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민중

천주교 성모병원, 병원계의 이랜드 되나?

녹색세상 2008. 9. 21. 18:50
 

천주교가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하는 전형적인 모습


강남성모병원이 병원계의 이랜드가 될 모양이다. 규모가 이랜드보다 작고,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이뤄진 것이라는 점이 다르긴 하지만 앞으로도 필요한 업무를 담당하는 비정규직을 ‘악의적으로 계약해지’했다는 점은 꼭 닮았다. 아니,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이랜드보다 더 악랄하다. 지난 2002년부터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을 사용해 오다 그마저도 2006년에는 파견 노동자로 교체했다. 그리고 그들을 다시 계약해지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바꾸려는 것이다. 내년 5월 1,200병상 규모의 서울성모병원 개관까지 앞두고 있는 잘 나가는 천주교서울대교구재단의 가톨릭대학 중앙의료원 산하의 종합병원이 환자의 치료를 보조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간호조무사를 파견직으로 바꿔 가며 사용함으로써 환자의 건강권마저 무시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 강남성모병원에서 환자 침대 시트를 교체하거나 의료기구 소독 및 정리를 하고 중증환자의 자세 변경을 돕는 등 간호보조업무를 해 온 파견직 노동자는 오는 9월 30일로 일하던 병원에서 쫓겨나게 됐다. 병실에 있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는 뭐라고 할지 모르겠다.(사진;연합뉴스)


강남성모병원에서 환자 침대 시트를 교체하거나 의료기구 소독 및 정리를 하고 중증환자의 자세 변경을 돕는 등 간호보조업무를 해 온 김 모 씨는 오는 9월 30일로 일하던 병원에서 쫓겨나게 됐다. 4년 넘게 이 병원에서 일을 해 왔다. 하지만 소속은 계속 바뀌었다. 강남성모병원이 모두 정규직이던 간호보조 업무를 지난 2002년 8월 비정규직 업무로 전환했다. 그 이후 취직한 후 병원이 정규직을 뽑지 않으니 병원과 직접 근로계약을 맺고 직접 고용 비정규직으로 병원에 들어갔다.

 

소속은 2006년 10월 1일 다시 바뀌었다. 하던 일도, 일하는 곳도 똑같은데 월급명세서에 찍히는 회사 이름만 달라진 것이다. 이른바 ‘파견직 노동자’다. 그리고 다시 2년, 미자 씨는 최근 파견업체로부터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더 이상 강남성모병원에서 일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함께 계약해지 통보를 받은 간호조무사는 모두 28명. 같은 업무를 하고 있는 65명 가운데 절반 가까이다. 파견업체는 나머지 37명에 대해서도 “계약기간이 끝나는 대로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사실상 비정규직 간호조무사를 모두 해고하겠다는 것이다. 이들 가운데는 5년 동안 강남성모병원에서 일한 사람도 있다.

 

강남성모병원은 “파견 업체가 알아서 할 일로 우리와는 관계가 없다”는 입장이다. 현행법상은 법적으로도 병원은 책임이 없다. 간접 고용 비정규직의 고용 문제에 대해 원청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의료 노사가 비정규직의 단계적 정규직화를 지난해 산별합의에 포함시키고 실제 병원별 교섭을 통해 총 2400여 명의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됐지만 이들 65명은 그 합의에서도 ‘찬밥 신세’일 수밖에 없었다. 역시 간접 고용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보건의료노조 강남성모병원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강남성모병원에서도 60명의 직접 고용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김선화 보건의료노조 강남성모병원지부장은 “지난해 교섭에서 간접 고용 비정규직 문제도 요구는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고 말했다.


병원 측이 사용자로서의 각종 책임을 피해가기 위한 수단으로 간접 고용 노동자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병원이 지난 2006년 간호조무사 비정규직을 파견직으로 바꾸면서 얘기했던 것은 ‘인력 수급이 어렵다’는 것이었지만 사람이 없다면서 더 고용 조건이 나쁜 간접 고용을 사용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 사례가 ‘2년 고용 후 정규직 전환’이라는 비정규직법의 입법 취지를 피해가기 위한 대표적인 방식으로 벌어졌다는 점에서 반발은 거세다. 보건의료노조(위원장 홍명옥)는 “비정규직을 2년 마다 잘라내는 비정규직법의 대표적인 악용 사례”라고 반발했다. 또 이들과 똑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이 병원에 140명이 존재하고, 이들이 담당하던 업무가 항상 필요한 지속적 업무라는 점에서도 노동계가 반발하고 있다.

 

▲일하던 병원에서 뚜렷한 이유도 없이 쫓겨나게 된 이들은 고용 보장을 위해 병원 경영진과의 면담도 하고 직원과 환자, 보호자를 대상으로 캠페인도 진행했다. 대학부설병원을 이용한 철저한 의료장사를 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ㆍ지역단체도 ‘고용 안정 나서라’

 

일하던 병원에서 뚜렷한 이유도 없이 쫓겨나게 된 이들은 고용 보장을 위해 병원 경영진과의 면담도 하고 직원과 환자, 보호자를 대상으로 캠페인도 진행했다. 하지만 병원은 ‘재계약은 없다’는 입장만 반복했다. 끝내 이들은 추석 연휴 직후인 지난 17일부터 고용 보장을 요구하며 병원 행정동 앞에서 천막 농성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의 천막은 6시간도 채 되지 않아 사설경비업체 직원 10여 명에 의해 강제로 철거당했다. 이 과정에서 농성 중이던 여성 노동자들이 부상을 입는 일까지 발생했다. 그리고 이들은 천막도 사라진 맨 바닥 위에서 노숙 농성을 벌였고, 19일 오후 다시 천막을 쳤다. 보건의료노조도 이 문제와 관련해 내부 대책회의를 만들고 직접 병원을 상대로 대화에 나서겠다며 벼르고 있다.


강남서초지역 시민단체들도 발 벗고 나섰다. 이들은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병원을 이용하는 다수의 주민들에게 이 사태의 진실을 알리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이들을 지원하겠다”며 “계약해지를 철회하고 고용 안정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파견, 용역, 도급 등 간접 고용 노동자들의 수는 급격히 늘고 있지만 여전히 기초적인 보호 장치조차 마련돼 있지 않은 가운데 이들은 힘겨운 싸움을 시작했다. ‘법과 원칙’만을 강조하다 1년 넘게 파업이 이어지면서 노사 모두 심각한 상처를 입고 있는 이랜드의 교훈을, 강남성모병원은 생각하고 있을지 의문이다. ‘약자의 짐을 같이 져 주라’고 한 성서의 가르침을 이사장인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이 모른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알고도 이런 짓거리를 하고 있는 서울대교구는 정말 나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