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민중

천주교는 용역깡패를 당장 철수 시켜라!

녹색세상 2008. 9. 29. 15:04
   

9월 30일 자로 계약 만료가 되는 파견직 노동자들이 ‘고용보장’을 요구하며 대화를 요구했다. 노동을 해야 살아가는 노동자들이기에 그들의 요구는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것이다. 그러나 강남성모병원은 대화를 거부하는데 그치지 않고 생존권을 놓고 ‘대화하자’는 노동자들에게 용역깡패를 동원해 천막조차 강제 철저해 버렸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유지재단 산하의 가톨릭대학 부속 중앙의료원 소속 강남성모병원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 다행히도 천막은 늠름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천막 (사진:참세상)

 

삼성의료원이나 현대아산병원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한국천주교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서울교구의 가톨릭중앙의료원 소속 병원에서 일어난 일이라 많은 사람들의 분노와 함께 실망을 자아내고 있다. 병원 소속 비정규직 2년, 파견직 2년에 이젠 해고가 사주인 ‘천주교가 노동자들에게 던져 준’ 답이다. 법망을 교묘히 악용한 전형적인 노동 착취 방식 중의 하나다. 가톨릭중앙의료원의 노동 강도가 높기는 유명하다.


잠시 쉬거나 차 한 잔 마실 틈도 주지 않고 일시키면서 ‘친절하라’는 말을 강조한다. 내 몸이 천근만근인데  친절을 강요하니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이 자리마저 쫓겨나지 않으려고 억지웃음이라도 짖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들의 요구는 지극히 소박하고 단순하다. ‘계속 일할 수 있게 대화 좀 하자’는 것이다. 생존이 달린 일이기에 절박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실질적인 사주인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정진석 추기경은 얼굴 한 번 내밀지 않고 용역깡패를 불러 농성천막 철거로 답을 대신 했다. 노동자들을 대하는 한국천주교의 자세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다.

 

 

‘약한 자의 짐을 져 주고,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마라’는 성서의 가르침은 저 멀리 반납하고 눈에 거슬리는 천막 철거부터 단행해 버렸다. 종교인의 양심으로 도저히 할 수 없는 악랄하기 그지없는 만행을 천주교가 저질렀으나 (술자리에서야 하는지 모르겠으나) 어느 신부도 입 한 마디 뻥긋하지 않는다. 삼성과 싸운 정의구현사제단의 신부 중 그 어느 누구도 ‘천주교의 얼굴에 똥칠 그만하라’는 말 한 마디 하지 못한다.


무엇이 두려워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이쯤 되면 사제직 접고 반납해야 한다. 2002년 가톨릭중앙의료원은 200여일 넘게 장기간 파업을 했다. 심지어 병원 내 성당으로 피신한 노동자들을 강제 연행하도록 영장에 서명까지 하는 등 ‘제 눈 찌르는 짓까지 자행’하고도 이사장인 정진석 주교는 면담조차 거부했다. 삼성의 이건희 뺨치는 짓이다. 노동조합을 동반자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물론 그 때도 정의구현사제단의 어느 누구도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이렇게 노동의 대가를 착취해 축적한 부로 천주교는 호의호식하고 있다. 이른바 품위유지비에 엄청난 돈을 갖다 붓고 있다. ‘나에게 오는 사람을 아무도 막지 마라’고 하신 예수의 말씀과는 달리 교구장 한 번 움직이면 거의 총리급 수준의 경호다. 노동자들의 고혈을 쥐어 짠 돈으로 그런데 쏟아 붇지 말고 ‘대화하자’는 간절한 호소에 귀부터 기울이는 게 인간적인 기본 예의다. 보디가드 25~30명은 깔아야 움직이는 조용기와 정진석이 무엇이 다른가?


교구장이 그리도 대단해 고급승용차에 수십 명이 수행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총무원장 움직일 때 호법부(경호) 승려들이 좍 깔리는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다. 누가 누가를 뭐라고 할 자격이 없다. 생존의 벼랑 끝에 달려 ‘대화하자’는 노동자들의 천막철거는 “파견업체에서 한 것이니 우린 모른다”고 할지 모르나 거기가 어디라고 용역깡패들이 쳐들어간단 말인가? 성모병원의 실질적인 경영자이자 이사장인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정진석 교구장의 묵인이나 승인 없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종교인의 탈을 쓰고 약자를 쥐어짜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들먹인다면 한국천주교는 무덤 파고 들어가야 한다. 천주교만큼 노동자들에게 악랄한 곳이 없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파티마수녀회 산하의 파티마병원과 성삼병원 등 노동자들의 고혈을 쥐어짜는 곳이 너무 많아 일일이 거론할 수 없다. 심지어 수녀의 악랄한 노무 관리에 견디다 못한 노동자가 자살을 해도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는 게 한국천주교의 경영모습이다.


하느님이 이런 모습을 보고 무슨 말씀을 하실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종교인이 가진 게 많으면 배 가죽에 기름만 가득 차 기도도 하지 않는다. 하느님은 자본가가 아니라 약자인 비정규 노동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 신다. 성모병원이 노동자들의 삶의 자리를 찾고자 하는 목소리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를 노동자들은 지켜보고 있다. “병원계의 이랜드가 되느냐 약자를 껴안는 인간의 얼굴을 한 경영진”이 되는가는 전적으로 천주교의 선택에 달려 있다. 모든 칼자루와 열쇠는 천주교서울대교구가 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