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제

이명박 대통령 ‘공안 숲속’에서 ‘신뢰의 길’은 강 건너로

녹색세상 2008. 7. 1. 19:32
 

리더십 위기 자초하는 이 대통령

뼈저린 반성 10일 만에 ‘대국민 선전 포고’ 돌변

“약할 때 숙이고 강할 때 짓밟는 자기 합리화”


지난 19일 이명박 대통령은 특별 기자회견에서 촛불 행렬을 보며 “뼈저린 반성을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불과 열흘 만인 지난 29일 이명박 정부는 대국민 담화를 통해 강경진압을 언급하며 촛불집회 참석자들을 향해 선전포고를 하는 듯한 모습으로 돌변했다. 정부는 “촛불집회의 성격이 변질됐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대통령이 국민들을 상대로 불과 열흘 만에 말을 바꾸는 이런 행태는 결국 대통령에 대한 ‘신뢰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쇠고기 협상 타결 직후에는 “마음에 안 들면 적게 사면되는 것”(4월21일), “(광우병 얘기하는 사람들은) 에프티에이 반대하는 사람들 아니냐”(5월8일) 등으로 비판적인 국민들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그러다가 민심 이반의 심각함을 뒤늦게 깨닫고선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5월22일), “제 자신을 자책했다”(6월19일) 등 머리를 숙이는 모양새를 보였다. 하지만 촛불집회가 주춤하자, 다시 “체제를 흔들거나 국가 정체성에 도전하는 시위,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시위는 엄격히 구분해 대처해야”(6월24일)라며 예전 모습으로 ‘간단히’ 되돌아갔다.

 

▲ 경찰이 서울시청 앞 광장을 막아선 6월 29일 밤, 서울 종로2가 보신각 앞에서 열린 53번째 촛불집회에 나온 청소년들이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한겨레신문)

 


이 대통령은 특히 지난 3일 미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선 “최근 시위는 그들의 건강과 어린아이들의 안전에 관한 우려의 문제”, “한국에는 국민들의 시위가 진정한, 그리고 의미있는 변화의 단초가 된 전통과 역사가 있다”며 촛불시위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 대통령의 말이 이처럼 상황에 따라 극과 극을 오가면서 어느 것이 그의 ‘진심’인지 종잡기 어렵게 됐다. 이전에도 ‘믿을 수 있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는 별로 없었다. 1998년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에서 물러났고, 대선 정국에서 터져나온 “비비케이는 내 회사”라고 말한 비비케이(BBK) 동영상 등이 모두 이 대통령을 신뢰하기 힘들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다.


특히 박근혜 전 대표와의 관계에서 이런 점은 더욱 두드러져, 이 대통령은 위기에 빠지면 박 전 대표에게 손을 내밀었다가, 그 상황을 모면하면 다시 잊어버리는 일을 몇 차례나 반복했다. 지난해 대선 당시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출마하면서 지지율이 급락하자, 박 전 대표를 향해 ‘국정 동반자’라고 선언했다가, 총선 공천에서는 친박계 의원들을 배제했다. 이번 쇠고기 정국에서도 ‘박근혜 총리설’을 흘려 보수대연합을 꾀하다가, 유야무야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박 전 대표 쪽의 한 전직 의원은 “이 대통령은 이해관계만 따지는 자기 생활방식을 ‘실용주의’란 말로 합리화하는 게 아닌가 싶다”며 “자기의 힘이 약하다 싶으면 비즈니스를 하려고 하고, 힘이 있다고 생각하면 ‘밟아 버리려’ 하지 않느냐, ‘신뢰의 위기’가 아니라 애초에 신뢰가 없는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한나라당의 다른 한 의원도 “이 대통령은 자기 잘못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고 합리화한다. 그러다 잘못이 드러나면 딱 그만큼만 인정하는 쪽으로 말을 바꾼다. 불리하면 머리를 숙였다가 상황이 개선되면 다시 태도를 바꾼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의 홍보 관계자들은 “말이 바뀐 게 아니라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에 그에 맞춰 발언한 것뿐”이라고 반박한다. 그러나 청와대 안에서도 ‘신뢰 위기’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촛불집회는 앞으로 잦아지리라 본다. 그러나 ‘겉불’은 사라져도 ‘속불’은 여전히 남아 앞으로 정권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며 “무엇보다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 훼손된 신뢰관계를 어떻게 복원하느냐 하는 것이 향후 정책수행 과정에서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대통령의 신뢰와 관련해 “6.10 집회 전에는 ‘다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가, ‘좌시하지 않겠다’는 쪽으로 입장이 바뀐 것을 국민들이 어떻게 이해하겠느냐”며 “일관성을 잃고 그때그때 상황만 모면하려고 하다 보면 나중에 더 큰 화를 좌초할 수 있다. 성공하는 정치인은 신뢰를 주는 정치인이고, 국가의 통합도 신뢰를 주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겨레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