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계는 9월 9일 이명박 대통령이 가시적인 결과를 내 놓으면 중단하기로 했던 ‘범불교도대회’를 강행하기로 결정했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진정성이 담긴 사과가 없었고, 이번 사건의 핵심 고리라 할 수 있는 어청수 경찰청장에 대해 어떤 조치는커녕 오히려 감싸기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국무회의 석상에서 그냥 ‘찾아가서 사과하라’는 지시만 내렸을 뿐이다. 10일 대구 팔공산동화사에서 열린 범불교계 대표자 간담회를 통해 예정대로 추석 이후 ‘대구ㆍ경북지역 범불교대회’를 열어 이명박 정부의 종교편향 정책을 강력히 규탄하기로 결정했다. 개최 시기와 장소ㆍ방식 등에 대해서는 ‘대구ㆍ경북지역 범불교대회 대책소위원회’를 구성해 따로 논의하기로 했다. 소위원회는 정부가 추석 전까지 불교계의 ‘4대 요구안’에 대해 바뀐 정책을 내 놓지 않을 경우 지역 범불교대회 강행을 위한 실무 작업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관계자는 전했다.
▲‘범불교계 간담회’가 열리고 있는 동화사에 들어서고 있는 어청수 경찰청장. 평소의 당당한 모습과는 달리 매우 굳어 있는 얼굴이다.
이 날 간담회는 조계종 지관 총무원자을 비롯한 불교 주요 종단 지도자 등 130여 명이 참석할 정도로 초 비상사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회의에 앞서 지관 조계종 총무원장은 “남들은 불교가 다른 종교와 대립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며 문제의 핵심은 “일부 고위공직자들의 종교편향을 중지 시키는 것”이라고 분명히 못 박았다. 동화사 간담회는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가 아닌 ‘유감’ 표명 이 후 불심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이 날 간담회에서는 ‘대회강행’과 ‘사과수용’으로 의견 대립이 팽팽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책위 관계자는 “일부에서는 정부와 대립이 계속되는 상황을 걱정했지만 불교계의 뜻이 하나로 뭉쳐진 만큼 지역별 대회를 개최하기로 마음을 모았다”고 전했다.
불교계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어청수 청장은 회의가 열린 이 날 동화사를 방문해 대웅전 앞 마당까지 가서 지관 총무원장에게 “큰 스님 저 왔습니다”며 애결하다시피 했으나 외면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공양간(절 내 식당)까지 따라갔으나 “스님들 공양 시에는 신도들도 가지 않는다”며 “기본 예의도 모른다”는 핀잔을 받아야 했다. 회의가 끝날 때까지 동화사 경내에서 기다렸지만 젊은 승려들과 신자들의 강력한 항의로 결국 밀려나 승합차에 올랐다. 쫓겨난 어청수 청장은 상경 시간까지 늦추어 가면서 조계종 지관총무원장과 같은 고속열차를 타면서 열차 내에서 끈질기게 사과를 시도해 빈축을 샀다. 조계종에 따르면 어청수 청장 일행은 이날 오후 8시55분 동대구역에서 출발한 KTX에 탑승해 지관 스님이 있는 특실 3호칸 객실로 들어가려다 객실 입구를 가로막고 저지하는 수행 승려들과 1시간여 가량 가벼운 몸싸움을 벌였다.
▲ 승려들과 불교 신자들로부터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들어오느냐’며 제지를 당하고 있는 어청수 경찰청장. (사진:오마이뉴스)
엄청난 부동산 각종 사찰과 병원ㆍ학교 등을 비롯한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 불교(특히 조계종)는 그 자체가 권력이라 지금까지 정권과 적당한 선에서 밀월을 즐겨왔다. 이명박 정권도 불교계가 수용할 만한 수준의 요구만 들어줬어도 적당히 넘어갔을 것이란 건 어지간한 사람은 다 안다. 협상과 타협은 시기(타이밍)를 놓치면 뒤에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도 성과는 별로 없다. 이명박은 ‘국민과의 대화’가 아닌 ‘대통령과의 대화’란 말장난 몇 마디 늘어 놓고는 아직도 제 자랑에만 빠져 꿈속을 헤매는 정신 나간 인간임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대통령이 이리도 무식하니 밑에서야 어련하겠는가. 바른 말은 당연히 하지 않을 것이고 듣기 좋은 소리만 늘어놓을 수 밖에 없다. 어청수가 동화사에서 당한 수모는 이명박을 향한 것이다. 이런 것을 ‘자업자득’이라고 한다.
▲‘이명박 OUT’과 ‘어청수 OUT’이란 손팻말을 들고 있는 불교신자와 승려들. (사진:오마이뉴스)
▲ 동화사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당한 어청수 청장 일행이 타고 온 차에 오르고 있다. (사진: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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