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생태

앞산 달비골 상수리나무 위에서 맞이한 기축년 설날 아침

녹색세상 2009. 1. 26. 10:59
 

이것저것 좀 하다 보니 새벽 5시가 넘어 버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설날 새벽을 뜬 눈으로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아직도 제 본가에서는 섣달그믐날 부터 불을 켜 놓고 맞이합니다. ‘우리 풍습’이라는 아버지의 고집 때문에 어머니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지요. 오래도록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어 정신과에서 처방해 준 약을 먹지 않으면 몇 일 동안 날밤을 지새울 때가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겨우 선잠을 좀 자다 바스락 하는 소리에 깨는 고통은 무척이나 저를 괴롭히곤 하지요. 

 

 

‘고혈압 약 먹는 셈 치고 잠자는 게 훨씬 낫다’는 주치의사의 말을 떠 올리며 스스로를 위안 해 봅니다. 인터넷을 뒤지다 서울 용산 참사를 당한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보니 울분이 받쳐 올라옵니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갑갑하기만 합니다. 무엇이 그리도 급했기에 유족들을 따돌린 채 사체 부검을 강행한 그 내막이 밝혀졌습니다. 시신을 보니 “앞니가 부러지고 두 개골 함몰에다 손가락까지 부러지는” 등 경찰특공대의 잔인하기 그지없는 폭력살인이라는 증거가 드러났습니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도 하지 않았던 짓을 이명박 정권 치하의 경찰은 자행하고 말았습니다. 유족들의 피눈물 나는 기자 회견 기사를 보면서 1980년 광중민중항쟁 당시 진압군으로 투입되어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른 특전사 병력의 살인 행각이 떠올라 섬뜩 했습니다. ‘치가 떨린다’는 말로 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더군요. 그렇게 무리하게 진압하지 않아도 충분히 내려오게 할 수 있었는데 이명박을 향한 김석기의 과잉 충성과 경찰 내부의 알아서기는 무리들이 저지른 살인 만행에 이가 갈립니다.

 

그래서인지 토요일 밤 자는데 상수리나무 위로 올라가는 게 그리도 싫고 떨렸는지 모르겠군요. 최근 제가 겪은 가장 큰 공포감이 엄습해 왔습니다. 사회 전반에 걸쳐 ‘노무현이 불을 지르고 이명박은 시너를 갖다 부은 것’이지요. 이명박이 무리하게 밀어 붙였을 뿐 노무현 정권 때도 농민ㆍ노동자들의 처절한 생존권 몸부림에 응답은 커녕 경찰 병력만 투입해 폭력을 휘둘러 죽여 놓고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없었습니다. 민주 정권이라는 게 폭력으로 체제를 유지하고 책임자 처벌과 문책이라는 기본조차 지키지 않았는데 전과 14범의 정권이 제대로 할리 만무하죠.


제가 군 복무 중일 때 중구 대봉동 214번지 지금의 대백프라자 있는 곳의 우리 집이 철거  당해 폭삭 망하고 말았습니다. 맨몸으로 대구 나와 오직 땀으로 정직하게 일구어 온 재산과 삶의 터전이 내려 앉아 버린 것이지요. 그래서인지 파업 현장보다 철거 현장을 보거나 가면 지금도 가슴이 뛰곤 합니다. 우리 앞산꼭지들이 지키고 있는 달비골 농성장도 ‘저렇게 밀고 들어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바로 다가와서인지 올라오기를 머뭇거렸나 봅니다. 올라오고 나니 사라져 버린 막연한 두려움에 잠시 빠져 있었습니다.

 

새벽에 어둠이 깔린 달비골을 쳐다보니 시내 쪽과는 달리 역시 반짝이는 별을 환하게 볼 수 있도록 섣달그믐 날의 밤하늘은 맑기만 하더군요. 이 달빛고운마을을 불도저로 민다는 것은 미친 짓이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 곳에 뿌리 내리고 살아가는 뭇 생명들을 죽이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란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생물이 살지 못하는 곳에 인간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은 지극히 자명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돈 벌이와 뒷거래에 눈 먼 대구시와 태영건설은 거짓말만 해대고 있습니다.

 

거기에다 김범일 시장은 자신의 치적을 드러내기 위해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개최에 맞춰 개통을 하겠다고 하니 개발 독재 시대에나 하던 짓거리를 개명천지인 21세기에 하는 정신 나간 인간임에 분명합니다. 제가 달비골로 입산하면서 생명 하나하나가 귀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는 것을 보니 현장 체험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것 같습니다. 소중한 수행의 길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기회를 허락하신 하느님의 선물로 감히 고백하고, 이런 체험을 할 수 있는 건강한 몸이 있어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곧 제사를 지낼 시간인데 눈에 안 보여 속 상해 하실 어른들과 어린 자식 생각을 하면 가슴 아프지만 ‘이 곳이 내 자리’라는 믿음이 있어 든든합니다. 명절이라 그런지 새벽 자동차 소음도 훨씬 덜한 것 같군요. 용산에서 국가 폭력에 의해 무참히 죽어간 분들의 유족들처럼 우리 앞산꼭지들이 원하는 것 역시 진실뿐입니다. 앞산터널이 정말 필요하다면 머리 맞대고 토론을 하고, 공청회도 해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도 듣고 이해 당사자들인 주민들의 투표로 최종 결정하자는 것인데 그런 기본조차 하지 않으려니 더 화가 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