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민중

비정규노동자들을 울리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녹색세상 2008. 9. 19. 13:14
 

용역경비 동원해 파견직 노동자들의 천막 강제철거

 

서울 강남성모병원에 근무하는 강남성모병원 파견직 노동자들이 해고에 맞서 투쟁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의 투쟁이 쉬어보이지만은 않아 보인다. 설립이 한 달 정도밖에 안된 신생노조에다 강남성모병원지부가 02년 217일 동안 파업을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던 강남성모병원이 이들의 투쟁 상대이다. 그리고 이들의 해고는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9월말 계약만료로 해고를 앞두고 있는 강남성모병원 파견직 노동자들이 17일 ‘고용보장’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고용보장’을 요구하며 팻말을 들고 침묵 시위하는 비정규노동자들 뒤에 ‘가톨릭대학교 부설 성모병원’이란 간판이 보인다. (사진:참세상)

하지만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파견업체에서 동원한 용역직원들에 의해 철거되고 말았다. 강남성모병원 파견직 노동자들이 17일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이 천막농성에 돌입하자 강남성모병원 측은 “협의도 없이 천막을 치는 것은 대화를 포기하는 것이냐”며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인사팀의 한 관계자는 이들과 같이 근무했던 정규직 노동자가 천막농성을 도와주자 “이들 파견직의 투쟁에 개입하는 거냐”고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파견직 노동자들이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밤 11시경, 파견업체에서 고용한 15명 정도의 용역직원들이 들이닥쳐 이들의 천막을 철거하기 시작했다. 철야농성을 준비하던 강남성모병원 파견직 노동자들과 보건의료노조 서울본부 간부 등이 저항했지만 10분도 안 돼 천막은 철거되고 말았다. 결국, 이들은 천막이 뜯긴 자리에서 노숙을 하며 철야농성 첫날밤을 맞이했다. 강남성모병원 직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06년 10월 1일부로 파견직으로 전환됐고, 오는 30일 만 2년이 되는 28명의 노동자들은 직고용 대신 계약만료로 인한 해고가 예정되어있다.


이들은 해고를 막기 위해 ‘고용보장과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천막농성에 들어간 것이다. 종교 단체가 운영하는 병원이라고 보기 어려운 상식 이하의 짓을 병원 측은 노골적으로 해대고 있다. 강남성모병원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유지재단의 ‘가톨릭대학부설 중앙의료원’ 산하의 병원 중 하나이고 중앙의료원과는 주소가 같다. 바꾸어 말해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경영자요 주인이다.


천주교 재단다운 모습은 전혀 없는 경영진


‘약한 자의 짐을 져 주라’고 한 성서의 가르침과 “날품팔이(일용직)와 고아, 뜨내기(노숙인)의 인권을 짓밟는 자들의 죄를 그냥두지 않겠다”(말3장)는 예언자들의 말과는 완전히 반대다. 병원 측은 ‘경영상 어려움이 있다’며 비정규노동자들을 껴안을 생각이 없음을 비쳤다. 강남성모병원의 경영진인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적극적인 개입 없이 병원 내 천막 철거가 가능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최소한의 양심을 가진 경영자라면 종교 여부를 떠나 천막 철거는 하지 못할 것이다.


보기 불편해도 묵인하는 최소한의 인간적인 도리는 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천주교서울교구는 이런 기본마저도 무시해 버렸다. “용역경비를 우리가 부르지 않았다”고 오리발을 내밀겠지만 거기가 어디라고 하청업체가 뛰어든단 말인가? 그들이 말하는 전교(선교)와는 너무나도 거리 먼 짓을 자행했다. 몇 일 전 대구가톨릭대 부속병원장으로 부임한 신부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걸 보고 ‘자본가 뺨친다’는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 오가는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비정규직 성모병원 노동자들에 대한 유인물을 나누어 주는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조합원 (사진:참세상)


기독교(신구교포함)가 운영하는 병원이 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이윤만 남기는 게 아니라 ‘의료장사’로 애당초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극명한 대목이다. 의과대학부속병원은 희귀질환과 같은 중증환자 진료와 의학 연구, 의사 수련을 위해 설립했으며, 그런 목적을 인정하기에 각종 의료 기자재 도입에 세금을 감면해 주며, 심지어 의대 교수들이 외국서적을 구입해도 관세를 부과하지 않을 정도로 온갖 혜택을 누린다.


‘경영상의 어려움이 있다’는 병원 측의 말과는 달리 ‘서울성모병원’을 신축하고 있을 정도로 엄청난 흑자를 남기고 있다. 강남성모병원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한국 천주교가 이 땅의 900만 비정규 노동자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아는 가늠자가 될 것이다. 평택의 어느 민간병원은 직원들에게 경영 내용을 수시로 공개하고, 수익에 따른 배분을 노사가 머리 맞대어 합의한다.


종합병원이니 수련기관으로 신청하면 값싼 수련의들의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지만 거부하고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며 야간 당직도 전문의가 할 정도로 환자들을 대한다. 직무와 관련한 연수는 병원 측에서 비용을 부담해 필요시 수시로 보내는데 한국 천주교의 얼굴인 서울대교구가 주인인 ‘강남성모병원’은 같은 노동을 하고도 정규직의 60퍼센트 정도도 못 받는 노동자들을 보호하기는 커녕 거리로 내 모는 상식 이하의 짓을 저지르고 있다.


재벌들의 ‘병원장사’와 무엇이 다른지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이러면서 ‘노동사목’을 하고 있으니 철저히 두 얼굴을 한 야누스라 부를 수 밖에 없다. 절대 권력인 삼성과 대립각을 세우며 싸운 정의구현사제단도 이 문제만은 건드리지 못 하는 게 천주교의 현실이요 한계다. 돈 벌이에 혈안이 되어 생계가 달린 노동자들을 내팽개친다면 한국 천주교의 양심은 쓰레기통에 쳐 박히고 말 것이다.


2002년 5월 23일부터 시작된 가톨릭중앙의료원 파업은 200일을 넘기고도 해결되지 않아 노동자들은 비참하게 패배하고 말았다.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자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대화를 거부하고 병원 내 성당으로 피신한 노동자들 마저 강제로 끌어내는 데 서명을 했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도 없었던 일로 한국천주교의 양심이 무너진 순간이었다.


공권력이 투입된 이후 명동성당 천막농성에 돌입한 보건의료노조 가톨릭중앙의료원 지부는 이사장인 정진석 서울대교구장이 사태해결에 직접 나설 것과 강남성모병원 공권력 투입 사전 승인여부에 대한 진상조사, 그리고 노조활동인정과 노동 3권 보장 등을 촉구했으나 대화를 거부했다. 같은 날 파업에 돌입했던 경희의료원이 노사 간 협상을 통해 파업을 마무리 지은 데 반해 가톨릭 병원의 파업은 장기간 계속되고 말았다. 다시 한 번 그와 같은 짓을 되풀이 한다면 부메랑이 되어 천주교의 심장에 꽂히고 말 것이다.


작년 말 갈 곳이 없어 마지막으로 이랜드노동자들이 명동성당으로 찾아가 신부의 바지가랑이를 붙잡고 피눈물로 호소했지만 천막마저 찢어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런 짓을 되풀이 하지 않아야 천주교가 살아남지 그렇지 않으면 이 땅 민중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말 것이다. 칼자루는 경영진인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쥐고 있다. 가진 자가 양보하는 게 ‘인간의 도리’이지 광우병에 걸릴 위험보다 더 큰 약자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내 쫓는 짓을 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