질러대는 이명박 정권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당신 ‘너무 과격하다’고 할지 모르나 그것만이 더 이상의 희생을 줄이는 유일한 길이기에 말하는 것 일뿐 결코 과격이 아니라 확신합니다.

 


히틀러 나치 집단이 광란의 질주를 할 때 ‘악의 축’인 히틀러를 도려내지 않고는 해결책이 없다고 판단해 행동에 옮기다 비밀경찰에 잡혀 법정에 선 ‘디트리히 본훼퍼’ 목사를 사제단의 신부님들도 잘 아시지요? “당신이 목사로서 사람을 죽일 수 있느냐”는 재판장의 말에 “지금 한 미치광이가 큰 트럭을 몰고 대로를 질주하고 있다. 내가 목사로서 할 일은 죽은 사람들의 시신이나 거두어 장례를 치르는 게 아니라, 그 미치광이를 차에서 끌어 내리고 안전하게 갖다 놓는 것이다.”고 본훼퍼 목사는 법정 최후 진술에서 당당히 말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지금 독일교회의 양심은 이런 바탕 위에 서 있다는 것을 상식을 가진 신앙인이라면 잘 압니다.

 

 

이 나라의 주인이자 주권자인 국민으로서 이명박 정권의 미친 짓거리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습니다. 왜 이 땅의 사제나 목회자들은 남미처럼 치열하게 싸우지 않고 고상한 말씀만 하십니까? 적어도 새총이라도 들고 나와 ‘이렇게 저항한다’고 말하는 신부와 목사는 없는지 참으로 갑갑합니다. 희생을 줄여야 하는 게 사제로서 응당해야 할 일임을 모르지 않으나 역사는 민중들의 치열한 저항 없이는 결코 한 걸음도 발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린 알아야 합니다. 폭등하는 물가에 도저히 살길이 없어 폭발한 아르헨티나 민중들은 기마경찰을 앞세워 강경진압 하려던 대통령을 몰아냈고, 그리스 민중들은 치열하게 투쟁했습니다.


저도 사람이 다치거나 희생당하는 걸 원치 않지만 이명박 정권은 이 나라의 주권자인 국민들을 죽였습니다. 죽여 놓고도 사죄는 커녕 ‘불법 시위 척결’ 운운하는 저들을 끌어내리지 않고 무슨 다른 해결책이 있단 말입니까? 살아 있는 자들의 끌어 오르는 분노와 강력한 저항만이 억울하게 죽은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봅니다. 초심으로 돌아갈 의지가 전혀 없는 전과 14범의 정권에게 더 이상 기댈 게 없으니 명박산성을 넘어 청와대로 밀고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만이 더 이상 희생을 줄이는 유일한 길임을 지금까지 투쟁의 현장에서 직간접적으로 보고 느낀 저의 결론에 분노한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리라 믿습니다.

 

   정의구현사제단의 정세판단 오류에 대한 고백부터 먼저 하라.

 

 

정의구현사제단은 결정적인 순간 두 번 정세 판단에 큰 오류를 범했습니다. 평택대추리 미군기지 확장 싸움과, 작년 촛불 정국 때 겨우 일주일 만에 서울 광장을 떠난 과오에 대해 ‘저희들의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백하는 진솔한 모습을 보여줘야 더 큰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저항의 촛불을 끄지 않고 지펴온 시민들에게 용서부터 빈다면 더 믿고 함께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신부라서 곤란하고 목사라서 어렵다고요? 그렇다면 거리에 나오지 말고 교회 안에서 기도 하면서 가슴에 원한이 맺힌 유족들의 상한 마음이라도 위로하는 게 나을 것입니다.


저는 역사의 현장애서 수 많은 사건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신앙을 가진 기독인으로서 지금이야말로 이명박의 모가지를 비틀어 끌어 내릴 때요, 그것은 ‘묵은 땅을 갈아엎고 정의를 심어라’고 하신 하느님의 준엄하신 명령이라 고백합니다. 위임받은 권력이라는 예리하기 그지없는 칼날을 함부로 휘두르고 있는 자들에게 ‘참회하라’는 것은 어리석기 그지없는 순진한 요구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그 권력을 빼앗아 버리지 않고는 문제 해결책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평화시위’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최소한의 방어가 아닌 강력한 저항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경찰의 살인적인 폭력 앞에 정당방어는 너무 당연하고, 노동자들은 총파업으로 권력과 자본의 급소를 가격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만이 이 땅 민중들이 사는 유일한 길입니다. 정의구현사제단의 사제들이 온갖 압력과 시련 속에 지금까지 수고하신 걸 민중들은 모르지 않습니다. 교회 내 인사권까지 자본이 개입할 정도로 압력을 받으면서 이 땅의 공의가 어디 있는지 하느님 원망도 많이 하셨을 줄 압니다. 앞으로도 억울하게 죽은 분들의 넋을 달래고, 갈기갈기 찢어진 유족들의 아픔을 위로하는 등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명박산성을 넘는 선봉에 서는 것이지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낭만적인 말을 할 때가 분명 아닙니다.


이름 모를 많은 생명들이 꿈틀거리는 대구의 심장부이자 허파인 앞산 달비골, 이곳에서 하느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자연을 파괴하려는 광란의 질주를 막기 위해 그저 맨몸으로 때울 수 밖에 없는 현실이 갑갑하기만 합니다. 왜 대구에는 장비 앞에 드러눕는 승려와 사제는 없는지 분통이 터져 미칠 지경입니다. 서너 명의 종교인만 결단하고 나선다면 치열하게 저항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한 현실이 원망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사제나 목회자들이 처한 교회 현실이 그렇다’는 것은 하느님의 명령보다 자신들의 자리보전이 우선이란 핑계요 변명에 불과할 뿐 결코 정의로운 일은 아닙니다. 대구시를 향해 ‘초심으로 돌아갈 마지막 기회’라고 수 없이 외쳤지만 불법공사까지 자행하는지라 저희는 더욱 치열하게 저항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의와 맞서 싸우는 것만이 하느님의 사랑’임을 다시 한 번 느끼면서 그 앞자리를 사제와 목회자들이 지켜주시라는 부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앞산 달비골 상수리 나무 위에서 윤 희 용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