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ㆍ학부모 등 60여명 시교육청 앞 회견
덕수궁 체험학습 행진…경찰과 몸싸움도
중학교 1ㆍ2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전국 시도연합 학력평가(일제고사)’가 23일 전국에서 일제히 실시됐다. 지난 10월에 이어 일제고사를 거부하는 학생들과 학부모, 시민단체 회원 등 60여명은 오전 10시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매서운 날씨 속에서 교복을 입고 참석한 학생들은 '일제고사 반대'라고 쓴 손팻말을 들었다. 신정우(중2) 군은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한 날 한 시에 강제로 치르는 일제고사는, 학생과 학부모를 성적의 노예로 만들어 무한경쟁에 끌어들이는 ‘반교육적 음모’다. 학생과 학부모는 그것을 따를 아무런 의무나 책임이 없다”며 기자회견문을 또박또박 읽었다. 회견문 낭독이 끝나자 나머지 학생들은 구호를 함께 외쳤다.
“학생, 학부모의 일제고사 거부권을 보장하라!”
“7명의 교사들에 대한 징계를 당장 철회하라!”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서울시교육청 앞으로 등교한 정아무개(서울 ㅅ중학교 2학년) 양은 "우리는 시험을 치르는 기계가 아니다"며 "청소년도 충분히 사고 능력이 있다. 단순히 공부하기 싫어서 일제고사를 거부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에 함께 참석한 ㄷ중학교 3학년 이아무개 군은 "시험은 필요하지만 줄세우기식 시험은 싫다"며 "내 성적은 중위권인데 등수가 매겨질 때마다 굴욕 당하는 느낌이다. 중위권에 만족하고 지내면 안 되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고양 ㅂ중학교에서 상위권에 속하는 안아무개(2학년) 양은 "그냥 열심히 공부하고 싶을 뿐이지 내가 어느 위치에 줄 세워지는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며 체험학습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체험학습을 선택한 학생들 가운데 담임교사를 걱정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체험학습을 허락했다가 최근 중징계를 당한 7명의 교사를 의식한 것이다. 하아무개(서울 ㅂ중학교 1학년) 군은 “담임선생님께 체험학습을 가겠다고 했더니 격려해 주셨지만 혹시 징계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사랑하는 선생님을 잃는 일은 벌어지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ㄱ중학교 2학년 진아무개 군은 “체험학습에 간다고 하니까 교감 선생님께서 불러서 ‘다음에 가라’고 말씀하시더라”며 “교감 선생님 입장도 이해한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이 끝나자 학생들은 ‘일제고사 반대 공굴리기’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학생들은 커다랗고 빨간 공에 각자의 바람을 삐뚤빼뚤 적어 넣었다.
"우리는 경쟁교육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줄 세우기로 아이들 자신감만 저하시킨다"
오전 11시. 학생들은 ‘덕수궁 체험학습’ 현장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중간에 경찰 30여명이 행진을 막고 손팻말과 펼침막을 빼앗아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학생들과 학부모는 강하게 항의했다. 행사진행을 맡은 나영 문화연대 문화교육센터 팀장은 “청소년들이 직접 행동하고 있어 경찰이 민감한 것 같다”며 “청소년들도 행진할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이날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체험학습을 선택한 학생들은 110여명. 학생들은 오후 1시부터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의 인솔 아래 덕수궁 견학을 시작했다.
오늘 체험학습의 주제는 ‘덕수궁인가 경운궁인가’, ‘전통 우리 건축의 격 구분 방법’ 등이다. 체험학습 담당 교사로 나선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은, 학생들에게 덕수궁 내 건축물의 구조와 역사에 대해 조목조목 해설해 나갔다. 김아무개(서울 ㅈ중학교 1학년) 군은 “덕수궁이 예전 규모의 십 분의 일밖에 안 남았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며 “교육청은 일제고사보다 체험학습을 더 권장해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학생들은 메모를 하기도 했다. 이어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근대 미술전’을 관람하며 이중섭, 고희동 등 근대 화가들의 작품을 감상했다.
오후 3시께 덕수궁 체험학습은 마무리 됐다. 이 외에도 청소년단체 ‘무한경쟁교육,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청소년모임 Say-no’는 정동 배제학술지원센터에서 등교거부 퍼포먼스 및 인권교육을 진행했다. 한편, 서울시교육청 앞에서는 ‘일제고사 진행에 반대하고 교사 7명의 징계 철회’를 촉구하는 서울지역 교사들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검은색 옷을 입고 참석한 50여명의 교사들은 “비인간적 교육을 일삼는 교육 관료들이 파면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기자회견 뒤 시교육청에 교사 7명의 징계가 부당하다는 민원서를 제출하려고 했으나 경찰의 제지로 무산됐다. 자식 같은 세대들에게 ‘못난 조상’이 되지 않아야 할 텐데 지금의 현실이 그렇지 못해 부끄러울 뿐이다. 아니 우리 세대가 좀 더 치열하게 낮아지고 싸웠더라면 이런 현실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자식 문제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핑계로 줄 세우기 경쟁에 내 몬 우리들의 잘못이 너무나도 크다. (한겨레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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