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삼양라면의 숨겨진 일화와 나의 프랑스 유학시절(펌)

녹색세상 2008. 6. 22. 07:58

벌써 20년도 넘은 이야기입니다. 프랑스 어느 대학도시의 기숙사에 우리나라 학생들이 한 십여 명 있었습니다. 낯 설은 이국 생활이라 당연히 고국의 음식이 그리웠지요. 당시만 해도 한국 음식점이 주변에 없었고, 어쩌다 명절 때나 부모님들께서 비싼 돈 들여 보내주시는 밑반찬이라야 받아보기 무섭게 게 눈 감추듯 사라지곤 했습니다. 라면이라도 마음껏 먹어보는 것이 모두의 소원이었지요. 프랑스에는 베트남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식품점에서 라면을 팔기는 했는데 홍콩인지 싱가포르에서 만들어서 ‘출전일정’ 일본상표를 붙인 조잡한 제품이었고, 첨부된 중국식 돼지고기 맛 스프가루를 타서 요리를 하면 정말 웬만큼 비위가 좋지 못한 사람들은 그 느끼함에 다 토해버릴 정도. 그래서 저희들은 스프가루 넣는 대신 소금, 양파, 고추 가루로 맛을 내고는 했지요.

 

 

우리나라 우리 맛 라면을 너무나 먹고 싶은 마음에 하루는 꾀를 내었습니다. 기숙사 외국 학생들이 모두 삼백여명쯤 되었는데 학교 식당에서 모두에게 대한민국 라면파티를 멋지게 열어주자고, 그래서 우리나라 우리 맛 라면의 진수를 전 세계에 보여주자고. 그런 내용을 써서,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삼양라면 사장님께. 다만 본사가 당시 서울 종로 청진동에 있었다는 것만 알고서 ‘도와주십사’라는 편지를 진담반 장난반 올렸습니다. 물론 무모하고 황당한 요청임을 잘 알기에 저희는 삼양라면에 대해 답신조차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며칠 후 파리 오를리 공항 세관에서 제게 소환장이 날아왔습니다. 외국산 식료품이 무려 2 큐빅톤이나 제 앞으로 왔는데, 도대체 학생의 신분이라면서 혹시 ‘밀수꾼이냐 아니냐’라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날 밤차를 타고 파리에 상경, 새벽에 오를리 공항에 가서 여차저차 사정을 말하고 물건을 찾아왔습니다. 세관원들은 거의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짓더군요. 말이 2 큐빅톤이지 작은 승합차에 가득 차는 엄청난 물량이, 당시 돈으로도 수백만원 넘는 특급 항공운임표를 붙인 채 제 앞에 쌓인 모습, 라면 상자의 산더미는 제 생전 처음 보는 장관이었지요. 마치 오르기 어려운 높은 산을 정복했노라는 성취의 뿌듯함에 앞서. 전혀 알지도 못하는, 보잘 것 없는 일개 학생의 편지 글만을 믿고, 라면 백여 상자를,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운임까지 지불하여 특급우편으로 보내주신 삼양라면 사장님의 마음 쓰심을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고 말더군요. 과연 어떤 분이실까. 뵙고 싶었습니다. 감사하고 황송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존경한다고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저희의 대한민국 라면파티는 대성황으로 끝났고요. 외국학생들에게는 ‘짜짜로니’ 였던가요, 짜장면 류가 대인기를 끌었지요. 작은 대학도시였지만, 라면파티 한 번으로 ‘한류열풍’을 일으켰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20년도 더 지나고 국민기업 삼양라면이 처했던 어려움도 그저 남의 일인 냥 지나쳐버리고, 이런 저런 핑계로 삼양라면 사장님께 그 흔한 그림엽서 한 장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오늘 우리나라의 위기를 맞았지만, 삼양라면 사장님의 신념과 배려의 마음을 떠올리며 저희의 희망으로 삼습니다. 삼양라면! 사랑합니다. 영원히 사랑합니다.

삼양라면, 명박퇴진